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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혜인듯, 사람의 지혜인듯 용혈암…문 손잡이도 푸른 청자마을
고려 최고 성직자 국사 8명 배출한 곳
다산이 소풍가서 즐거움 읊은 시 ‘용혈행’
불상도 투조로 구워낸 연꽃무늬베개…
상감기법의 고려왕실 청자 공급지 강진
강진만 생태공원
화합물의 특성과 배합량, 굽는 방법 등 상감기법으로 색깔을 달리하는 경우도 많다. 두꺼비가 임신한 모습의 강진 청자벼루를 보면, 예술성, 기술에 예능감까지 엿볼 수 있다.
용혈암
강진청자박물관의 청자 장인상

‘금쪽같은 고을’ 금릉이라 불리던 강진의 지도는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아낙의 몸빼 혹은 스켈레톤 올림픽 챔피언 윤성빈의 말벅지를 닮았다. 그 한가운데 20만평 강진만생태공원에는 드넓은 ‘갈대바다’ 사이로 멸종위기종 꺽저기와 수달, 도요새, 짱뚱어와 칠게 등 1131종이 노닌다.

밤에는 미항으로 변신하는 마량(馬糧)은 탐라(제주)에서 키운 명마를 청년이 되기 전에 더욱 튼실하게 육성해 한양으로 보내던, 에너지 넘치는 곳이다. 사람과 말이 탐라로 오가는 바닷가라서 강진 남부를 ‘탐진’이라 부르기도 했다. 강진만 갯벌의 생명력, 마량의 에너지는 강진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혜이다.

천혜인듯, 사람의 지혜인듯, 사랑과 자비의 성지가 있다. 남도 답사 1번지 금릉(강진)에 가면 용혈암과 고려청자 도요지, 다산초당 만큼은 빼지 말라고들 하는데, 바로 그 성지는 용혈암이다.

다소 생소한 용혈암(도암면)은 고려 최고의 성직자인 국사를 8명이나 배출한 곳, 그들이 수도생활을 했던 정기 어린 곳이다.

1808년 5월 다산은 용혈암으로 소풍을 간다. 그날 따라 몸이 좋지 않았지만, 다산초당의 주인인 윤씨네의 제안으로, 가족(차남 학유 등)을 데리고 용혈암 소풍을 다녀온다. 참 즐거웠던 모양이다. 강진 주민들은 용혈암이 30~40년 전까지 만 해도 단골 소풍터였다고 한다.

다산은 행복에 겨워 ‘용혈행’이라는 시를 짓는데, “좋아라고 뛰는 애들, 그 기를 꺾을 수 없어”라는 대목이 나온다. 차남 정학유는 당시 만23세여서 애로 보기 어렵다. 남의 집 아이 노는 것에 행복의 절정을 느꼈을 가능성이 적어, ‘강진로맨스’ 소생, 금지옥엽 딸 홍림이가 윤씨네 자제와 함께 놀았을 것이고 남양주 오라비 학유는 동생들이 놀면서 다치지는 않는지 지켜봐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점점 정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유배 로맨스’에 대해, 오늘날 시각에서 미화할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고승의 정기 서린 성지가 19~20세기 아이들 놀이터라는 점은 참으로 보기좋은 일이다. 정신문화의 중심지이다 보니, 고려조엔 이 근처 길을 지나던 귀족들이 가마에서 내려 예를 올렸다고 한다.

지금도 그러할진대, 아이들을 무시하는 일이 더 많았을 그 시대, 고승들의 권위를 잊은 채 성지에서 뛰놀게 한 배려 속에는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들어있었으리라.

이 암자를 수호하는 덕룡산엔 굴이 있는데, 용이 승천한 자리에 맑은 물이 고였다고 해서 용혈이다. 2013년 2월 강진군의 의뢰와 문화재청의 허가로 발굴조사를 한 결과 이 용혈암지에선 상감청자 불상이 출토돼 화제를 모았다.

‘불상까지 그 귀한 청자로 만들었다고?’라고 놀라기엔 이르다. 강진은 예나 지금이나 전국 청자생산량의 80%를 점유한다.

고려왕실이 강진을 공식 청자공급지로 선정한 것은 요즘으로 치면 작은 고을에 삼성전자가 온 격이라고 윤문숙 해설사는 말한다.

과거 우리나라 석탄의 80%를 공급하던 태백·정선은 강물도 검다 했었는데, 강진 청자마을엔 세면기, 문 손잡이, 벼루, 발우그릇, 정자의 기와 등이 다 푸르다. 모두 청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구면 청자마을에 가면 1000년 청자 역사를 가진 ‘럭셔리 강진’의 면모가 드러난다. 용혈암의 불상을 상감청자로 만든 것은 금릉(강진) 사람들에겐 놀랍지도 않겠다.

한국의 청자, 금릉의 청자가 세계 최고인 것은 화합물의 배합 정도와 온도 조절 등 색의 예술성을 과학적으로 조절해내는 상감기법과 이 고을 사람들의 손재주 때문이다.

‘청자 양각 모란당초문 기와’는 암수기와를 일체화시킨 것으로 아무도 따를 수 없다. 그 어렵다는 양각도 아닌 투조로 구워낸 연꽃무늬청자베개 등도 그렇다.

