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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인전 보다 감동, ‘보통사람傳’ 마을신문과 대자보 화제

  • 기사입력 2020-05-2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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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함영훈 여행선임기자] 역사책에 나오는 사람만이 역사를 만들지 않는다. 70억명 개개인의 삶이 역사이다.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사람인 나와 내 이웃의 이야기를 신문기사와 대자보, 만화 등을 통해 실으면서 역사책의 빈 곳을 채우는 움직임이 눈길을 끈다.

평범한 시민으로 살다 만화가의 꿈을 못이룬채 세상을 떠난 송광용의 만화일기는 아는 국민들 사이에 알음알음 전해지다가 급기야 유럽 문화예술 전시회 초청을 받았다.

전북 ‘완주인생보’ 2019년 10월10일자 톱기사 ‘호밀대로 만든 장석방으로 시집와 최초 여자 경로회장까지’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를 읽어 보자.

‘학교에 다니지못해 가을 운동회에 울리는 농악대를 너무도 보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시아버지 고향은 북한 용진군으로 일찌감치 완주로 이사오셨다. 우리 아버지와 친해 동네에서 술을 함께 마시곤 했는데, 아버지가 우리 둘째 딸 점순이를 얻어가라고 그렇게 말하시더니, 그 말은 결국 내 스무살 때 현실이 됐다.

호밀대로 만든 장석을 엮어서 방에 깔아놓았을 정도로 시댁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듬직한 남편 만나 가난했지만 행복했고, 3녀2남을 낳았다. 셋째를 출산했을 땐 산후통에 시달려 스물다섯 나이에 영정사진을 찍기도 했다.

남편은 동네에서 일 잘 하기로 소문나 백대장님이라 불렸다. 하루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찾아나섰더니 논에서 수렁에 빠진 경운기 바퀴를 맨 손으로 들어올리고 있었다. 옷에 흙을 잔뜩 묻힌채 나를 보는 남편이 너무도 믿음직스러웠다. 우리 참 열심히 살았구나.

지금은 우리 동네 최초로 여자 경로회장이 되었다. 진달래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남편과 내가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완주인생보

완주 삼례예술문화촌 한켠엔 책공방이 있다. 옛 인쇄기계들이 퇴출되지 않고 여전히 일하며 이웃 주민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담은 ‘완주인생보’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신문사는 ‘책공방 자서전학교’이다. 이 신문사의 모토는 “개인의 삶이 역사다. 기록하지 않은 삶은 사라진다”이다.

경남 통영시 서피랑 바로 아래 명정동에 가면 ‘세공주 거리’가 있다. 첫 번째 공주는 최고의 문학가 박경리, 두 번째는 공덕귀(윤보선 대통령 부인), 세 번째는 장차 나타날 명정동 출신 미래 여성리더이다. 고령인구가 다수이지만 이렇듯 미래 여성 리더가 출현할 것을 기대하면서 열심히 사람을 만드는 희망 마을이다.

이 마을은 대자보 마을이자 전국에서 인사를 제일 잘 하는 마을이다. 거리 곳곳엔 주민 개개인의 큰 사진과 짤막한 일대기가 국회의원 선거 벽보처럼 붙어있다. 조태익님의 인생 대자보 ‘도다리, 농어잡이의 추억’을 보자.

‘내는 명정도 소포마을 본토박이다. 한 동네서 나고 자란 처이랑 스물 네살에 결혼했재, 젊어서는 머구리배 타는 선원을 좀 했고, 농사도 좀 짓고 그리 살았다. 농사지을 때 거름이 없어나서 산 넘어 문화동까지 거름지게 지고 O푸러 다녔다.

그 시절에는 '딸딸이'라고 조그만 배를 타고 감시, 도다리, 망심이 잡고, 거제까지 농어 잡으러 댕기고 그랬다. 5남1녀 자식들이 다행히 잘 커주어 다 시집 장가 보내고, 이제 만고 편하다.’

지나던 아이와 어른들, 여행자들에게 이 벽보는 통영 바다 만큼 재미있다. 이 마을은 인사 잘 나누는 동네로 유명하다. 모두를 저명인사로 만든 인생벽보 때문이기도 하다. 아예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200m 길을 ‘인사하는 거리’로 지정했다. 명정동 인사경연대회도 열린다.

통영 명정동의 주민 개개인 일대기를 요약한 대자보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배경지인 명정경로당을 박경리학교로 바꾸어 정규교육을 마치지 못한 분들을 위한 교육, 문화 교류, 마을 아름답게 가꾸기 아이디어 교환도 한다.

영월에 있다가 완주 삼례로 옮긴 책마을에 가면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끝내 그 꿈을 펼지지 못한 평범한 사람, 고(故) 송광용 습작만화 전시장이 있다.

2002년 영월에서 '옛날은 우습구나'란 주제로 열었던 전시회는 이제 삼례에서 상설화됐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후대가 그의 생전 꿈을 이뤄주었다. 입소문이 나더니 2005년 이탈리아 나폴리 코미콘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송광용의 만화일기는 이 평범한 국민 한 사람이 중학교 1학년 때인 1952년 5월부터 1992년 2월까지 40년 동안 쓴 만화형식의 일기이다.

이 일기에는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한 평범한 남자의 꿈과 현실, 희망과 좌절이 그대로 담겨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 만화사에서 하마터면 묻혀버리고 말았을 한 숨은 만화가을 얻었고, 그의 삶을 통해 내 삶도 반추해 보면서 위안과 다짐을 얻는다.

송광용의 만화일기는 총 131권으로 구성되었으며 갱지를 직접 제본하여 표지에 그림을 일일이 그려 넣고 일련번호와 각 권읠 표제를 붙인 것으로 현재 101권만이 남아있다.

평범하지만 친근한 이웃의 이야기는 깊은 공감, 독자의 태도변화를 직접적으로 초래한다는 점에서 불세출의 무용담 보다 큰 인문학이 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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