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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文대통령 ‘기생충 축하 오찬’은 해도 조용히 했어야 했다
“코로나19 위기 와중에”…‘짜파구리 오찬’에 비판들 거세
이언주 “영화에 숟가락 얹으려는 문대통령 사고 이해못해”
네티즌 일부도 “靑, 민심과는 동떨어진 오찬 파티 즐겼다”
“일정 취소 했어야…불가했다면 홍보 자제한 오찬 했어야” 
문대통령 “곧 코로나19 종식될 것” 발언도 재차 도마위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영화 ‘기생충’ 제작진, 배우 초청 오찬에 앞서 축사를 하고 있다. 왼쪽은 봉준호 감독. [연합]

수년전 미국 백악관을 갔을때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렸다. 바로 직전에 백악관 관계자를 봤는데, 그는 미국 대통령에 관한 이미지 홍보가 얼마나 세심하게 이뤄지는 지 설명했다. 진짜인지, 약간의 뻥(?)이 들어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미국 대통령은 몸짓 하나하나도 연출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로즈가든 기자회견만 해도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입장때부터 연단에 서기까지 다 시나리오가 있어요. 예를들어 입구에서 10미터 정도 걸어오다 45도 각도로 청중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미소를 짓습니다. 또 걸어가다가 오른손을 들고…. 이런 것들이 다 사전에 연출된 것이죠. 대통령, 예행연습도 합니다.”

온화한 얼굴과 이미지, 품격을 강조하기 위해 약속된 장소에서 얼짱 각도로 미소짓거나 손을 흔드는 것, 이것이 다 연습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미국 대통령, 참 대단한 자리지만 힘들기도 한 자리겠다 싶었다.

일정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우리로선 대통령실이라 부르는 곳에서 대통령 일정을 짜는데, 6개월간의 스케줄, 더 심하면 1년간의 일정이 촘촘히 짜여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갑자기 끼는 일정도 있지만, 대부분은 분초를 따지면서 만든 일정이라고 했다. 미국 대통령의 일상은 그러니 숨가쁘게,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돌아간다고 했다. 이것 역시, 미국 대통령 하기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통령의 이미지 연출과 일정관리를 통한 국정운영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대통령의 모든 스케줄엔 각각의 간단치 않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일정 하나가 뒷말을 일으키고 있다. 작품상을 비롯해 아카데미 4관왕을 거머쥔 빛나는 영광의 봉준호 감독을 포함한 ‘기생충 제작진과 출연진(이하 기생충팀)’과 문 대통령과의 오찬 스케줄이 바로 그것이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봉 감독 및 제작진과 출연진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문 대통령과 기생충팀은 영화의 핵심소재였던 ‘짜파구리’ 먹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문 대통령은 봉 감독을 향해 ‘우리 봉 감독’이라고 몇번이고 친근감있게 말을 붙였고, 봉 감독 역시 문 대통령의 영화에 대한 이해와 식견이 탁월하다고 예의를 갖춘 발언을 전하는 등 이날 오찬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들간에 미소와 미소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 등 제작진, 배우들과 환담하고 있다. [연합]

그럴수 있다. 기생충은 한국 영화 100년사에 있어서 기념비적 업적을 일군 것이 사실이고, 기생충은 문 대통령 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이들로부터 칭송받을 자격이 있다고 본다. 청와대는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고, 기생충팀을 격려하는 행사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점이 이상했다. 오찬 전날에 대구·경북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 발생하면서 코로나 확산에 대한 위기감이 커진 상황이었다. 코로나 걱정들 때문에 세상이 시끌벅적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청와대에선 이에 대한 고민과 고려 없이 오찬을 강행했고, 대통령과 기생충팀이 활짝 웃는 모습이 자세한 대화내용과 함께 요란한 축제 마냥 흘러나온 것이다. 일각에선 “이미 오찬 전날부터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는데, 행사를 연기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일부 네티즌들 역시 곱잖은 시선을 보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들 힘들어 하고 있는데, 청와대가 민심과 동떨어진 오찬 파티를 즐겼다”는 식의 댓글도 상당히 달렸다.

야당은 작심한 듯 직격탄을 날렸다. 이언주 미래통합당 의원은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 와중에 기생충 영화에 숟가락이나 얹어보려는 문 대통령의 사고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불과 며칠 전 대통령 입으로 종식을 앞두고 있다던 코로나는 오늘 확진자 100명 돌파로 창궐 중이고 결국 어제 사람이 죽었다”며 “마스크 품절로 약국, 마트에 마스크 찾아다니는 국민들 뇌리에는 며칠 전 중국에 마스크를 어마어마한 수량 기부했다며 자랑하던 대통령 얼굴이 스치며 분노가 치민다”고 꼬집었다.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김정숙 여사가 만들었다는 ‘대파 짜파구리’ 오찬을 즐긴 것을 겨냥해 “일국의 대통령 말 한마디가 정말 온 나라를 짜장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비난했다. 그는 “대통령은 지금 짜파구리나 먹으며 한가한 소리할 때가 아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코로나 방역 총력대응을 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조경태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서 “국민이 코로나19 공포감에 휩싸여 있는데 청와대에서는 봉준호 감독을 불러 짜파구리 파티를 했다고 하니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날선 야당 중심의 반응이고, 그 반대의 시각도 뒤따랐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그렇다고 대통령 일정을 모두 포기하라는 말인가. 기생충 제작진과 출연진 격려는 한국 영화산업 발전에 있어서도 의미있는 행사”라고 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야당이 대통령 일정을 놓고 지나친 공세적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며 “기생충의 쾌거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도 중요한 일정일 수 있다”고 문 대통령을 옹호했다.

