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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전문가가 본 한국미술의 힘

19세기 말엽부터 21세기 초까지 근현대 한국미술을 개괄하는 일은 미술전공자라도 버거운 일이다. 사회가 뒤바뀌는 격동의 시기에 미술도 새로운 양식의 출현과 갈등이 이어지는 복잡다기한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이런 미술사를 정연하게 꿰어내는 작업을 런던 소아스대 샬롯 홀릭 교수가 해냈다. ‘한국미술:19세기부터 현재까지’(재승출판)는 외국인이 쓴 한국미술사로 동시대까지 아울러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종래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나 독일인 안드레 에카르트의 저작이 공예와 도자기, 불교미술에 치중한 것과 비교된다.

저자는 한국예술가들이 처음 유화를 접한 19세기 말 개항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민주화, 서올올림픽을 거쳐 국제적인 위상을 갖춘 오늘날까지 한국미술이 걸어온 여정을 주요 지점을 중심으로 그려나가는데, 그 중심을 관통하는 건 한국미술이 줄곧 추구해온 정체성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근현대사를 개괄하면서 한국미술의 흐름을 보여준 데 있다.

근대화 초기 서양미술의 도입으로 한국미술 변화의 장을 살핀 제1장은 조선의 화가들이 서양의 선원근법과 명암법을 어떻게 적용했는지, 서양예술가들이 그린 초상화가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주목한다. 특히 휴버트 보스가 그린 황제의 위용을 찾아볼 수 없는 서 있는 고종의 초상화는 전통에 대한 도전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일제강점기의 조선미술전람회는 한국 예술가들이 데뷔하고 작품을 알리는 주요 통로였는데, 심사위원인 일본인 화가와 미술학교의 계보를 살핀 게 흥미롭다. 서양화의 경우 일본 미술가 심사위원들은 본보기격인 ‘참고품’을 통해 한국 미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때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이 생기고 일본화를 통해 입선한 김기창은 한국전쟁 이후 이전의 폐단을 지적, 한국화란 명칭을 제안하기도 했다. 30년대 유행했던 향토색 짙은 회화의 유행이 일본의 전쟁 동원을 위한 농업진흥정책의 일환이었다는 점, 개인의 예술적 표현을 중시한 일본 자유미술가협회와 함께 전시를 연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의 등장 등 저자는 한국 현대미술 초기의 모습을 빠르게 스케치해나간다.

해방후 공간에선 좌우 대립 속에서 한국미술이 나아갈 방향을 놓고 갈라지고 합쳐지며 다양한 목소리들에 주목한 가운데, 북한 미술의 흐름도 담아냈다.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이 확립돼가는 과정, 초기 소련 미술의 모방에서 벗어나 주체를 강조하면서 전통에의 회귀와 함께 조선화라 불리는 독특한 수묵화 쟝르를 만들어내는 등 특성을 살폈다.

이에 비해 남한은 복잡한 양상을 띠는데 저자는 한국전쟁 이후 등장한 앵포르멜에 주목한다. 미국의 문화공보원의 대대적인 전시프로젝트를 통해 도입된 미국 추상주의와 일본의 미술잡지 등을 통해 접한 프랑스의 앵포르멜이 합쳐져 한국 특유의 앵포르멜을 낳았다는 평가다.

저자는1970년대 단색화를 둘러싼 논쟁, 80년대 민중운동의 하나로 여겨진 민중미술과 포스트 민중미술의 여성 예술가들의 활동가 작업 등 주요 담론들도 빠짐없이 다뤘다.

한국미술의 흐름을 명쾌하게 제시한 책으로, 이는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외국인의 시선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한국미술:19세기부터 현재까지/샬롯 홀릭 지음, 이연식 옮김/재승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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