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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쿠팡의 반쪽짜리 사과문

‘쿠팡직원 출입금지.’

최근 수도권 한 아파트에 이 같은 경고문이 붙었다. 쿠팡 경기 부천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111명으로 불어나자,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쿠팡 배송직원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한 자구책을 내놓은 것이다. 서울·경기 지역 아파트 중심으로 이 같은 안내문을 게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쿠팡의 배송직원인 ‘쿠팡맨’들은 “최근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다”며 호소하고 있다. 이들이 이용하는 회원 1만명 규모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배송을 갔는데 경비원이 기피하더라” “배송을 갈 때마다 괜히 죄책감이 들고 눈치가 보인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묵묵히 땀을 흘리며 배송 현장을 뛰어다닌 이들이 오히려 기피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올 초만 해도 쿠팡맨들은 환영받는 존재였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고, 골목 구석구석을 돌며 식품과 생필품을 배달했다. 현장에서 고생하는 쿠팡맨들이 없었다면 ‘장보기 대란’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쿠팡맨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은 본사의 대처다.

쿠팡 본사의 미흡한 대응은 논란을 키웠다. 쿠팡은 지난 24일 오전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을 인지했다. 그런데도 당일 오후 조를 정상 출근시키는가 하면, 직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다음날(25) 출근자를 모집했다. 쿠팡이 언론 보도자료를 발표한 것은 이틀이 지난 26일에서다. 확진자 발생을 알지 못한 채 현장에서 일을 했던 쿠팡맨들과, 믿고 주문했던 고객을 향한 사과는 없이 “철저하게 방역하고 있다”는 해명뿐이었다.

쿠팡의 허술한 방역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이 감염병 예방법에 따른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쿠팡은 그동안 직원들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고, 매일 소독과 방역을 지키며 발열 체크와 직원 추적관리 등을 철저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역당국 조사 결과 부천물류센터 직원들의 옷과 안전모 등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일상적인 소독작업도 소홀히 했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왔다.

쿠팡은 닷새 만에서야 처음으로 ‘송구하다’는 표현이 담긴 입장문을 냈다. 이마저도 공식 사과문이 아닌 Q&A(질문응답) 형태의 자료였다. 쿠팡은 28일 홈페이지에 “쿠팡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걱정이 크실 줄 안다”며 “어려운 시기에 저희까지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고 밝혔다. 김범석 쿠팡 대표 친필 명의가 아닌 회사 명의로 된 메시지였다.

쿠팡의 ‘소통의 부재’는 아쉬운 측면이 크다. 김 대표가 원할 땐 나서고, 원하지 않을 땐 물러서는 모습 때문에 더욱 그렇다. 김 대표는 쿠팡 주문이 급증한 올해 1월 말 “하루 주문 건수가 330만건을 처음 넘겼다”며 직원들을 격려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정작 회사가 위기에 직면하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명쾌하게 입장을 밝히고 사과한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의 행보와도 대조된다. 김 대표는 알까, 침묵도 하나의 의사 표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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