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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작’ 조영남 무죄…또다른 논의의 시작
보조작가 관여 알리지 않은 부분만 판단
대법 무죄 확정 불구 저작권 문제 남아
대작작가 단순보조 아닌 협업이라면
저작권 인정 범위등 사전협의 거쳤어야
조영남 씨 대작 의혹 사건의 그림 가운데 하나로 검찰이 제시했던 ‘병마용갱’. [연합]
지난 5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참석하기 위해 대법정으로 향하는 조영남씨. [연합]

과연 대작(代作)은 사기인가 정당한 예술활동인가.

대법원은 보조작가에게 시켜 그린 그림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판매해 ‘사기’혐의로 기소된 가수 조영남(75)에게 최종 무죄를 선언했다.

앞서 조씨는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까지 대작 화가 송모 씨 등이 그린 그림에 가벼운 덧칠 작업만 한 작품 21점을 17명에게 팔아 1억53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조씨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씨가 다른 화가가 밑그림 등을 그려준 작품을 팔면서 다른 화가가 그림 제작에 참여한 사실을 판매자에게 고의로 숨겼다고 봤다.

그러나 항소심은 이를 뒤집어 무죄를 선고했다. 화투를 소재로 한 조 씨의 작품은 조 씨 고유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고 조수 작가는 미술계의 관행인 ‘기술 보조’에 불과하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검사는 이 사건을 저작권법 위반죄로 기소하지 않았고, 공소사실에서도 저작자가 누구인지 기재하지 않았다”며 “검사가 상고심에 이르러 원심판결에 저작자에 관한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상 심판의 대상에 관한 불고불리 원칙에 반한다”고 했다.

또한 “이 사건에서 문제된 미술작품이 친작(親作)인지 혹은 보조자를 사용하여 제작했는지 여부가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로 단정할 수 없다”며 사기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판결은 미술작품 제작에 제 3자가 관여했는데, 이를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판매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사기라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국내 최초의 사례다. 현대미술에서 관행으로 불리는 조수, 대작 관행에 대해서 인정한 셈이다. 또한 위작·저작권 다툼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에 관하여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판시했다.

미술계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을 놓고 ‘당연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대작이나 조수 관행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

한 갤러리 대표는 “모든 작가들이 전부 대작이나 조수를 쓰는 건 아니다. 처음 개념을 실험하고 이를 실현할 때 까지는 본인이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 이후 시리즈로 작업을 제작할 경우, 단순 작업에 대해 혹은 작업 실현시에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빌리는 건 상당히 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쟁점들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림 1점에 10만원 지급이라는 불공정 계약, 대작작가의 저작권 등의 이슈가 바로 그것이다.

미술평론가 임우근준씨는 “조수를 쓰는 것이 미술계의 관행이지만, 조영남씨의 경우는 단순한 조수라고 보기 어렵다. 애초부터 창작은 대작 작가가 했고, 거기에 덧칠을 하고 사인한 것으로 이는 ‘협업’으로 봐야한다. 협업자를 숨기는 건 미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문제가 있다. 이번 판결은 이에 대한 무죄판결이 아니라, 제작에 제 3자 관여시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은 사기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작 작가의 작업을 단순한 보조역할이 아닌 ‘협업’으로 본다면, 저작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전 협의가 필수다.

이에 대한 명확한 사실은 수사의 영역이나, 이번 재판에서는 ‘사기’혐의에 집중했기에 이 사안은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동기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도 “검사가 상고 이유에서 주장한 저작권 위반의 문제를 처음부터 기소하지 않았으나, 만일 조영남이 저작권자가 아님에도 저작권자인 것으로 표시했다는 점을 다투었다면, 애초 소송의 쟁점이 저작권자의 권리 중 성명표시권, 즉 저작인격권 여부가 다루어졌을 사건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이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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