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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 포고렐리치, “한국인들의 음악에 쏟는 존경과 헌신에 감탄”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국은 언제나 제게 인상깊은 나라예요. 관객들이 음악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쏟는 존경과 헌신에도 감탄이 나옵니다.”

‘건반 위의 이단아’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62)가 한국의 클래식 팬들과 만난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한국 팬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가 묻어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해외 음악인들의 내한 공연이 줄줄이 취소된 와중에도 이보 포고렐리치는 공연 강행을 결정했다. 클래식 기획사 빈체로 측은 “아티스트 본인이 한국을 꼭 방문하고 싶어했다”며 “공연에 대한 의지가 대단했다”고 귀띔했다.

이보 포고렐리치의 내한 연주회는 15년 만이다.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와 신들린 듯한 테크닉의 개성 강한 연주로 그는 ‘이단아’라는 수사를 달고 다닌다. 1980년 클래식 음악계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제 10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심사위원 사퇴 소동’.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루이스 켄트너는 그가 1차 예선을 통과한 것을 두고,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3차 예선에서 포고렐리치가 탈락한 것에 항의하며 심사위원 자리를 내려놨다. 뉴욕타임스는 포고렐리치의 연주에 대해 ‘200년이나 앞선 연주’라고 평했지만, 클래식 음악계에선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빈체로 제공]

1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진행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수십년 전부터 제 공연에 대한 리뷰 읽기를 관뒀다”며 엇갈린 평가에 대한 생각을 들려줬다.

“사람들이 공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보는 일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에요. 그러나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영향을 어느정도 받을 수밖에 없죠. 멀리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세간의 평가처럼 포고렐리치의 음악 세계는 자신의 가치와 해석을 중시한다. 그만의 방식으로 개성을 가진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표현 방식을 선택할 자유”를 피아노에 녹여낸다.

“피아노는 제 삶에 있어 정말 중요한 부분이에요. 저에게 표현의 자유를 안겨주죠. 글로 표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자유로움이에요.”

포고렐리치의 삶도 그의 피아노만큼이나 자유로웠다. 스무살 연상으로, 자신의 스승이었던 피아니스트 알리자 케제랏제와 결혼했고, 1996년 아내의 죽음으로 5년간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지금은 전 세계를 돌며 성공적으로 연주회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의 가슴에는 여전히 케제랏제를 향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전 알리사 케제랏제보다 더 나은 피아니스트를 들은 적도, 알게된 적도 없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알리사가 아닌 저를 천재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몇몇의 스태프들의 과장 섞인 칭찬은 저를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케제랏제와 저는 함께 키울 아이가 있었던 가족이었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도 느끼고 있었죠. 케제랏제, 그리고 그녀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은 제가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어요.”

아내가 떠나고, 어느덧 20여년이 흘렀다. 은둔형 연주자인 그가 24년 만인 지난해 소니와 전속 계약을 맺고 새 음반을 발매했다. 이번 내한 역시 음반 발매를 기념하는 아시아 투어의 일환이다.

그는 내한 연주회에서 바흐의 ‘영국 모음곡 3번’,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11번’, 쇼팽의 ‘뱃노래&전주곡’,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를 선보인다. ‘밤의 가스파르’와 쇼팽의 ‘뱃노래’ 등은 그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다.

“이 작품들은 제가 오랫동안 매력을 느꼈던 곡들입니다. 몇 곡은 공연에서도 자주 연주하곤 했죠. 라흐마니노프 소나타는 제 인생 절반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연주했거든요. 지난 30여년간 언제든지 녹음을 할 수는 있었지만 이제야 음반으로 만나게 되었네요. 이 아름다운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공헌을 남기고 싶었어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연주한 소나타는 “가장 높은 수준의 피아노 레퍼토리”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한 곡은 베토벤이 가장 좋아한 피아노 소나타(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4번) 로 기록돼 있기도 하죠. 높은 수준의 순수예술에는 한 가지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첫 눈에 보기에 쉽고 간단해 보이면 오히려 매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요. 그 사실을 담고자 노력했어요.”

피아니스트로 일생을 보내며 어느덧 예순을 넘겼다. 청년 포고렐리치와 장년의 그에게서 얼마나 많은 변화가 감지될지 클래식 팬들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그는 “크게 변한 점은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는다”고 말했다.

“제게 음악은 항상 똑같이 중요했거든요. 음악이란 각자가 바라보는 대로 끊임없이 새로 발견되고 또 변화해요. 어떤 조각들은 변하지 않기도 하죠. 제가 그 조각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할 때가 있고 때론 그대로 있기도 하지만, 흐르는 시간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번 연주회에선 포고렐리치의 과거와 현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포고렐리치는 “과거의 제 모습에 익숙한 분들은 세월과 함께 진화한 부분을 찾아낼 것이고, 제 이름과 연주가 생소한 젊은 관객들은 저만의 음악세계가 가진 다양한 매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당부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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