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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그사람들 죄를 밝혀줘 ②] 스포츠공화국이 만든 불량품 '한국식 스포츠시스템'
3공·5공 거치며 국가의 필요에 의해 스포츠정책 시행
생활체육 위축·성적지상주의 확대…엘리트체육은 성과

생활체육과 일반스포츠 등 한국 스포츠의 브레인 역할을 해야하는 대한체육회는 성적내고 메달획득으로 올림픽순위 올리는데 연연하기 보다 국민들을 위한 스포츠정책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해야한다. 대한체육회가 있는 올림픽회관./사진=박해묵 기자

[헤럴드경제=김성진 기자] 고 최숙현 선수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난 뒤 국민들과 여러 시민단체들은 분노하고 있으며, 문체부, 체육회 등 주무부처와 정부는 사태해결과 재발방지를 다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모습이고, 또 다시 반복되는 익숙한 장면이다.

눈에 보이는 상처에 약 바르고 밴드 붙이면 치료가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피부 깊숙히 자리잡은 종기라면 다시 덧나는 건 불문가지다. 스포츠계에서 불미스런 사태가 잊혀질만 하면, 아니 미처 잊기도 전에 잇달아 터져나오는 이유는 무엇인지, 태생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지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스포츠란, 또 체육이란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고 있을까.

지금처럼 각종 동호회가 활성화되고, 한 사람이 하나 이상의 취미스포츠를 즐기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70~80년대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시기에는 먹고 살기 바쁘고, 휴일도 제대로 못챙기던 때다. 학교에선 체육수업 정도, 하교후 친구들과 공놀이나 했을 뿐이고, 어른들은 큰 비용이 들지않는 등산, 낚시 정도가 전부였다.

이후 초중고교의 학교스포츠가 구기종목, 육상 등을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80년대에는 축구 야구, 90년대에는 배구 농구 등 프로스포츠도 출범했다. 고급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한 골프도 90년대 이후 이용객과 선수들을 위한 대회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학교스포츠는 유난히 고향, 모교 등 뿌리에 대한 애착이 강한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하면서 높은 인기를 끌었다. 전국 고교팀이 모두 출전하는 고교야구대회인 봉황대기가 열리면 지방에서 버스를 대절해 응원을 펼치는 모습이 자연스러웠고, 팔도의 축구명문고들이 맞붙는 경기들도 다르지 않았다.

이 당시 운동을 했던 선수들은 열악한 시설, 군대를 방불케하는 선후배간 위계질서, 절대복종이 필수였던 지도자와의 관계가 일상이었다.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한 체계적인 훈련은 극히 일부 팀에서나 행해질만큼 먼 나라 얘기였고, 정신력과 끈기 등으로 부족한 역량을 극복하라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지키며 훈련해야했다.

이런 과정에서 살아남은 선수들이 청소년대표가 되고, 국가대표가 됐으며,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수많은 강대국 틈에서 스포츠강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이런 '시스템'과 이를 견뎌낸 '선수'들의 공이었다. 하지만 이런 구조와 시대가 이어지는 동안 보통 사람들을 위한 생활체육과 레크레이션으로서의 스포츠는 뒷전으로 밀려나 볼품없이 위축되어 버렸다.

2003년 한국체육정책학회지에 게재된 '제3공화국과 제5공화국의 국가주의 스포츠정책 성향 비교( 이옥흔 주동진 김동규)'에는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에 스포츠가 어떤 형태로 자리잡았는지 설명되어었다.

“한국의 스포츠는 제3공화국이 시작된 1960년대부터 두드러진 도약이 이루어졌다. 국가정책에는 스포츠가 중요한 부분이었기에 박정희 정권은 경제계획에 맞추어 적극적인 스포츠정책을 시행하였으며, 제5 공화국의 전두환 정권 역시 스포츠정책을 주요 국가정책으로 삼아 한국을 스포츠강국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1986년의 아시안게임과 1988서울올림픽의 개최가 바로 그것이다. 강력한 중앙 집권 정책을 펼치면서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을 위해 국민의 단결과 총화! 그리고 5공화국은 경제부흥을 목적으로 선진조국 창조를 내세우고 세계 속의 한국을 향해 국민의 협력과 복종을 정책의 주요 과제로 설정하는 국가주의 스포츠정책을 주도하였던 것이다. 국민 삶의 질보다는 국위선양과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엘리트스포츠를 더욱 중시했다는 점에 있어 제3공화국과 제5공화국은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스포츠가 발전하는 기반을 조성하였다는 점에 있어서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2013년 '스포츠와 법'에 게재된 '제5공화국의 엘리트 체육정책에 대한 미시적 접근'(정동화 이동현 김정만 손석정)도 비슷한 분석을 내린다.

