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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병기 연예톡톡]봉준호의 화법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이번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봉준호 감독의 화법이었다. 그는 외교관이나 무역업, 통상전문가를 해도 아주 잘 할 정도의 설득력과 인상을 주는 화법의 대가였다.

봉 감독이 인터뷰를 할 때나 수상소감을 밝힐 때에는 항상 염두에 두는 게 있었다. 가려운 곳을 긁을 줄 알았다. 지금 영화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재밌는 표현으로 전했다. 한마디로 맥락의 승리이자, 레토릭의 승리이고 논리의 성공이었다.

지난해 9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비영어권 영화 ‘로마’가 감독상을 받고 최고영예인 작품상은 ‘그린 북’에게 돌아간 것은 ‘로마’가 덜 우수해서가 아니라 비영어권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이번에도 아카데미가 그런 ‘배타성’에 빠질 수 있었다. 봉준호의 “자막의 1인치 장벽” “아카데미는 로컬”이라는 정교하게 준비된 코멘트는 맥락에 있어 그 연장선의 의미를 갖는다.

상을 달라고 떼를 쓰는 게 아니라 유머로 전해 흥행과 이슈에 목마른 아카데미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CJ가 아무리 열심히 홍보 마케팅을 벌이고, 수많은 인터뷰 자리 등 판을 깔아줘도 말을 잘 못하면 좋은 기회를 날려버릴 수 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말은 항상 이슈화돼 관심을 안가질 수 없게 했다.

봉준호는 심각한 것을 유머로 날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을 비교 극과 극 체험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인인 코리아헤럴드 케빈 기자도 “유머감각(센스 오브 휴머)을 잃지 않았던 봉준호가 할리우드와 잘 어울렸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아야 할 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세계 영화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읽고 있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독창성을 세계 문법에 던졌다.

‘기생충’에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 때에도 봉 감독은 어릴때 자신에게 큰 영감을 준 스릴러의 거장인 앙리 조르쥬 끌루죠와 클로드 샤브롤에게 감사드린다고 언급해주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경쟁작을 내놓은 마틴 스콜세지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추겨세웠다. “내가 영화학도 시절 당신의 영화 보고 공부했어요”라고 하는 데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봉준호의 이런 확실한 화법은 영화에도 들어가 있다. 독특한 방식이지만 분명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다. 결국 영화는 영상화법이다. 범인이 안잡히는 결말로 투자자의 환불소동을 빚었던 그의 수작 ‘살인의 추억’도 토종형사(송강호)로 안되니, 미국유학형사(김상경)를 투입했다가, 다시 토종형사라는 원점으로 돌아오는 서사구조다.

봉 감독이 또 어떤 영화의 화법, 또 어떤 스피치의 화법을 내놓을지가 궁금하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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