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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병기 연예톡톡]‘77억의 사랑’의 조기종영이 알려준 교훈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JTBC 외국인 토론 예능 ‘77억의 사랑’이 결국 조기종영됐다. 지난 2월 10일 첫방송을 내보내고, 지난 27일 방송으로 종영했으니 채 3개월도 되지 않았다.

시청률도 계속 1%대에 머물다 마지막회에 출연한 임영웅-영탁 게스트에 힘입어 3.8%를 기록했다.

‘77억의 사랑’은 한마디로 기획의 실패다. 저렇게 다양한 국가에서 온 좋은 재료들로 맛없는 요리를 만들어냈으니, 가성비가 크게 떨어지는 프로그램이 된 셈이다. 이 정도면 예능 흑역사로 기록될만하다.

‘77억의 사랑’은 전 세계 인구 77억 명을 대표하는 세계 각국의 청춘 남녀가 국제커플들의 고민이나 사례를 통해 요즘 세대들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이성에 관한 생각과 문화를 함께 이야기하는 연애 토론 프로그램이다.

기획의도만 보면 ‘미녀들의 수다’와 ‘비정상회담’을 적절히 섞어 내보내겠다는 기획력의 빈곤이 읽혀진다.

1회를 보고나니, 많은 외국인들을 모아놓고 첫번째 이슈로 ‘동거’를 찬성하냐고 묻는 건 좀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녀들의 수다’나 ‘비정상회담’에서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내용이다. 이건 연예정보프로그램에서 리포터가 연예인을 인터뷰 하면서 키스신을 어떻게 했느냐고 매번 묻는 것처럼 촌스러웠다.

이후 ‘77억의 사랑’은 ‘코로나19’ 이슈를 다룬 경우를 제외하면 비혼, 프러포즈, 마마보이, 바람, 결혼식 문화, 혼전계약서 등 연애 관련 이슈나 휴직, 신흥종교, 재테크, 악플 등 보다 일반적 이슈들을 주제로 다뤘다.

그런데 여기서 나온 이슈로 화제가 된 적이 거의 없다. 이것도 이 프로그램의 실패를 말할 수 있는 척도다. 악플 이슈를 다룰 때, MC 김희철과 한 칼럼니스트간 공방이 있었지만, 이 마저도 본질을 벗어나는 형태로 다뤄졌다.

임영웅-영탁이 게스트로 나왔을 때에도, 두 사람이 무명시절부터 살아온 과정을 듣는 시간을 너무 많이 할애해(이게 시청률을 올리는 방법은 되겠지만), 많은 외국인 패널들을 '병풍화'시켰다. 주제나 이슈와 전혀 상관없는 이런 점도 프로그램의 정체성 빈곤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MC진도 신동엽, 유인나, 김희철을 섭외했다면 입담이나 톤에서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차별성이 없었다. 연애상담에 능력을 지니고 있는 유인나는 여기보다는 오히려 ‘선다방’에서 더 큰 활용도를 보여준 바 있다.

유인나는 연애 카운슬러로서의 조언 내용 못지 않게 따뜻함을 장착한 소통의 매너가 돋보인다. ‘77억의 사랑’ 제작진이 이런 유인나 캐릭터의 '톤 앤 매너'를 살리려는 세심한 노력을 얼마만큼 했는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MC진 뿐만 아니라 외국인 패널 개개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개개별 캐릭터의 세세하고도 충분한 파악이 우선이다.

‘77억의 사랑’의 출연진은 미국, 중국, 러시아, 스웨덴, 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영국, 일본, 프랑스, 모로코, 핀란드, 스페인, 독일 등 다양한 국적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출중한 능력과 매력을 뽐냈고, 비교적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과시했다. 활용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빛나는 원석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녀들의 수다’와 ‘비정상회담’을 경험한 후의 외국인 토론 예능이라면, 조금 더 구체적인 방향을 찾고 시작했어야 했다. 그것이 ‘연애’였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시청자들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이미 눈높이가 올라가 있다.

‘77억의 사랑’은 아무리 좋은 재료로도 참신한 기획 없이는 맛없는 음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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