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 어려움에 빠진 개인이나 기업이 도산을 신청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도산절차가 개시되면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제한된다는 것이다. 이는 채무자 입장에서는 강제집행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권리행사가 제한됨으로써 회생절차(개인회생절차)의 채무자는 여유를 갖고, 재기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 파산절차에서는 채권자로부터 채무변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질서 있는 정리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산절차가 개시되면 모든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제한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회생절차에서는 회생채권자와 회생담보권자, 파산절차에서는 파산채권자, 개인회생절차에서는 개인회생채권자만이 권리행사의 제한을 받는다. 이러한 채권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채권자들(예컨대 공익채권자, 재단채권자 등)은 도산절차가 개시되더라도 원칙적으로 권리행사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제한된다는 것은 도산절차에 따라서만 변제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나아가 채무조정이 돼 일부만 변제받고 나머지는 면책돼 채권이 소멸한다는 의미도 있다. 채권자가 도산으로 인한 손실을 분담하는 것이다. 예컨대 회생절차에서 10억원의 회생채권을 가진 채권자는 회생계획에서 20%만 변제하는 것으로 돼있으면, 2억원만 변제받고 8억원은 면책돼 변제받을 수 없다. 파산절차에서는 채무자의 재산을 환가해 파산채권자에게 변제한 후 나머지 파산채권은 면책돼 소멸된다. 개인회생절차에서도 개인회생채권자는 일부만 변제받고 나머지 채권은 면책돼 소멸된다.

도산절차는 기본적으로 과다한 채무자의 채무를 조정(변제)하고, 나머지 채무는 소멸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채무자 입장에서는 권리행사의 제한을 받는 채권의 범위가 넓을수록 좋다. 반면 채권자 입장에서는 권리행사의 제한을 받는 채권의 범위가 좁을수록 좋다. 결국 권리행사의 제한을 받은 회생채권·회생담보권, 파산채권, 개인회생채권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느 범위까지 포섭할 것인지는 채권자나 채무자에게 중대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회생채권은 원칙적으로 회생절차개시 전에 발생한 재산상의 청구권을, 파산채권은 파산선고 전에 발생한 재산상의 청구권을, 개인회생채권은 개인회생절차개시 전에 발생한 재산상의 청구권을 말한다. 회생담보권은 회생채권에 담보권이 설정돼있는 것이다. 기본 개념 정의는 이렇다 하더라도 ‘회생절차개시·파산선고·개인회생절차개시 전’이 무슨 의미인지, ‘발생’이 어떤 의미인지, ‘재산상의 청구권’이 무엇인지에 관한 다툼이 있고, 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채권에 포섭되는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연대보증으로 인한 구상금채권은 통상적으로 도산절차개시 후 현실적으로 발생하지만, 그 발생원인이 회생절차개시 전 보증계약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회생채권으로서 권리행사의 제한을 받는다.

도산절차의 기본적인 목적이 채무자를 구제하는 것이므로 구제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도산절차의 영향을 받는, 즉 권리행사의 제한을 받는 채권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미국 연방도산법은 도산절차에서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권리에 대한 보편적 용어로 청구권(claim)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가능한 한 채무자가 넓은 구제를 받을 수 있게 청구권(claim)에 모든 채무가 포함될 수 있도록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 청구권을 광범위하게 정의함으로써 기업(채무자)이 이행을 완료하지 아니한 대부분의 채무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청구권에 많은 내용을 포섭함으로써 광범위한 면책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개인이든 기업이든 기존의 과다한 채무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 용이하게 됐다.

도산절차, 특히 회생절차(개인회생절차)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채권자의 희생을 전제로 채무자의 회생이나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는 것이다. 따라서 채무자 보호 측면에서 권리행사제한을 받는 회생채권·회생담보권, 파산채권, 개인회생채권에 많은 채권이 포함될 수 있도록 실무를 운용할 필요가 있다.

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