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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기술 보호와 금난전권

해마다 정부부처는 새해 업무계획을 수립하는 데 많은 고민을 한다. 올해 공정위의 경우 중소기업의 기술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데 특히 그랬다. 중소기업에서 개발한 기술을 철저히 보호하고, 대기업이 이를 유용하거나 탈취할 경우 엄중 처벌한다면 일견 쉽게 해결될 문제처럼 보인다. 그런데 기술 ‘보호’인가 아니면 ‘활용’인가의 문제로 나눠보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개 기술은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래서 이를 제대로 보호해줘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렇다고 기술 보호 자체가 목적이진 않을 것이다. 기술은 개발된 이후 폭넓게 사용되고, 이를 기반으로 더 많은 개량기술이 개발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어느 중소기업이 많은 비용을 들여 혁신적 기술을 개발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기업은 이 기술을 부품 생산에 활용해 대기업에 더 많이 납품하여 이익을 내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납품받는 대기업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보통 대기업은 동일한 부품이라도 여러 중소기업과 거래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산공장이 여러 지역에 분산해 있거나 중소기업의 재해나 사고 등에 대비해 복수의 거래처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기업 입장에서는 어느 한 중소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면 자기와 거래하는 다른 중소기업도 이 기술을 사용하게 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그래야 완성품 품질을 높이고 단가를 낮추거나 공장이 어디에 있든지 균질한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그래서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기술을 돈을 주고 구입하든지 혹은 무단으로 사용하게 되는데 이때 기술 유용이나 탈취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일부 대기업의 불공정한 관행이겠지만 이 때문에 중소기업의 기술 유출 피해를 추산하면 지난 6년간 약 8000억원 수준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공정위는 기술 유용이나 탈취 사건의 전담조직을 신설하는 등 법 집행 체계를 마련했고, 법 집행도 직권조사를 중시하고 과징금 부과는 물론 형사 고발 등을 통해 엄중 제재하고 있다. 또한 국회는 기술 탈취 행위에 대해 과징금 수준을 높이고 10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입법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부터 부당하게 기술 자료를 요구받는 비율이 2017년 4.2%에서 2019년 0.7%로 감소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지나치게 강력한 규제와 법 집행은 대기업에 새로 개발된 기술의 활용을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 기술 구입에 큰 비용을 지불하거나 또는 기술을 사용하며 불법행위에 휘말리는 것을 좋아할 대기업 임직원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 보호에 치중한 대책만이 능사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정당한 대가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술을 거래할 수 있는 장(場)을 만들고, 기술의 가치에 대해 정당히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시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선 후기 상업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오늘날 노점상에 해당하는 난전(亂廛)을 금지하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을 시행한 역사가 있다. 난전의 자유로운 상행위를 단속하자 당초 기대했던 상업이 발전은커녕 위축과 퇴보를 반복했다. 일부 기득권 상인의 횡포로 중소 상공업자들이 핍박을 받아 활발한 상행위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정조 때인 1791년 금난전권의 폐지와 함께 상업 활동이 왕성해지며 발전의 전기를 맞았다.

중소기업의 기술 보호에 치중한 시책은 마치 금난전권의 시행처럼 기술 개발의 싹을 질식시킬 우려가 있다. 오히려 개발된 기술이 활용되도록 기술 거래가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는 다양한 시책을 더 강구할 필요가 있다. 올해 공정위 업무계획 작성에서 많이 고민했고 앞으로 계속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지철호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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