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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센터 또 만들어봐야 한계…“이번에도 땜질식 처방 안 돼”
대한체육회, 스포츠윤리센터 5일 출범
사건 재발에 ‘인권·클린’ 이어 3번째
적은 인원에 조사·징계권도 없어 한계
靑 “특사경 법제화 등 추가 대책 논의”
운동외 길 열어줘야 폭력 굴레 벗어나
‘선수 학습권 보장 실험’ 대안으로 부상
국가대표와 청소년 대표로 뛴 23세의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선수 고(故) 최숙현 씨가 2013년 전국 해양스포츠제전에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 [연합]

감독과 선배 선수들의 폭력·가혹행위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트라이애슬론 유망주 고(故) 최숙현 선수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한 달이 훌쩍 지났다. 그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쏟아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단순 땜질 처방에 그쳐선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당장 5일 출범을 앞둔 ‘스포츠윤리센터’부터 제한된 권한 등 태생적 한계가 지적되는 상황이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지난해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 성폭행 사건 이후 추진된 기구다.

▶ “스포츠윤리센터 기능·권한·조직 규모 태생적 한계” 지적= 5일 ‘국민체육진흥법 개정’ 시행에 따라 스포츠윤리센터(이하 센터)가 출범한다. 센터는 체육계 각종 비리는 물론 ▷인권침해 신고접수 및 조사 ▷인권침해 피해자 지원을 위한 상담·심리·법률 지원 및 관계기관 연계 ▷스포츠 비리 및 인권침해 실태조사 ▷예방교육과 홍보 등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센터는 자신들의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수사기관에 고발하거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각 체육단체에 징계를 요구하고 지도자 자격취소 등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센터가 ‘제한된 권한’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먼저 직접 조사권과 징계권이 없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25명의 직원 중 13명의 직원들이 60개가 넘는 대한체육회의 종목을 맡아야 하는 조직규모의 한계도 분명하다.

스포츠혁신위원회(혁신위) 위원이었던 원민경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문체부는 윤리센터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조직의 기능, 권한, 규모가 지닌 태생적 한계가 있다”며 “당초 혁신위에서는 정책연구까지도 같이 담당하도록 권고했지만 현재 구조에선 인권침해와 스포츠 비리를 조사하는 구제 기관 정도에 그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최동호 스포츠연구소장은 “애초 체육계 사건이 터질 때마다 논의됐던 내용들을 ‘일부’ 수용해서 만든 게 현재 대한체육회 내 스포츠인권센터와 클린스포츠센터다. 그런데 문제가 계속되니 내용을 조금 더 수용해서 이번에는 윤리센터를 새롭게 만들었다”며 “이마저도 수사권과 징계권이 없어 처음에 제기한 취지를 살리지 못한 불완전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정부도 전문가들의 이같은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기존에 있던 클린스포츠센터, 스포츠비리신고센터, 인권침해센터의 경우 실제 인권침해 사례를 받아 인터뷰해주고 사후적 부분에 대해 면담 정도 하는 차원이었지만 이번에 출범하는 스포츠윤리센터는 그것보단 강화된 것”이라면서도 “최숙현 선수 사건으로 인해 이보다 더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특별사법경찰(특사경)에 대한 부분을 법제화해 스포츠윤리센터에서 활약할 수 있게끔 계획을 하고 있다”며 “조직 규모도 더 확장해야한다는 여론이 있어 내부적으로도 어떻게 직원을 늘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민경 변호사는 “스포츠윤리센터는 결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체육계의 구조개혁과 패러다임 전환이 같이 가야 한다. 윤리센터 출범은 체육계 인권침해 해결의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앞다퉈 발의된 ‘최숙현 법’…본회의 통과 지켜봐야= 최 선수 사망 사건 이후 국회는 앞다퉈 관련 법안 발의에 나섰다. 실질적인 조사와 조치, 피해자 보호에 방점을 찍은 법안들이다. 최숙현 선수 사건을 최초로 공론화한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에는 ▷스포츠윤리센터의 독립성 강화 ▷성폭력 신고에 대한 지체없는 조사와 피해자 보호 ▷피해자를 위한 임시보호시설 설치와 운영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및 조사 방해 등 2차 가해 금지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이번 최숙현 선수 사건에서 가해자 중 하나로 지목된 ‘팀닥터’와 같이 감독·코치 외 존재하는 사각지대에 대한 한계도 지적된다. 미래통합당은 기존 법안과 규정 등을 더 검토해 필요 시 관련 추가 법안을 발의하겠단 입장이다.

이 밖에도 ▷이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엘리트와 남성 중심의 체육계 문화 타파’법 ▷박정 민주당 의원의 ‘가해자 조사 기관 및 피해자 보호 조치 강화, 팀닥터 의무 등록’법 ▷임오경 민주당 의원의 ‘미결정 징계자료 포함 징계정보시스템 구축’법 ▷박주민 민주당 의원의 ‘체육인 징계 관련 정보 미제출 시 과태료 부과’법, ▷안민석 민주당 의원의 ‘운동선수 권리 보장을 위한 표준근로계약서 도입’법, ▷이용호 무소속 의원의 ‘체육계 폭력·성폭력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법 등이 줄줄이 발의됐다. 하지만 해당 법안 내용이 국회 본회의를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현실화할지가 관건이다.

스포츠 선수들이 경기 외적인 것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즐겁게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하루빨리 정착되야한다. 서울 세현고등학교 야구부가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파주챌린져 구장에서 밝게 웃으며 훈련하고 있다. 박해묵 기자

▶ “이거 아니면 길이 없으니 지옥에서도 버티는 것…그래서 학습권 보장이 중요”= 체육계 전문가들은 선수들이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다른 진로’를 생각할 수 없는 체육계 환경을 지적한다.

앞서 스포츠혁신위는 7차례에 걸친 혁신권고안을 통해 ‘학교 스포츠 정상화를 위한 선수 육성 시스템의 혁신과 학습권 보장’을 권고했다. 학생 선수들로 하여금 ‘운동 외의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줘 반복되는 폭력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원 변호사는 “엘리트 선수를 준비하던 학생들은 운동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폭력을 당하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운동을 해왔다”며 “내가 있을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얘기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학습권 보장을 이미 실험중인 운동부도 있다. 서울 강서구의 세현고다.

이른바 ‘공부하는 야구부’로 최근 체육계와 학부모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 학교 야구부 라커룸은 정규 수업이 모두 끝난 후에 열린다. 지난해 5월 창단 이래 아직 주말리그 3승이 유일한 승점이지만 학생들은 ‘폭력 없는 야구부’라는 자부심 속에 훈련하고 있다.

지난 24일 오전 만난 탁정근 세현고 야구부 감독은 “운동선수가 되려면 대학까지 약 10년가량 운동만 하는데 실제 프로 스포츠에 진출하는 학생 선수들은 10%밖에 안 된다”며 “그런데도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시간이 지나면 프로선수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해 많은 문제가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면 진로에 대한 생각이 도중에 바뀌어도 다른 길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진성룡 세현고 교장도 이 학교의 ‘학습권 보장’ 철학이 널리 퍼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진 교장은 “학습과 일상의 단절 속에선 운동 외엔 다른 곳에 가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코치나 선배들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다”며 “일부 지도자들의 ‘네가 나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너는 어디에서도 운동을 할 수 없다’와 같은 마인드가 체벌과 강압, 선수 무시와 같은 현상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 교장은 “스포츠의 본질은 바로 즐기는 것이다. 학생들이 운동을 즐기면서 공부도 하는 자기 주도적 역량을 갖추게 되면 최숙현 선수와 같은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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