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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비즈] 한일 경제와 역사문제, 교조주의 역사관을 경계한다

‘교조주의’란 무엇인가. 본인의 의견과 다른 경우 본인의 의견은 선(善)과 진리이고, 상대방의 의견은 악(惡) 또는 무조건 틀린 의견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의견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문제가 처음에는 순수하고 정의롭지만 시대와 사회적 환경이 변화하면 방향 수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교조주의자들은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에 화석화돼 원칙론만 주장한다.

최근 우리 근현대사와 관련된 이념대립이 교조주의를 닮아가면서 경제협력과 외교적 실리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서 17세기 중반 이후 조선의 교조주의 역사적 사례를 다시 생각해본다.

첫째, 조선은 1636년 청나라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이후 청나라에 대한 북벌론을 국시(國是)로 삼아 수백년 동안 당시 최대 강대국인 청나라를 적대시한다. 국제정세에 문외한인 조선은 만주족 후신인 청나라를 북이(北夷), 즉 북쪽의 오랑캐 국가라고 폄하는 입장을 견지한다.

17~18세기 청나라는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등의 굳건한 통치를 통해 경제와 문물이 세계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 국가임을 모르고, 청나라와 적극적 교류를 거부하고 스스로 대외적 폐쇄정책을 유지한다. 청나라를 정복할 의향이 있다면 청나라를 연구하고 국력을 배양하며 군사력을 키우는 게 기본인데 구체적 실천은 도외시한 채 탁상공론에 빠진 채로 수백년을 허비한다.

병자호란 이후 100년이 훨씬 지난 18세기 후반 북학자(北學者)인 연암 박지원, 초정 박제가 등은 노론 집권층의 허황된 북벌론에 문제를 제기하고, 청나라가 설사 오랑캐 국가이더라도 선진 강대국임을 인정하며 청의 문물을 배우자는 의견을 제시한다. 하지만 교조적 지도층은 북학자, 실학자들의 이런 의견에 탄압으로 응수한다. 많은 실학자의 개혁안은 역사책에만 남게 된다.

두 번째, 조선의 건국이념인 성리학의 교조주의화다. 조선 건국 수백년이 지나면서 우주론적이고 사변적인 성(性)과 이(理)를 추구하는 성리학(性理學)은 시대변화 및 현실생활과 동떨어져 지도층조차 지키기 어렵게 됐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교조주의 입장은 더욱 강화된다. 서구 강대국의 식민지쟁탈과 제국주의 시대인 19세기까지 조선의 지도층은 ‘조선은 명나라의 성리학을 계승한 문명국가’라는 자아도취 환상에 빠져 지낸다. 조선후기 교조적 성리학자들은 주자(朱子)의 가르침을 한 글자라도 다르게 해석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파문하는 상황에서 서양의 신문물과 신학문의 도입, 실용주의 접근은 사실상 불가능한 여건이 됐다.

세 번째, 올해는 1910년 일본의 식민지배 110년째, 1945년 광복 75년째 되는 해다. 경제성장과 한반도 안보를 위해 일본과 다양한 협력이 필요한 실정인데, 현실은 갈수록 반일주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냉철하게 판단할 때 조선이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것은 조선의 무능과 당시 제국주의 시대의 복합적 대외적 환경 때문이다. 일본의 1895년 청일전쟁 승리, 조선의 식민지배를 인정한 1904년 미일 조약, 1904년 러일전쟁 승리,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 정책 등 복합적 요인에 기인한다.

일본과 실용주의적 경제협력을 주장하는 것을 친일 매국으로 매도하는 분위기는 향후 몇년을 더 기다려야 없어질까. 이제는 과거에서 미래로, 국내에서 해외로, 그리고 이념에서 실용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국제정세와 괴리된 교조적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초래된 경제위기에서 경직된 교조적 역사관은 우리 경제와 안보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중용(中庸)의 가르침처럼 시대와 상황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시중(時中)의 가치관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관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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