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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원순 사망] 기자가 본 서울시장 박원순 겸손·배려…서민 돌보는 데 앞장
도시 재생ㆍ환경 보전에 역점…미래 비전엔 아쉬움

[헤럴드경제=이진용 기자]

기자가 박원순 서울시장을 처음 만난 것은 보궐선거 다음날인 2011년 10월 27일 오후다. 선거에서 압승한 박 시장은 출근 후 첫 업무로 전면무상급식 시행 서류에 사인한 뒤 오후 3~4시 경 기자실을 찾았다.

세련되지 않은 수더분한 모습으로 나타난 박시장은 어색해 하면서도 기자들과 소통을 위해 싱거운 유머를 던지기도 했다. 당시 선거에서 상대측에서 몰고간 ‘좌파’ 프레임을 의식한 듯 그는 농반진반으로 “내 머리에 뿔나지 않았죠”란 말을 해 웃음을 자아냈다. 기자는 그렇게 그가 세상을 등지기 전까지 3180일을 거의 매일 그와 더불어 서울시청에서 보냈다.

2012년 11월 중순경 유럽을 함께 갔다. 그는 순방 일정 내내 특유의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항상 순방단을 비롯 기자와 출입국 대기줄에 있었으며, 그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애썼다. 함께한 순방기간 동안은 잠시의 쉴 틈도 없었다. 유럽의 선진문화를 보고 배우겠다는 일념이 보였다. 이때 보고 온 프랑스 파리의 공용자전거가 지금 서울시의 ‘따릉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 번은 해외출장 비행기 시간이 너무 지겨워 그가 있는 비지니스석으로 찾아 갔다. 어두운 기내에 한 곳만 불이 켜져 있었다. 다가가 보니 박 시장이었다. 뒤로 살금 다가가 뭘하나 보니 유럽순방중 살펴볼 부분을 일일이 점검하고 있었다. 시장과 파리에서 미테랑도서관을 보고 있을때 시장이 기자를 찾았다. “이 기자 나도 서울에 미테랑도서관 같은 것을 짓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나는 “하시죠. 아니, 하셔야 합니다”라고 바로 답했다. 그러자 “내가 공약에서 토건을 안한다고 했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그는 그의 숙원 사업이었던 미테랑도서관 같은 꿈을 끝내 펼치지 못했다. 대신 작은 박물관에 만족해 했다.

박시장은 주위에서 소위 ‘한방’을 해야한다는 권유 때문에도 많은 고심을 했다. 결국 ‘박원순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때문에 ‘서울로 7017’사업에 손을 댔으나 큰 재미는 못봤다. 이때부터 서울에 ‘도시재생’이란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미국 뉴욕의 하인리히파크를 참고해 철거해야 할 고가도로를 공원화 했다. 발상은 좋았으나 공원이 아니라 아파트 베란다 같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박시장은 힘들게 사는 노동자 측의 배려에도 힘을 쏟았다. 그 결과 비정규직의 정규화를 제일 먼저 시작했으며 나름 성과를 보이고도 있다. 박시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일을 했으며 특히 우리 후손들이 살아 가야할 서울을 온전히 보전하는 데 역점을 뒀다. 그래서 리사이클을 넘어 업사이클링에 주력했다. 비록 아직은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새활용프라자, 마포 석유비축기지를 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키는 등 업사이클링의 초석을 놓는 데 성공했다.

박시장의 가장 치적이라고 할수 있는 것은 감염병이 나올때 마다 행한 ‘과잉 대응’이다. 메르스 사태 때도 밤을 새워가며 진두지휘, 시민들의 건강을 챙겼다. 코로나19에도 가장 먼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했으며 대구에서 신천지발 코로나 19확산이 시작되자 종교시설에도 예배금지를 적극 추진하기도 했다. 장기화로 시민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자 가급적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위 생활자 이하에 많은 재난지원금을 주는 정책을 펼쳐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비교되기도 했다.

그린벨트 보전을 두고는 국토부와 맞섰다. 단 한평도 녹색지역을 양보할 수없다며 버텼다. 장기미집행공원용지도 모두 지켰다. 일부 기부채납을 받고 개발하자는 의견도 개발보다는 보전을 내세워 막았다. 이런 보전 재활용등의 단어때문에 미래 비전(사업성)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7일, 제대로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박시장은 2035년부터 서울 사대문안 녹색교통지역 내 내연기관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2050년부터는 서울 전역에 내연기관 차량 운행 금지를 추진하겠다는 ‘서울판 그린뉴딜’의 전략을 발표했다. 이때만해도 대선 후보로서 비전을 제시하는 듯했다. 밝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서울을 보행친화도시를 넘어 그린 모빌리티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광화문광장 재조성공사를 비롯 부동산 문제, 일자리 창출 등 해결해야 할 많은 짐을 내려 놓고 훌쩍 떠났다.

지금도 그가 옆에서 “까칠한 이기자”라고 부르는 듯하다.

jycaf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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