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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 스토리] “물 수업 한다니까…처음엔 다들 미쳤다고 했죠”
대학에 워터 소믈리에 교육과정 개설 고재윤 경희대 교수 “사람마다 ‘좋은 물’ 달라…체질 따라 골라먹는 시대 올 것”
지난 14일 경희대 교수실에서 오리온 제주용암수 제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고재윤 워터소믈리에 겸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외식경영학과 교수. [오리온 제공]

“좋은 물(水)이란 깨끗하고 맛있을 뿐 아니라 건강한 물이라고 생각해요. 미네랄을 적정 함유한 물이 건강한 물이죠. 육류를 많이 먹으면서 미네랄 부족 현상을 겪는 현대인들이 많아졌거든요.”

최근 서울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교수실에서 만난 고재윤(64)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는 ‘좋은 물’을 이렇게 정의했다. 고 교수는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장이자 국내 대표 워터 소믈리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에 따르면 깨끗한 원수(原水)를 바탕으로 청량감과 부드러운 목넘김 등 ‘물맛’을 갖춘 동시에, 현대인에게 필요한 미네랄 성분까지 적정량 함유한 것이 좋은 물이라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화두인 시대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현대인들의 관심이 큰 가운데, 좋은 물을 찾는 수요도 늘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좋은 물을 선별하고 체질에 맞게 추천해주는 물 전문가 ‘워터 소믈리에’도 주목받고 있다. 와인 전문가였던 고 교수는 관심 분야를 물과 차(tea)까지 넓히면서,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단어조차 낯설었던 워터 소믈리에 교육 과정을 국내에 처음 개설했다.

▶ “건강 때문에 물 관심=이제는 세계서 교육 선도”=“처음에 물 수업을 한다니까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물을 그냥 먹으면 되지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누군가는 사기친다고도 하고 그랬죠.”

고 교수가 물에 관심을 가진 건 자신의 건강에 이상을 느끼면서다. 그는 1980년부터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일해오며 식음료부장, 외식사업본부장을 거쳤다. 2001년엔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워커힐에 있을 당시 그는 와인 소믈리에 과정을 국내 호텔에 처음 도입했다.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와인 교육과정 개설을 주도했다.

긴 시간 와인을 입에 달고 살다보니 고혈압, 당뇨, 비만 등이 찾아왔다. 이를 해결할 민간요법을 찾던 그는 ‘물’과 ‘차’에 눈을 돌리게 된다. 2010년부터 물과 차 공부를 시작했고 전 세계 유명 수원지와 차 생산지를 직접 다니며 공부했다. 여전히 와인 산지도 매년 가고 있다. “학문에 있어 현장에서 확인되지 않는 건 의미가 없다”는 그의 철학 때문이다.

고 교수의 뚝심은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물 파는 것을 봉이 김선달의 수완 쯤으로 여겼던 한국 풍경을 세계 최고 수준의 물 전문가와 교육과정을 보유한 곳으로 바꿔놨다. 대학에 워터 소믈리에 교육과정이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세계적인 프리미엄 워터 전문 품평회인 파인 워터스(Fine Waters) 국제워터품평회 심사위원 6명 중 2명이 한국인이다. 고 교수와 그의 제자인 김하늘 워터 소믈리에가 그들이다.

▶ “체질따라 물 골라먹는 시대 올 것”=이제는 국내에서 활동 중인 워터 소믈리에가 250명 규모까지 늘었다. 워터 소믈리에는 2014년 교육부가 선정한 3대 유망직업이자, 2025년 유망직종 100위 안에 들기도 했다.

