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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지에 담아낸 흑백사진 그림이 된다…시가 된다
이정진, Opening 15 (10/10 + 3AP), 2016 Archival pigment print on Korean Mulberry paper 145.5×76.5 cm (paper size) [PKM갤러리 제공]

텅 빈 들판에 홀로 선 나무, 호수에 자리한 작은 섬…. 고요하고도 강렬한 풍경들이 한지 위에 내려 앉았다. 사진 작가 이정진의 작품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 이후 2년만에 다시 한국 관객과 마주 앉았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PKM갤러리는 이정진의 개인전 ‘보이스(VOICE)’를 개최한다.

필름 인화지가 아닌 한지에 인화된 사진은 재료가 갖는 특유의 명상적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다. 물기를 머금듯, 감광유제를 흡수한 한지는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이감이 매력적이다. 사실 기법 자체가 특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루기가 너무나 까다로운 재료다. 2008년 이후부터는 디지털프린트 작업도 병행하고 있는데, 한 차례 인쇄하고 나면 기계가 망가질 정도로 타격이 크다. 그럼에도 작가는 “한지만의 질감과 깊이를 포기할 수 없어서, 한지를 고집한다”고 했다.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한지의 느낌은 또한 흑백사진과 잘 어울린다.

이번 전시에 처음 공개된 신작시리즈인 ‘오프닝(Opening)’은 세로로 긴 형태다. 흑백의 족자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인간의 제한된 인식의 테두리를 넘어 무념으로 자연을 바라볼때 느낌을 표현하고자 ‘오프닝’이란 제목과 좁은 세로 프레임을 택했다”고 설명한다.

풍경들은 미국과 캐나다의 산, 바다, 숲이다. 30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중고차를 사서 뉴욕 집까지 대륙횡단을 하면서 만났던, 네바다와 애리조나주의 사막에서 조우한 자연들이다. 뜨거운 태양과 황량한 모래만 가득한 곳이지만 작가는 그곳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사막은 나를 다 벗겨놓은 느낌이었다. 그곳에 가면 이정진도 아니고 그냥 자연 그대로와 대면해야하는 강렬한 느낌이 매력적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와 자연의 만남을 작가는 여전히 찾아다닌다. “대상이 나에게 말을 거는 그때가 오면 찍고 바로 넘어간다”는 그는 자신의 작업이 관객들에게 한 편의 시로 읽히길 바란다고 했다.

홍익대학교에서 공예를 전공하고 뉴욕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이정진은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2011년에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거장 프레데릭 브레너가 스테판 쇼어, 제프 월 등 세계적인 사진작가 12명을 초청하여 진행한 ‘이스라엘 프로젝트’에 유일한 동양인으로 참여, 국제 사진계에서 더욱 주목받았다.

이정진 작품은 뉴욕메트로폴리탄미술관, 휘트니미술관, 워싱턴내셔널갤러리,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호주 국립미술관, 파리 국립현대미술기금 등 세계 유명 미술기관에 소장돼있다. 전시는 3월 5일까지.

이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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