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세상속으로] 원칙과 기본을 지킨 화학물질 정책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선진국조차 갈팡질팡하는 혼란을 거듭했지만 메르스 사태 이후 수년간 긴급대응 체계를 개선하고 매뉴얼을 준비한 대한민국은 달랐다. 전 세계가 배우고자 하는 최강 방역국가로 부상한 것이다. 이러한 성과는 단기간의 준비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정부의 노력만으로도 이룰 수 없는 성과다.

우리 사회는 석유화학산업 발전을 통해 현대 문명사회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백(Ulrich Beck)은 그의 유명한 저서 ‘위험사회’에서 위험과 안전을 사회 발전의 중심축이라고 주장한다. 위험은 성공적으로 완수한 근대사회가 초래한 딜레마이며, 산업사회에서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 요소도 증가한다고 본다.

우리는 가습기 살균제와 구미 불산 누출 사고 등 대형 화학 사고를 통해 허술한 화학물질 관리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음을 경험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는 안전한 화학물질 사용을 위해 2015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도입했다. 이런 국내 화학물질 관리제도의 변화는 국제적 규제 수준 강화에 부응한 것으로,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화학제품 유통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 2019년에 발표한 ‘전 세계 환경 규제 현황과 수출기업의 대응 전략’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의 무역기술장벽(TBT) 통보문 2083건 중 환경 규제가 352건으로, 16%를 차지했다. 선진국이 128건(36.4%), 개도국이 149건(42.3%), 최빈개도국이 75건(21.3%) 순이었다.

특히 유럽연합은 유해 화학물질에 따른 환경오염을 경계해 108건의 전체 기술 규제 중 환경 규제가 절반이 넘는 55.6%를 차지했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르완다·우간다 등 최빈개도국까지도 환경 규제 도입이 확대되는 추세다. 이는 자국의 유해물질 규제가 탄탄하지 못할 경우, 안전성이 확보되지 못한 화학제품들이 국내로 쉽게 유입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화평법과 화관법은 경제 발전을 최대 목표로 지향했던 과거에 정부가 놓쳐버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다시금 최우선 목표로 두기 위한 기본법으로 볼 수 있다. 화학물질을 안심하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보 확보가 가장 기본이며, 근거 없이 유통되는 화학물질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화평법이다.

유럽·미국 등 선진국보다 약 10년 늦게 시작한 화학물질 정책을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기 위해 지난 수년 동안 정부·산업계·전문가·시민사회가 끊임없이 소통하고 노력해 오고 있다. 그 결실로 2017년에는 생활화학 제품 안전관리를 위해 자발적 협약을 통한 전 성분 공개가 추진됐으며, 2019년 약 20개 기업에서 1125개 제품의 전 성분을 공개했다. 또한 화학 안전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특성화 대학원, ‘환경 위해관리사 자격’제도 신설 등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방면으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산업계에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내 경제위기 극복 대안으로 화평법과 화관법 규제 완화를 언급하고 있다. 분명 산업계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인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해마다 수건의 화학 사고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만일 지금의 경제적 위기를 모면하고자 또다시 기본 원칙을 포기하고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그동안의 노력은 허망해질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현명하게 극복한 지금의 대한민국은 잘 알고 있다. 힘들고 어려워도 사회가 합의한 원칙과 기본을 지키려는 노력이 선진사회를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의 위기를 피하지 않고 극복한다면 화학물질 안전관리의 벤치마킹 국가로 도약할 기회가 될 것이다.

양지연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교수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