고 교수에 따르면 이들 전문가들 눈에 물은 각각 밝기도 다르고 흔들어보면 요동치는 모양도 다르다. 평소에 물맛의 차이를 느끼긴 어려워도 소주나 맥주, 와인 등에 각기 다른 물을 타서 마셔보면 술맛 자체가 제각각 달라지는 걸 실감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어떤 얼음을 쓰느냐에 따라 위스키 맛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맛 뿐만 아니라 사람의 체질이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맞는 물이 따로 있다. 이를 파악하고 추천해줄 수 있는 것이 워터 소믈리에의 역할이라고 고 교수는 말한다. 예컨대 위장이 좋지 않은 사람은 미네랄이 적은 물이 적합하다. 운동하는 사람은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땀 성분과 유사한, 칼슘과 마그네슘 비율이 2대1인 물을 먹는 것이 좋다.

“과거엔 물을 사먹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다들 사먹죠. 체질에 따라 물을 골라먹는 시대도 곧 올 거라 생각합니다.”

▶염지하수 가장 좋은 물=청량감 등 물맛도 중요=좋은 물의 효능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그는 지난 1년여간 프리미엄 미네랄워터 ‘오리온 제주용암수’ 개발에도 참여했다.

고 교수는 물에 녹아있는 미네랄 성분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칼슘, 마그네슘, 칼륨, 나트륨을 꼽았다. 그는 “세계적으로 장수하는 마을에 가보면 물에 칼슘과 마그네슘이 많이 들어있다”며 “우리 몸의 뼈, 근육 등을 만들어주고 활성화시켜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반 생수에 주로 쓰이는 지하수에 비해 해양심층수(바다 깊은 층에 있는 물)와 염지하수(해양심층수와 여과지하수가 만나 지하암반층에 자리잡은 물, 용암해수)가 특히 미네랄 함량이 높다. 다만 해양심층수는 쓰나미(지진해일) 등 오염 요인이 있을 수 있어, 상대적으로 외부환경 영향을 덜 받는 염지하수를 고 교수는 더 좋은 물로 꼽았다.

오리온 제주용암수가 바로 제주도지역 염지하수를 원수로 만든 미네랄워터 제품이다. 칼슘 62㎎/L를 포함해 칼륨 22㎎/L, 마그네슘 9㎎/L 등을 함유했는데, 이는 국내 시판 생수대비 칼슘은 13배, 칼륨은 7배, 마그네슘은 2배 많은 수준이다.

유익한 성분 못지 않게 물맛도 개발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는 “한국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물은 청량감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물”이라며 “칼슘과 마그네슘의 밸런스에 따라 이 청량감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또 물의 단맛과 산성화되는 신체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약 알칼리성(pH 8.1~8.9)으로 제조됐다.

1년여 개발기간 동안 물맛을 잡아가는 과정은 험난했다.

특히 이취(냄새) 잡는 과정이 까다로웠다. 이취가 한 가지 원인으로만 발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네랄 비율 문제가 원인일 수도 있고, 담는 용기나 보관상 문제일 수도 있다. 고 교수와 국가대표 워터소믈리에 5명이 정수 수준이 85점이 나올 때까지 테스트를 거듭했다. 물의 온도도 물맛에 중요한 부분이기에 전문가들이 선호하는 12도와 일반인이 선호하는 7도(냉장고 보관시 온도)를 오가며 물맛을 계속 비교 분석해야 했다. 그렇게 청량감이 돋보이는 프리미엄 미네랄워터를 완성할 수 있었다.

▶ “한국 와인, 전통주 세계화에도 기여하고파”=고 교수는 최근 물과 차를 넘어 전통주 분야까지 관심 영역을 넓혔다. 일본 전통주 사케는 세계적 인지도를 쌓고 자격제도가 생겨났는데, 한국의 전통주는 아직 그만큼의 위상을 가지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다.

“물과 차 분야는 한국이 세계적 권위를 가지게 됐지만 한국와인과 전통주는 갈 길이 멀어요. 그래도 최근엔 한국와인이 세계적 품평대회에 나가 상도 받고, 특급호텔에서 16만원씩 판매될 만큼 품질도 좋아졌죠. 수출을 목표로 한국와인과 전통주를 세계화하는 데 힘을 쏟으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요.”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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