“제5공화국의 체육정책은 국제대회에서의 우수한 성적을 국가의 위광이나 국민통합과 동일시, 상징화 하는 방법을 통한 엘리트체육에 대한 집중적 육성정책의 성향을 띄게 된다(송형석 김홍식, 1997) -(중략)- 제5공화국은 스포츠공화국의 명칭이 붙을 만큼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엘리트스포츠 육성정책에 심혈을 기울여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지 선정, ‘한국프로야구 창설계획서’를 시작으로 한 각종 프로스포츠의 출범, 국제대회 메달 획득을 통한 국위선양이라는 거시적 성과도 거두었지만 성과위주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사회체육 프로그램과 시설의 부족이라는 부작용을 남기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군인출신이라는 점, 정통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유사했던 두 정권을 거치면서 스포츠는 '국민의 건강과 정서함양을 위한' 분야가 아니라 '국민을 통합하는데 필요한 도구'로 왜곡됐다. 이때 엘리트체육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면서 스포츠강국의 위치로 올라선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과거와 비교하면 현재는 이름값에만 기대어 연구나 노력을 게을리하는 지도자들은 도태되고 있다. 체력관리나 경기력향상 등에 대해 과학적으로 지도할 수 있어야하는 것은 물론 선수들의 멘탈이나 컨디션 유지도 관리해줄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이런 현대적인 흐름을 감안하면 최숙현 선수가 속했던 팀이 얼마나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운영됐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꿈많던 10대 시절 전국해양스포츠제전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고 최숙현 선수/연합뉴스

70~80년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성적 지상주의와 경직된 선후배 문화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수년간 불거져나오는 스포츠계의 성폭력·성추행 사건, 폭력사건, 금품수수나 향응 관련 비리는 이런 구시대적 문화가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한국스포츠의 어두운 이면을 직접 겪으며 운동을 해왔던 두명의 전 국가대표와 인터뷰를 가졌다. 두명 모두 익명을 요구해 A감독과 B감독으로 표기한다.

비인기 아마추어 종목 선수였던 A감독은 아시아 최고의 선수였고, 올림픽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지금은 실업팀 감독을 맡고 있다. 구기종목 출신 B 감독 역시 국가대표를 거쳐 여러 팀에서 뛰었으며 현재는 감독을 하고 있다.

중1때 운동을 시작한 A 감독은 집안이 넉넉지 않았으나 간식도 주고 종목에 대한 호기심도 생겨 제의를 받아들였다. 부모의 반대도 있었지만 스스로 좋아서 했다고. 팀내 폭력은 그의 일상이었다. "선수 9명이 있었는데 선배가 기분 나쁘다고 해서 맞고, 운동실 지저분하다고 맞았다. 감독의 험한 말도 매일 듣드시피했다. 선배한테 너무 맞아서 집에 가는 길에 선배 집근처에 가서 돌멩이로 유리창을 깨고 도망친 적이 있다"고 말했다.

A 감독은 ‘나는 다른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후배들한테 손을 대지말자. 학창시절 기합을 두번 정도 주기도 했지만, 성인이 되면서 지도자되면 그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선수에게 늘 존칭을 쓴다. 요즘 선수들은 인권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기때문에 사생활도 침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같은 잘못을 했을 때는 일반인보다 더 여론의 질타를 받는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며 기본은 스스로 잘 지켜야한다고 당부한다.

장단점이 있는 합숙 문제에 대해서는 A 감독도 양면성이 있다고 했다. “서울팀이 합숙소를 운영하지 않으면 지방선수 영입이 어렵다. 비싼 주거비용을 들여 거주지를 따로 구하는 것도 어렵고…”라고 말했다.

지도자들의 구타나 폭언은 과거에 비해 달라졌을까. “성인팀은 이제 그런 모습이 거의 사라진 것 같다. 중고교팀은 아직 폭언같은 건 많이 눈에 띄더라"고 아쉬워했다.

