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사태로 금융권이 난리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P2P)에서도 잇따라 사고가 터지고 있다. 전자는 주로 자산가들이 피해자라면, 후자는 청년이나 서민들이 대부분이다. 닮았다. 정책은 허술했고, 감독은 안이했다. 불량 업자들은 ‘금융산업 육성’이니 ‘혁신’의 완장을 악용해 떼돈을 벌었고, 애꿎은 투자자들만 생돈을 날리게 됐다.
가랑비에 옷 젖는 법이다. P2P 사고지만 피해액이 상당하다. 수 백 억대다. 상당수 서민들이 매월 꼬박꼬박 찍히는 고리(高利)의 수익에 유혹됐다가 원금까지 날리게 됐다.
수법은 사모펀드에서 이미 본 돌려막기다. 돌려막기는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줄 돈을 늦게 투자한 돈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투자에 따른 수익금이 아니기에, 투자금 유입이 줄거나 끊어지면 바닥이 날 수 밖에 없다. 지난 2018년 발생한 P2P업체 ‘아나리츠’ 사기 사건은 투자금 돌려막기로 판명됐다. 같은 해 ‘더하이원’, ‘오리펀드’는 허위대출을 하다 대표가 구속됐다. 지난해 ‘팝펀딩’도 관계자들이 돌려막기를 하다 덜미를 잡혔다. 넥펀 역시 돌려막기 혐의로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이번 정부 들어 금융위원회는 P2P 업에 ‘혁신’이란 완장을 달아줬다. 핀테크 혁신에 가장 큰 공을 들여왔다. 은성수 위원장이 ‘동산 금융의 혁신’이라 평가한 팝펀딩은 1000억원이 넘는 피해를 남겼다.
P2P가 혁신금융으로 평가받았던 이유는 자체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이나 기술기반 담보평가 등이 인정받아서다. 하지만 200여개가 넘는 P2P 회사들 중 이같은 혁신 기술을 제대로 장착한 곳은 몇 되지 않는다. 대다수는 대부업과 대출 구조가 같다. 투자자들은 대부업체를 통해 돈을 빌려주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정부가 P2P에 채워준 ‘완장’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P2P업체에 대한 조사나 감독업무를 진행하지만, 인력 부족과 잦은 인사이동으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다수다. 당국 내에서도 P2P 관련 부서는 ‘출세’에 도움이 되지 않아 기피대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매번 다른 분이 오셔서 조사를 하신다.매번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한다. 오실 때마다 시간이 꽤 걸린다”고 토로했다.
당국은 조짐이 심상찮으면 한도부터 줄였다. 금융위는 최근 발표한 P2P대출 가이드라인 개정안에서도 투자한도 시행일인 내년 5월1일까지 업체당 1000만원(기존 2000만원)으로 투자금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민원의 강도는 개인의 피해액에 비례하니, 피해규모라도 줄이려는 계산일까.
최근 사고가 잇따르자 금감원은 8월 26일까지 모든 P2P업체에 재무제표의 외부감사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서류만으론 어느 개인·업체에 돈을 넣었는지, 어떤 판단에서 대출이 진행됐는지, 건전성은 담보됐는 지 알 수 없다.
정책 담당자에게는 치적이 중요할 수 있다. 그래도 속을 알 수 없는 ‘아무나’에나 완장을 채워주면 애꿎은 피해자만 낳기 십상이다. 권한과 혜택에는 책임과 감시가 전제되어야 한다. 불가피한 시행착오라 변명하지 말자. 국민도, 투자자도 실험용 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