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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일한의 住土피아] 호가·시세·실거래가…그리고 집값담합

집값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한대에 가깝다. 땅값, 건설 원가, 경기 상황, 소득수준, 금리, 주택 수급 여건, 전세가, 대출 제도 등의 경제 내적인 요인부터, 정부 정책 기조, 남북 관계, 교육 제도, 인구 및 가족 변화 같은 외부 변수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단지 별로 교통 여건, 주변 편의 시설, 설계, 브랜드 등 세부 요인에 따라 집값이 움직인다. 개발 기대감, 규제 완화 전망 등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 가치도 집값에 반영된다. 정부가 요즘 행정력을 집중하는 ‘집값 담합’도 특정 지역 시세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튀어나올 수 있다.

자, 당신이 집을 판다고 가정하자. 얼마에 내놓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주변 비슷한 주택 가운데 가장 최근 거래된 것을 기준으로 삼는 거다. ‘실거래가’ 기준이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여기저기 물어보면 중개업자는 요즘 이 지역에 팔려고 나온 집이 별로 없는 데 사겠다는 수요자가 많다고 한다. 단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옆 단지 집값이 많이 오르고 있다는 정보도 확인했다. 그래도 직전 실거래가로 내놓을까? 당연히 올릴 것이다.

강남구 청담동 고가 빌라 단지처럼 실거래 사례가 별로 없는 집은 더 복잡하다. 층과 크기는 다르지만 실거래가 2년 전 한 건 있었다. 비슷한 값에 내놓을까? 그 사이 달라진 주택 시장 상황, 물가 등을 고려해야하지 않을까! 최근 개발호재가 발표됐다면? 이는 무조건 집값에 반영해야 한다.

집주인은 일반적으로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따라 집값을 정한다. 앞으로 올라갈 가격까지 다 반영하고 싶다. 그렇게 내놓은 게 이른바 ‘호가’다. 집주인이 부르는 값이다. 일반 상품의 ‘권장소비자가격’하고 똑같다. 제조업체가 임의로 정하는 가격이다. 몇몇 시민단체는 호가는 실제 집값이 아니기 때문에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집주인 생각은 다르다. 현재 시장 상황, 미래가치를 고려한 가장 합리적인 값이다.

그럼 이렇게 내놓으면 팔릴까? 시장 상황에 따라 다르다. 집값이 오르는 활황기엔 매수자가 금방 따라온다. 더 오르기 전에 사겠다고 덤비는 매수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호가가 어느새 ‘실거래가’가 된다.

요즘처럼 거래가 안되는 침체기면 상황이 다르다. 집주인 마음대로 내놓은 집값에 움직일 수요자는 없다. 이런 상황엔 늘 빨리 팔아야 하는 ‘사정 있는’ 집주인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호가를 낮춘다. 그래도 수요자가 따라오지 않으면 값을 더 낮추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특정 단지에 나오는 호가, 실거래가 등이 모여 ‘시세’가 된다. 예컨대 A아파트 시세는 ‘8억~10억원’으로 표시된다. 가장 싸게 나온 것부터 비싼 것까지 모두 포함한다. 일부는 실거래가 이뤄진 것일 수 있다.

당신이 중개업자라면 어떻게 할까? 중개업자는 무조건 거래를 성사시켜야 수익이 난다. 집값이 오르는 상황이면,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비싸게 팔아 줄 테니 내놓으라고 부추긴다. 매수자에겐 더 오르니까 빨리 이 값에 사라고 유혹한다. 집값이 떨어지는 시기엔 반대다. 집주인에겐 시세보다 더 낮게 내놓아야 거래가 성사된다고 분위기를 전하고, 매수자에겐 집값이 많이 빠졌으니 이 값에 사는 게 좋다고 유도한다.

정부가 집값 담함 의심 사례 364건을 검토해 범죄 혐의가 확인된 11건을 형사 입건하고 100건을 내사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카페에 “XX부동산(중개업소)에 절대 물건 주지 맙시다. 부동산에 5억이상 내놓으세요”라거나 “부동산 매물을 내놓을 때 신고가 대비 저층은 2000만원 이상, 고층은 5000만원 이상으로 내놓아야 합니다”라는 글을 올린 게 대표적인 형사 처벌 대상이라고 한다.

집주인들끼리 집값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특정 중개업소에 대해 불만을 표현한 글을 올린 게 담합이고 형사 처벌 대상이라는 것이다. 주택 거래에 늘 있었던 정보 공유, 의견 제시가 어느 순간 형사 처벌 대상이 된 셈이다.

집값이 정말 저런 게시판 글 때문에 올랐을까? 호가를 너무 높게 부르면 사지 않으면 그만이다. 다른 지역 집값을 알아보면 된다. 이게 왜 형사 처벌 대상이 됐는지 아직 잘 납득이 안된다.

박일한 건설부동산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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