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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일의 현장에서] 전자투표로 빗장 푸는 재계

“사실 전자투표 필요성을 딱히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모기업 지분이 40%가 넘어서 주주총회에서 의결하는 데 크게 지장이 없거든요.”

올해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전자투표 도입 계획을 묻는 질문에 한 대기업 계열사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주주총회 장소까지 굳이 가지 않고도 모바일이나 PC로 안건에 투표할 수 있는 전자투표는 지난 2010년부터 국내에 도입됐다. 그러나 기업들과 주주들의 무관심 속에 여전히 자리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1부 상장사 중 시가총액 1조엔 이상 기업의 94.6%가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고 있다. 반면 코스피 시총 상위 100개사 중 전자투표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는 기업은 20%에 불과하다.

대주주 지분율이 높고, 오프라인 주총을 위한 인프라를 충분히 갖춘 국내 대기업들은 전자투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중소기업보다 주총 안건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 전자투표 없이도 의결정족수를 채우는 데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자투표 도입으로 소액주주의 참여가 늘어날 경우 안건 통과가 어려워지는 소위 ‘골치 아픈 상황’도 기업들이 전자투표 도입을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한다. 주총이 표대결 양상으로 가면 경영진 입장에선 그만큼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기업들은 조금씩 빗장을 풀고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주총부터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기로 했고,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도 전자투표를 전 상장 계열사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기업은 모두 주주가치와 편의를 높이기 위해 전자투표제 도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의 주주 숫자만 합쳐도 100만명이 넘는 점을 고려할 때 재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주총 당시 소액주주들이 현장으로 몰리면서 입장이 지연돼 혼선을 빚기도 했다.

전자투표를 이미 시행 중인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제도 도입 이후 주주들의 참여율이 소폭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소액주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최근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의 입김이 강해지면서 기업들의 소액주주 표심 잡기는 더욱 중요해진 상황이다. 그동안 의결정족수 확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팔장을 꼈던 기업들에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초 사회적 논란이 불거지면서 주주들이 대거 주총장에 몰려들어 홍역을 치렀던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올해 전자투표 도입을 고민하고 있다”며 “주주들을 달래고 조금이라도 어필할 수 있는 제도라면 이제는 마다하기 어렵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동안 먼 이야기로만 들리던 주주자본주의의 실현이 이제는 대세로 자리 잡는 느낌이다. 시스템의 변화가 단순한 시늉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기업 경영의 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 기업과 주주 모두의 성숙해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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