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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 ‘위대한’ 한국 배우들
뉴욕 42번가 진출 최초 한국인은 이소정
웨스트엔드 남녀 첫 주인공 홍광호·김수하
100여명 해외 활동…‘언어의 벽’이 최종 관문
동양인 최초 ‘시스터 액트’ 출연 영예 김소향
“美 유학시절 새벽 5시까지 영어공부 했다”
배우 김수하는 한국인 최초로 웨스트엔드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이상섭 기자
뮤지컬 배우 김소향은 동양인 최초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스터 액트’에 출연했다. [EA&C 제공]

“들어봐. 널 부르는 멋진 브로드웨이!”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남자 주인공이 부르는 ‘브로드웨이의 자장가’의 한 소절. 브로드웨이는 전 세계 공연 제작자와 배우들에게 여전히 ‘꿈의 무대’다. 한국 뮤지컬 시장 규모의 5배에 달하고, 연간 1300여만 명이 찾는 뉴욕의 한복판. 시장 규모도, 제작 환경도 최고를 자랑한다. 미국 브로드웨이와 함께 연극·뮤지컬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곳은 런던의 웨스트엔드다. 비영어권 배우들에겐 진입장벽이 높은 이 두 곳을 향해 한국의 실력파 배우들이 꾸준히 도전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진출한 사례는 꽤 오래 됐다. 브로드웨이에서 한국인 최초의 역사를 안은 이름은 바로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인 ‘미스 사이공’에서 주인공 킴(KIM) 역을 맡은 이소정이다. 이소정은 스물한 살의 나이에 뮤지컬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에게 발탁, 1995~1997년까지 전미 투어, 1998~1999년까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다. 웨스트엔드에서 첫 주역을 맡은 한국인 배우는 뮤지컬 스타 홍광호다. 홍광호는 2014년 웨스트엔드 ‘미스 사이공’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베트남 장교 ‘투이’ 역을 소화했다.

뮤지컬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들을 필두로 해외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배우들은 무려 100여명에 달한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해외 제작사나 공연팀들 중엔 한국 배우들의 노래 실력과 연기력은 다른 나라보다 월등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며 “언어의 장벽만 넘는다면 한국 배우들은 뮤지컬의 본고장으로 꼽히는 무대에서 발탁될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고 말했다.

덕분에 한국 뮤지컬 배우의 해외 진출기에는 ‘최초’라는 단어가 많이 쓰인다. 동양인 배우의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는 ‘시스터 액트’만 해도 한국 출신 배우를 여럿 배출했다. 홍광호의 뒤를 이어 배우 조상웅이 2015년 웨스트엔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투이 역할을 연기했다. 현재 ‘스웨그에이지:외쳐, 조선!’에 출연 중인 배우 김수하는 국내 데뷔 이전에 웨스트엔드 ‘미스 사이공’으로 먼저 데뷔했다. 당시 캐머런 매킨토시 프로덕션 오디션에서 앙상블(킴이 일하는 술집 아가씨들 가운데 한 명)이자, 킴의 언더스터디(주역 배우에 문제가 생겼을 때 투입되는 배우)를 맡아 여러 차례 주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웨스트엔드에서 한국인이 여주인공을 맡은 것은 김수하가 처음이다.

뮤지컬 배우 김소향은 동양인 최초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스터 액트’(2017)에 출연했다. ‘시스터 액트’에서 김소향이 맡은 메리 로버트는 ‘예쁜 백인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역할이라 현지에선 무명의 한국 배우의 캐스팅이 화제가 됐다. 김소향은 한국에서 뮤지컬 배우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2011년 갑자기 미국 유학을 떠나며 브로드웨이의 문을 두드렸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로 앞서 간 배우들은 현지 진출 요건 일순위로 ‘언어’를 꼽는다. ‘언어의 벽’을 넘어야 오디션의 관문을 통과하고, 관객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소향의 경우 뉴욕영화학교에서 공부하던 유학 시절 하교 후엔 집으로 돌아와 새벽 5시까지 영어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는 “언어가 완벽하지 않은 이방인의 슬픔을 많이 느꼈다”며 “오디션을 보면 1, 2차는 붙고 3차에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브로드웨이 오디션만 해도 무려 250여번에 달한다”고 말했다.

배우들이 경험한 해외 무대는 국내 무대와의 차별점도 많다. 특히 오랜 역사를 가진 라이선스 뮤지컬의 경우 긴 시간 동안 축적한 매뉴얼이 정해져 있어 창작 뮤지컬처럼 배우가 함께 만들어가는 요소가 적다.

김수하는 “국내 창작 뮤지컬의 경우 배우와 작가, 연출이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캐릭터를 조율해나갈 수 있다면 오랜 시간에 걸쳐 검증이 끝난 라이선스 작품들은 모든 캐릭터가 이미 구축된 상태라 배우가 만들어나가는 폭이 적다”고 말했다. 김수하의 경우 ‘미스 사이공’이 만든 ‘킴의 옷’을 입기까지가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한다. 그는 “라이선스 뮤지컬은 체스판에 체스를 놓듯 무대에 배우라는 체스가 움직이듯이 연습하고 공연했다”고 말했다.

해외 무대에서의 경험은 배우들의 한국 활동에도 새로운 전환점이나 이정표가 되곤 한다. 김소향은 “미국에서의 유학과 활동 경험은 한국에서 예고, 예대에서 배운 것 만큼의 경험과 공부가 됐다”며 “특히 배우로서의 자세와 태도를 많이 배웠다. 워낙 많은 오디션에 떨어지다 보니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는 법을 배웠고, 동료들과 경쟁이 아닌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도 수많은 배우들이 맨땅에 헤딩하듯, 묵묵히 ‘꿈의 무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큰 만큼 선배 배우들은 다양한 지원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김수하는 “실력이 있어도 당장의 항공권 지불 여건이 되지 않아 못 가는 친구들이 많다”며 “현실적인 어려움과 부담으로 선뜻 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배우들을 위한 지원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소향 역시 “가능성 있는 친구들을 뽑아 해외에서 한두 달 과정으로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커리큘럼을 들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꿈을 펼치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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