사실 대통령이 어떤 자리인가. 국정 전반을 총괄하면서 큰 그림의 접근을 해야 하는 동시에 ‘디테일’에도 강해야 하는 법이다. 기생충팀과의 오찬과 격려는 디테일한 일정의 하나일 수 있다. 무조건 비난만을 퍼부을 일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청와대는 분명 잘못했다. 잠잠해질 것 같던 코로나19 위기감이 갑자기 더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오찬행사는 취소했어야 했다. 다음으로 미뤘어야 할 일이다. 물론 대통령으로선 하늘이 두쪽이 나도 소화해야 할 일정이 있을 것이다. 청와대 측에선 이미 잡힌 일정이고, 또 반드시 진행해야 할 스케줄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기생충팀과의 오찬이 ‘하늘이 두쪽 나도 강행해야 할 일정’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긴급 취소에 따른 여러가지 부담을 고려했을수도 있겠다 싶다.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조여정, 이선균 등이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초청 오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은 봉 감독의 대학동기인 육성철 청와대 행정관. [연합]

그렇다면 최대한 ‘절제의 미학’을 보여줬어야 했다. 캔슬이 어려웠다면 오찬 사실만 알리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듯한 모습은 안보였어야 했다. 코로나19로 전국이 좋지 않은 상황임은 분명하지만, 아카데미 4관왕을 거머쥔 기생충팀과의 미리 잡힌 오찬도 의미있기에 최대한 단촐한 행사로 진행했다는 짧은 소개 하나면 될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야당의 지적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김정재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영화 기생충의 성과는 온 국민이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라며 “하지만 조용히 치하의 뜻을 전해도 될 일이었다. 굳이 언론을 통해 대통령 내외의 함박웃음을 보여줄 필요도, 영부인의 대파 짜파구리 레시피를 알려줄 필요도 없었다”고 했다. 청와대의 타이밍 맞지 않는 ‘기생충 마케팅’을 꼬집은 것이다. 앞서 나경원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서고, 사후 확진이지만 첫 사망자가 나온 코로나19의 확산 소식에 전 국민이 불안해했던 하루”라며 “미리 정해진 축하 일정이었다고 이해하려 해도, 유유자적 짜파구리 먹을 때인가”라고 비판했다.

어찌보면 청와대의 안일한 대처가 일을 키운 측면이 있지만, 문 대통령의 코로나19에 대한 인식 역시 이런 논란을 부추겼다는 의견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한상의에서 가진 삼성·현대차·SK·LG·롯데·CJ 등 6대그룹 총수 및 대표와의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서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국내에서의 방역 관리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고도 했다. 지난 11일 이후 이틀째 코로나19 추가 확진자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이때의 여권 전체적인 반응도 비슷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능력이 훌륭했다고 추켜세웠고,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한국의 감염병 확산 차단을 국제사회가 높게 평가하고 있다”며 자화자찬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더 앞서 며칠전에는 문 대통령이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성동구 선별진료소를 방문했는데, 박 시장은 “메르스 때 경험과 학습효과가 있어 (코로나19 대처에)훨씬 더 잘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박 시장은 “메르스 때의 박근혜정부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대응을 잘하고 있다)”라고까지 했다.

문 대통령과 여권 전체가 이렇듯 ‘핑크빛 전망’과 함께 자화자찬을 속속 내놓은 이후 며칠만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 위기감이 절정에 달하면서 불과 보름 전들의 발언이 뒷말을 낳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를 보는 여권의 대응이 너무 아마추어 같다는 것이다.

야당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기생충팀 오찬과 절제하지 못한 홍보는 분명 청와대 대통령실과 각 책임 수석들의 잘못”이라며 “문 대통령 역시 기생충팀에 대한 지나친 애정으로 ‘기생충 마케팅’을 했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청와대의 투박한 스케줄 관리와 홍보에 대한 욕심이 어우러져 괜히 오스카 4관왕의 이름과 명성에 누를 끼쳤다는 평가가 나올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앞뒤 상황에 대한 고려 없는 ‘요란한 축제’는 이렇듯 찜찜함을 남기는 법이다. 청와대의 어설픈 행동이 괜히 기생충팀만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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