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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미 시인의 심플라이프] 가장 깊은 물에 내 몸을…

  • 기사입력 2020-06-3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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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내가 다니던 수영장이 문을 닫았다. 한 달에 두어 번 수영장에 가는 게 큰 낙이었는데 언제 다시 물에 들어갈까? 단지 수영을 위해, 물속에서 혼자 헤엄치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멀리 제주까지 날아간 적도 있다. 수영 뒤에 마시는 생과일주스, 호텔 조식이 그립다. 손해배상소송 1심에서 승소한 뒤에 먼저 찾은 곳도 제주의 호텔이었다. 체크인 뒤에 물에 들어가 여봐란듯이 팔다리를 쭉 뻗었을 때의 짜릿함을 기억한다.

‘돼지들에게’를 탈고한 뒤에도 수영장에 갔다. 이슬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내가 근사한 시를 창조했다는 기쁨에 겨워 우산살에 손을 베었다. ‘돼지들에게’를 읽을 때 그날의 붉은 피가 솟는다. 그래 그건 처음부터 피 묻은 시였지.

어릴 적 문막의 섬강에서 헤엄치기를 배웠다. 국민학교 3학년이던가, 여름방학에 엄마가 나를 시골의 큰집에 보냈다.

중학생이던 사촌 언니를 따라 처음 물에 들어갔다. 언니는 수영복, 나는 속바지 차림이었을 터.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사촌 언니를 부러워하다가 내 또래들과 물장구를 쳤다. 자갈이 깔린 강바닥을 맨발로 뛰어다니다 개헤엄을 치며 너무 멀리 왔나, 발바닥이 밑에 닿지 않았다. 물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다 죽음을 느낀 나는 ‘살아야겠다’는 본능에 충실했다. 깨금발로 수심이 얕은 곳을 향해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발꿈치가 다시 단단한 바닥에 닿았다. 어찌어찌 헤엄 반, 걷기 반, 물웅덩이에서 탈출했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뒤에도 나는 헤엄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강이나 바다처럼 흐르는 물은 두려웠지만, 막아놓은 물은 두렵지 않았다.

대학생이 돼 서울 종로의 수영장에 갔다가 다리에 쥐가 나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구조요원에게 구출되는 창피를 당한 뒤에야 나는 물이 무서워졌다.

한동안 수영장 근처에도 가지 않다가 1990년대 어느 날 물놀이를 다시 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댔다. 연희동의 실내수영장을 미리 답사해보니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내 키를 넘었다. 물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려고 나는 일부러 물에 빠지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골라 혼자 수영장에 갔다. 물끄러미 물을 응시하다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과거가 되살아나 두려웠지만 ‘여기서 주저앉으면 영영 수영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내 키를 넘는 가장 깊은 물에 몸을 던졌다.

‘아무리 깊은 물에 빠져도 발로 바닥을 치면 죽기 전까지 몸이 한두 번 위로 솟는다’고 체육책에 쓰여 있었는데 실험해보니 진짜였다. 수영장 바닥에 발이 닿는 것을 느낀 순간, 나는 힘껏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 그러기를 몇 번, 물에 빠졌다 떠오르기를 되풀이한 뒤에 나는 물에 대한 공포를 물리칠 수 있었다. 물에 엎드려 발차기를 했다. 수영을 안 한 지 십 년이 넘어 다시 초보자처럼 연습해야 했다. 어깨 너머로 배워 엉망이던 폼도 책을 보며 교정했다. 나는 한 번도 수영 강습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내가 다시 수영을 하다니!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한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바닥을 치고 올라온 그날의 자신감이 내 인생을 이끌었다.

“두려움 그 자체 외에 두려움은 없다.” 그 용기, 그 생존의 본능이 이 어려운 코로나 시기에 나를 이끌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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