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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어느 전직 부장검사 이야기

최근 여권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나섰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수차례 엄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한 전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건넨 건설업자 한만호 씨의 변호인이었던 최강욱 의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거론하고 있다. 10년 전 수사팀 검사들이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강요했으니, 위증 교사 혐의로 수사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위증 교사라는 말을 들으니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직후, 국가정보원에 파견나갔던 검사들은 줄줄이 수사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여론을 조작해 선거에 개입한 사건 때문이다. 당시 국정원에 법률자문관으로 파견됐던 검사들은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피의자가 됐다.

이 과정에서 수사를 받던 검사와 법무관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도 있었다. 한 부장검사는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았고, 형기를 모두 채우고 출소했다. 혐의 중에는 국정원 직원에게 위증을 교사했다는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막상 그 국정원 직원은 최근 위증 혐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주범은 무죄인데, 시킨 사람은 형을 이미 다 치른 셈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뤄진 ‘적폐청산’은 명분이 있었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던 검사와 판사, 전직 대법관과 대법원장도 법정에 섰다. 새로운 도덕 기준이 생겼고 그 엄격한 기준에 따라 과거에 처벌되지 않던 행위에도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가 적용됐다. 국가정보원 파견검사들에 대한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행위는 명백히 잘못이었고, 어떤 행위는 국정원에 파견된 법률자문관을 변호인으로 보느냐, 검사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었다. 위증한 직원은 무죄를 받았는데, 시킨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람은 형기를 다 채우고 나왔다. 하지만 이 전직 부장검사는 말이 없다.

건설업자 한만호 씨는 한명숙 전 총리의 오랜 ‘스폰서’였다.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제외하고도 여러 이익을 베풀었다. 시세의 절반 수준의 보증금을 받고 사무실을 임대해주는가 하면,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그랜저 승용차와 법인카드, 버스도 제공했다. 한 전 총리 측도 이 사실관계는 부인하지 못했다. 적폐청산 과정에서 수사와 처벌을 받은 공직자들이 억울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비록 사익을 추구한 것이 아니었고, 과거에는 처벌대상으로 삼던 게 아니라고 해도 세상이 이제부터 처벌하자는 기준을 세웠으니, 왜 지금부터 문제를 삼느냐 할 필요도 없다.

정작 문제는 최근 여권이 펼치는 논리다. 한 전 총리 사건은 전형적인 사익추구 범죄일 뿐더러, 새로운 기준이 적용된 게 아니라 원래 처벌 대상으로 삼던 것들이다. 과거 사업가에게 승용차를 제공받았다가 처벌받은 ‘그랜저 검사’ 사례를 떠올려보자. 한 전 총리가 받은 그랜저는 ‘착한 그랜저’인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나 최근 의혹이 불거진 윤미향 의원 사건도 그렇다. 모두 예전 기준으로도 충분히 문제가 되던 사안들이다. 그런데도 관행과 ‘왜 나만 문제삼느냐’는 형평성을 내세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적폐청산 때 내세웠던 명분은 뒤로 물러났다. 도덕적 기준의 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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