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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복싱, 도쿄올림픽 통해 재도약 기회 되길…” 복싱 김광선 [메달리스트]
메달리스트 인터뷰 ⑤ 김광선

〈편집자주〉 우리나라는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최초로 출전해 종합순위 32위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꾸준히 10위 안에 진입하며 스포츠 강대국으로 도약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예정된 도쿄 올림픽은 2021년으로 미뤄졌지만 [메달리스트]를 통해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세요. [메달리스트]는 한국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메달리스트를 만납니다.

 
 

[헤럴드경제] 우리나라 복싱의 마지막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광선(56) 관장은 1980년 복싱에 입문해 1983년부터 국가대표선수로 뽑혔고 라이트플라이급과 플라이급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별명은 라이터돌, 체중을 실은 강력한 좌우훅이 주무기였다. 현재 그는 체육관을 운영하며 후배들을 육성하고 있으며 해설가로도 활동 중이다. 또 최근에는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프로스펙스 신규 광고를 통해 얼굴을 비췄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복싱을 시작해서 모든 청춘을 바쳤죠. 후회는 없어요. 청춘의 뜻이 ‘만물이 푸른 봄철’이잖아요. 꿈을 위해 나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올인할 수 있다? 그건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강력하고 조그마한데 강하다 해서 라이터돌이라고 감독님이 별명을 붙여줬어요. 그 별명도 그렇게 싫진 않더라고요.”

210승 1패. 그가 말한 자신의 아마추어 공식 전적이다. 그중 1패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1회전에서 판정패를 당한 것이다. 당시 그는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기대를 모았으나 미국의 폴 곤잘레스에게 져 조기 탈락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극단적 선택도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LA 올림픽 때 금메달 1순위였는데 1회전에서 탈락했잖아요. 우리나라 들어오는데도 걱정스러운 거예요. 왜냐면 당시만 해도 금메달 유망주인데 메달을 못 따면 매국노가 되는 분위기였거든요. 그래서 사실 물에 빠져 죽으려고 했어요. 그 정도로 마음에 부담이 많이 있었죠.”

한때 실의에 빠졌던 김광선은 그 후 와신상담,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 1987년 월드컵, 1987년 아시아선수권대회, 1988년 서울컵대회를 차례로 석권하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도전해 6전 전승,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LA 올림픽 끝나고 미국에서 8억에 프로 제의가 들어왔어요. 제가 아시안게임이고 세계선수권이고 다 금메달을 많이 땄는데 올림픽만 못 땄었거든요. 여기서 포기하고 프로로 전향하면 너무 후회가 남을 거 같은 거죠. ‘그래 다시 한번 하자’ 4년 딱 올림픽 끝나고 미련 없이 관뒀습니다.(웃음) 사실 올림픽 4년을 기다린다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4년 동안 또 똑같은 선수촌 생활을 해야 하니까.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운동을 해요. 근데 그걸 다시 할 수 있는 이유는 목표가 있으니까, 그 힘든 거 고단한 거를 다 이겨낼 수 있었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복싱 플라이급 우승을 차지한 김광선. [김광선 제공]

김광선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1988년 서울 올림픽 16강전을 꼽았다. 당시 그는 미국의 아더존슨을 만나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승리를 거뒀다.

“안 죽을 만큼 때렸어요. 4년 전 LA 올림픽에서 제가 미국 선수한테 졌잖아요. 분명히 편파판정이었거든요. 미국이란 나라가 심판들이 힘을 많이 쓰기 때문에 미국 선수들은 KO를 시켜야 해요. LA 올림픽 때처럼 석연치 않은 판정을 피하기 위해 이번엔 엄청나게 때렸죠. 지금 생각해보면 미안해.(웃음)”

올림픽 금메달 이후 김광선은 은퇴를 선언한 뒤 국군체육부대 상무에서 3년간 지도자 생활에 들어갔다. 1990년엔 프로로 전향해 다시 링 위로 복귀했다. 그는 데뷔전부터 내리 4연속 KO승을 거두며 놀라운 기세를 보여줬지만 5번째 경기인 타이틀전에서 KO패, 8전 6승 2패로 프로 생활을 마감했다.

“프로로 전향하고 처음으로 KO를 당했는데, 그냥 앞이 꺼메요. 그 순간만큼은 아무 기억이 안 나요. 그땐 정말 정신력으로 다시 일어나는 거예요. ‘무조건 승리한다. 이겨야 한다’는 각오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도쿄올림픽서 새로운 금메달리스트 탄생할까

“스타성 있는 선수가 나오면 복싱이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선수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게 저도 참 아쉬워요.”

김광선은 침체된 한국 복싱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1980년대 복싱은 한국의 3대 스포츠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인기 스포츠였다. 우리나라 복싱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12체급을 모두 석권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1990년대를 넘기면서 추락을 거듭해왔다. 결국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김광선(플라이급)과 박시헌(라이트미들급)의 금메달을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올림픽 금메달 소식이 끊긴 상태다.

아마추어 복싱이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프로 복싱도 함께 무너졌다. 한국은 2007년 7월 챔피언 벨트를 반납한 지인진을 끝으로 세계 챔피언 명맥이 끊겼다. 한때는 효자 종목 노릇을 톡톡히 했던 복싱이지만 이제는 먼 얘기가 됐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복싱은 여자 페더급 임애지(21), 라이트급 오연지(30)가 도쿄올림픽행을 확정했다. 복싱계에서는 “도쿄에서 메달을 딴다면 남자보다는 여자 선수일 것”이라고 평했다.

임애지는 앞서 2017년 세계여자유스복싱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유망주다. 한국 여자복싱 1세대이자 간판인 오연지는 아시아선수권을 두 번이나 우승했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사상 첫 금메달을 따냈다. 일 년 뒤, 도쿄올림픽에서 새로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할 수 있을지 스포츠팬의 관심이 커지게 됐다.

정지은 기자/jungj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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