이집트가 신전을 만들면서 그 어렵다는 양각 부조를 할 때 그리스계 마케도니아 침략자들은 그 문화재를 빨리 자기 것으로 덧칠하려고 손쉬운 음각기법 부조로 자기 문화를 새겨 넣었다가 비난받고 있는데, 우리는 투조 작품을 상감기법으로 구워내기까지 했던 것이다. 금릉의 힘이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

‘금쪽같은 고을’ 금릉이라 불리던 강진의 지도는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아낙의 몸빼 혹은 스켈레톤 올림픽 챔피언 윤성빈의 말벅지를 닮았다. 그 한가운데 20만평 강진만생태공원에는 드넓은 ‘갈대바다’ 사이로 멸종위기종 꺽저기와 수달, 도요새, 짱뚱어와 칠게 등 1131종이 노닌다.

밤에는 미항으로 변신하는 마량(馬糧)은 탐라(제주)에서 키운 명마를 청년이 되기 전에 더욱 튼실하게 육성해 한양으로 보내던, 에너지 넘치는 곳이다. 사람과 말이 탐라로 오가는 바닷가라서 강진 남부를 ‘탐진’이라 부르기도 했다. 강진만 갯벌의 생명력, 마량의 에너지는 강진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혜이다.

천혜인듯, 사람의 지혜인듯, 사랑과 자비의 성지가 있다. 남도 답사 1번지 금릉(강진)에 가면 용혈암과 고려청자 도요지, 다산초당 만큼은 빼지 말라고들 하는데, 바로 그 성지는 용혈암이다.

다소 생소한 용혈암(도암면)은 고려 최고의 성직자인 국사를 8명이나 배출한 곳, 그들이 수도생활을 했던 정기 어린 곳이다.

1808년 5월 다산은 용혈암으로 소풍을 간다. 그날 따라 몸이 좋지 않았지만, 다산초당의 주인인 윤씨네의 제안으로, 가족(차남 학유 등)을 데리고 용혈암 소풍을 다녀온다. 참 즐거웠던 모양이다. 강진 주민들은 용혈암이 30~40년 전까지 만 해도 단골 소풍터였다고 한다.

다산은 행복에 겨워 ‘용혈행’이라는 시를 짓는데, “좋아라고 뛰는 애들, 그 기를 꺾을 수 없어”라는 대목이 나온다. 차남 정학유는 당시 만23세여서 애로 보기 어렵다. 남의 집 아이 노는 것에 행복의 절정을 느꼈을 가능성이 적어, ‘강진로맨스’ 소생, 금지옥엽 딸 홍림이가 윤씨네 자제와 함께 놀았을 것이고 남양주 오라비 학유는 동생들이 놀면서 다치지는 않는지 지켜봐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점점 정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유배 로맨스’에 대해, 오늘날 시각에서 미화할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고승의 정기 서린 성지가 19~20세기 아이들 놀이터라는 점은 참으로 보기좋은 일이다. 정신문화의 중심지이다 보니, 고려조엔 이 근처 길을 지나던 귀족들이 가마에서 내려 예를 올렸다고 한다.

지금도 그러할진대, 아이들을 무시하는 일이 더 많았을 그 시대, 고승들의 권위를 잊은 채 성지에서 뛰놀게 한 배려 속에는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들어있었으리라.

이 암자를 수호하는 덕룡산엔 굴이 있는데, 용이 승천한 자리에 맑은 물이 고였다고 해서 용혈이다. 2013년 2월 강진군의 의뢰와 문화재청의 허가로 발굴조사를 한 결과 이 용혈암지에선 상감청자 불상이 출토돼 화제를 모았다.

‘불상까지 그 귀한 청자로 만들었다고?’라고 놀라기엔 이르다. 강진은 예나 지금이나 전국 청자생산량의 80%를 점유한다.

고려왕실이 강진을 공식 청자공급지로 선정한 것은 요즘으로 치면 작은 고을에 삼성전자가 온 격이라고 윤문숙 해설사는 말한다.

과거 우리나라 석탄의 80%를 공급하던 태백·정선은 강물도 검다 했었는데, 강진 청자마을엔 세면기, 문 손잡이, 벼루, 발우그릇, 정자의 기와 등이 다 푸르다. 모두 청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구면 청자마을에 가면 1000년 청자 역사를 가진 ‘럭셔리 강진’의 면모가 드러난다. 용혈암의 불상을 상감청자로 만든 것은 금릉(강진) 사람들에겐 놀랍지도 않겠다.

한국의 청자, 금릉의 청자가 세계 최고인 것은 화합물의 배합 정도와 온도 조절 등 색의 예술성을 과학적으로 조절해내는 상감기법과 이 고을 사람들의 손재주 때문이다.

‘청자 양각 모란당초문 기와’는 암수기와를 일체화시킨 것으로 아무도 따를 수 없다. 그 어렵다는 양각도 아닌 투조로 구워낸 연꽃무늬청자베개 등도 그렇다.

이집트가 신전을 만들면서 그 어렵다는 양각 부조를 할 때 그리스계 마케도니아 침략자들은 그 문화재를 빨리 자기 것으로 덧칠하려고 손쉬운 음각기법 부조로 자기 문화를 새겨 넣었다가 비난받고 있는데, 우리는 투조 작품을 상감기법으로 구워내기까지 했던 것이다. 금릉의 힘이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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