최숙현 선수 사건에 대해서는 "경주시청 사태는 정말 잘못된 사건이다. 감독이 나이 많은 사람인가 생각했다가 나보다도 젊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최 선수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리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안타까웠다. 체육계가 개선해야되고 미리 방지해야되는데…. 지도자가 문제라면 도리가 없지만, 지도자가 제대로 하더라도 선수간에 생기는 문제는 바로 알기가 어렵다는 것도 아쉽다”고 말했다.

A감독은 선수들이 자신의 종목에서 최고가 되려는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고 당연하지만, 운동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말라고 한다. 그는 “나도 은퇴하고 나니 할줄 아는게 없더라. 대학원도 다니고 했지만…. 우리 선수들한테도 자기계발을 하라고 한다. 협회도 선수들에게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교육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마쳤다. 운동을 그만두는 것을 두려워하다보면 부당한 대접을 견디려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인 B 감독은 초등학교때 신체조건이 좋아 운동부가 있는 팀에서 스카웃제의를 받고 전학을 가면서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초등학교때부터 뺨도 맞고 많이 맞았지만 집에 얘기는 안했다. 어머니와 목욕탕을 갔다가 내 몸에 멍자욱을 보고 깜짝 놀라셨다. 남자 학교랑 친선경기를 많이 했는데 그 팀들은 더했다. 사지를 벌벌 떨 정도로 때렸다. 중고교 때는 다른 지역에서 지도자가 왔는데 교장선생님이 '구타는 하지말라'고 당부했는데도 때렸다”고 돌이켰다.

여자선수들을 성적인 문제로 괴롭히는 경우가 과거에는 지금보다 많지 않았느냐고 묻자 “지금은 여성인권 문제가 많이 거론되지만, 그때는 웨이트나 경기 중 기술을 가르쳐줄 때 터치가 있어도 그런 행위로 인식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때는 여성감독도 거의 없었다. 그런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는 소문은 몇번 들었다”고 말했다. B 감독은 “지금 여자팀이지만 여성지도자도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조심한다. 웨이트 자세같은 걸 가르쳐줄때도 시범을 보이는 방식으로 하지 웬만해선 스킨십을 피한다”고 말했다.

위기에 처한 선수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B 감독은 “문제가 생긴걸 내부적으로 덮으려고 하는게 문제다. 상급기관이나 협회 등이 선수의 고발이나 증언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아 사태를 키우는 것 같다”며 “이번 사건이 터진 뒤에 선수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생기면 있으면 곧바로 상의하라고 당부했다. 경찰에서도 불시에 숙소 점검을 하러 오겠다는 연락도 왔더라”고 말했다.

A감독은 “선수들에게 시 체육회 담당자 연락처를 알려주고 무슨 일이 생기면 나나, 담당자에게 무조건 바로 연락해서 조치를 취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문제부터 개선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과거 한국스포츠는 국위선양, 메달획득이 존재의 이유가 됐다. 해방이후 부터 한국스포츠계는 자립성이 없었다. 기업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다보니 잘못된 전통이 자리잡았다. 정치인 기업인들을 선임해 출연금을 많이 얻어내고 우수한 선수길러서 성적내는게 전부가 되어버렸다” 고 말했다. 또 “인권 등 국민의 요구나 시대의 표준인데 이런걸 이해하거나 시행할 의지나 인식이 부족했다. 시스템을 만들기는 하지만, 인권 공정성 등 시대정신을 받아들이지는 않고 이를 다뤄야하는 위치의 사람이 바뀌지 않으니 불행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지금 한국의 체육은 생활체육까지 대한체육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협회와 체육회 등에는 엘리트출신 체육인들이 주요 포스트에 있다. 사건이 터지면 개혁의 대상이자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들이 수습을 하는 주체가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초기에 사건을 축소하고 무마하려 하거나, 솜방망이 징계로 재발의 빌미를 주는 원인이 여기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개혁의 주체인 대한체육회는 국민이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선, 경제발전에 따른 스포츠의 효용 등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이끌어야한다. 스포츠가 무엇이냐, 스포츠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하느냐는 인문학적인 고민이 빈약하다. 올림픽 금메달이 전부라는 빈약한 상상력을 이제는 버렸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이미 많이 늦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모든 체육인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 스포츠에 미래는 없다.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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