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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官製民資’ 증안펀드 출범…은성수-강신우의 설욕전(?)
금융위 “대기업 주가부양용 아니다”
대기업 주식에 투자할 수 밖에 없어
CIO 전 직장 한국운용, 사령부 역할
민간서 반강제 갹출, 수익성 딜레마
주주환원 정책 왜곡 등 부작용 우려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최대 10조7600억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가 9일 공식 출범했다. 일명 ‘다함께 코리아 펀드’다. 관제(官製)인데 돈은 민간이 내는(民資) 구조다. 비영리 국가기관인 중앙은행 자금으로 투자하는 일본과 다른 점이다.

▶대기업에 대부분 투자될 수밖에=한국투자신탁운용이 총괄하고 26개 하위 운용사가 각각 운용한다. 하지만 종목이 아닌 시장, 즉 지수에 투자하는 만큼 투자 대상은 결국 코스피, 코스닥, KRX 등 지수가 될 전망이다. 국내 증시는 시가총액 비중 방식이다. 증안펀드도 그에 따를 수밖에 없다. 시총 비중대로 삼성전자에 25~30%가 투자하는 식이다. 대기업 주가 부양을 돕는 펀드는 아니지만 대기업 주식을 가장 많이 살 수밖에 없다. 때마침 증안펀드 조성 직후 한국거래소는 인덱스와 ETF 등 시장형 상품에 삼성전자 비중 한도를 30%로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증안펀드 역시 시총 비중만큼 삼성전자를 담을 수 있게 됐다. 일본은행도 ETF 형태로 시총 비중별 투자를 하지만 우리나라 증시만큼 특정 종목 쏠림이 심하지는 않다.

아이러니하게 정부와 여권에서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종용하고 있고, 금산분리도 강조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이번 증안펀드에서 시중은행보다 돈을 많이 내는 회사다. 또 상당수 비은행 출자사들이 대기업 계열이다. 이들의 돈이 어찌 됐건 삼성 등 대기업 주식으로 흘러가게 됐다.

▶증시안정•수익 두 마리 토끼 잡아야=1500조원에 달하는 시가총액(코스피+코스닥)에 비해 적은 금액인 듯 보이지만, 신규 설정이어서 순수한 매수자금이다. 3월 코스피에서 외국인과 개인이 약 1조원 차이를 두고 사상 최대 규모의 순매도·순매수로 맞붙었던 점을 고려하면, 운용의 묘를 살린다면 시장 수급의 균형을 충분히 깰 수 있을 규모다.

하지만 이번 증안펀드는 태생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관제 펀드지만 민간의 돈이니만큼 수익이 나야 한다. 일본은 무자본 특수법인인 중앙은행 돈이니 수익성 부담이 거의 없다.

증안펀드는 필요한 때 출자약정사로부터 돈을 모으는 캐피털 콜(capital call) 방식으로 조성된다. 투자 대상이 한정적인 만큼 운용의 핵심은 매입 시기와 규모다. 시장 안정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26개 하위 운용사가 저마다 수익 추구에 나선다면 증시 부양의 애초 목표가 퇴색될 수도 있다. 대표 운용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은성수-강신우 콤비 재결합=연합사령관격인 최고운용책임자(CIO)를 맡은 강신우 매니저는 2005년부터 6년간 한국운용 CIO로 재임했었다. 1999년 현대투신에서 ‘바이코리아펀드’를 직접 운용했고, 2005년 한국투신운용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삼성그룹주펀드의 흥행을 견인한 국내 펀드매니저 1세대다.

사령관은 강 매니저이지만 통수권자는 금융위원장이다. 결국엔 금융 당국의 위세에 눌려 금융회사들이 돈을 냈기 때문이다. 둘의 호흡이 중요하다. 다행히 은성수 현 금융위원장이 한국투자공사(KIC) 사장 시절 CIO가 강 매니저였다. 다만 콤비의 성적은 썩 좋지는 않았다.

2015년까지 KIC 주식투자 성과는 줄곧 비교지표(benchmark)를 상회했는데, 은 위원장과 강 대표가 호흡을 맞춘 2016년에는 2.3% 이상 하회하며 부진했다. 은 위원장이 수출입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긴 2017년 잠시 수익률이 회복되는 듯하지만 2018년 다시 시장에 패한다. 결국 강 매니저는 2019년 초라한 성적만 남긴 채 KIC를 떠난다.

▶증안펀드 과연 필요한가=일단 출범은 했지만, 코스피가 이미 1800선인 만큼 활동을 시작하기가 애매하다. 반등장에서 소중한 실탄을 소모할 경우 수익률에 부정적일 수 있다.

개인들이 적극적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상황에서 과연 정부가 민간의 팔을 비틀어 증안펀드를 만들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일본이 중앙은행 자금을 활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도 연방준비제도의 증시 부양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 민간회사에 강제 갹출을 하자는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선택의 문제일 수 있지만, 은행이 경우 대기업 주식을 사는 데 따른 자본 부담이면 경영이 어려운 기업에 더 큰 규모의 여신을 공급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 주식 살 돈으로 여러 중소기업을 도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외국인이 증시의 3분의 1 이상을 장악한 상황에서 자칫 ‘매물받이’가 될 수도 있다. 시장가격 하락을 막아 외국인의 차익실현을 돕는 효과다. 어쩔 수 없이 대기업에 대부분이 투자되는 구조인데, 자사주 매입 등 기업 본연의 주주 환원 정책을 느슨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은행에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자제하라고 하면서 은행 돈으로 대기업 주식을 사는 것도 난센스다. 이번 증안펀드에 낸 돈이면 엄청난 수준의 자사주 매입이 가능하고, 자기자본수익률(ROE)도 크게 높일 수 있다.

실제 미국 기업은 지난해까지 초저금리를 활용해 빚을 내면서까지 배당을 늘려 ROE를 높였다. 워낙 차입이 심해서 최근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래도 미국 대형 은행들은 배당성향 유지를 다짐하고 있다. 반면 우리 기업들의 배당성향은 여전히 선진국 대비 절반 수준이다. 배당매력이 줄어들면 은퇴 자금이 월세를 받을 수 있는 부동산으로 향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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