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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사이 좋지 '않은' 사람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사이 좋은 사람들'

2001년 국내 최초 1인 커뮤니티 싸이월드가 내건 슬로건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공유하고 소통하는 독특한 서비스'라는 의미다. 혜성처럼 등장한 싸이월드에 전 국민이 열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싸이월드에 저마다의 추억도 쌓여 갔다.

약 20년 후인 지난 달 싸이월드는 세금 체납으로 국세청에 의해 폐업 처리 됐다. 싸이월드에 각종 사진을 저장한 기자 역시 다급하게 로그인을 시도했다. 먹통이었다. 백업 프로그램도 이용해보고, 클럽 사이트를 통한 우회도 시도했다. 허사였다. 계속해서 뜨는 오류 메시지가 야속했다. 중·고등학교 때 사진을 대부분 날렸단 생각에 허탈했다.

싸이월드 폐업 기사에는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다. 돌아가신 부모님 사진을 가져오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부터, 학창 시절 추억을 남기고 싶다는 바람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사진만 되찾으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호소도 있었다. 사용자들의 요구는 '내가 믿고 맡긴 추억을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사이 좋은 사람들'이란 슬로건처럼, 사용자들은 싸이월드를 신뢰했다. 그들에게 미니홈피는 일기장이자 앨범이었다. 그렇게 싸이월드를 믿고 추억을 남겼다. 나중에 자신의 정보를 백업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다.

싸이월드 추억 찾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싸이월드는 오랫동안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몇개월째 서버 이용료도 내지 못했다. 서버 계약 기간도 지난해 10월로 만료됐다.

전제완 싸이월드 대표는 마지막 재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며 곧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 싸이월드의 회생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선은 많지 않다. 막대한 자금난에 직원 임금 체불, 수익 모델 발굴 등 싸이월드가 부활하기 위해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싸이월드 사용자들은 더욱 '추억 되찾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관련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당장 과기부 입장에서 데이터 백업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과기부 한 관계자는 "싸이월드가 자발적으로 폐업한다고 하면 한 달 간의 고시 기간을 두고 이용자들이 데이터를 백업할 수 있게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며 "하지만 싸이월드 측에서 당장 폐업 의사를 밝히지 않아 현행법 상 과기부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전했다.

싸이월드 폐업을 두고 사용자들의 분노와 비판도 쏟아졌지만, 아쉬움과 서운함을 표한 사용자도 적지 않다. 20년간 소중한 사연이 담긴 싸이월드에 여전히 애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의 이 같은 애정과 신뢰에 부응하는 것은 싸이월드 회생 못지 않게 중요하다. 지난 20년간 싸이월드를 떠나지 않은 사용자들을 위해 추억을 되돌려줄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외면하면 결국 싸이월드는 '사이 좋지 않은 사람들'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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