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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홍콩, 서울, 집값 그리고 기생충

최근 서울발 집값 오름세가 수도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많은 대책을 내놨는데도 또 오른다.

부동산 버블을 얘기할 때 보통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예로 든다. 하지만 요즘 서울과 그 주변 집값 오름세를 보면 오히려 홍콩과 닮았다. 특히 서울 강남 집값은 수준 자체가 이제 홍콩을 넘볼 정도다.

원래부터 홍콩 집값은 비싸기로 유명했다. 영국령이던 시절 국토가 제한되다보니 인구가 늘면 집지을 땅이 부족해 간척까지 했었다. 중국에 반환되면서 섬을 벗어났지만, 이번엔 본토인이 밀려 들어왔다. 홍콩의 시스템과 인프라는 본토보다 비교 우위다. 서울과 지방이 그렇다.

자연증가도 아닌 외부유입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여전히 홍콩행정특구는 제한적 땅덩이이다 보니 집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일본은 최근 집값 오름세가 상대적으로 덜 한데, 도쿄와 지방간 시스템 격차가 우리나 홍콩보다는 덜하다.

홍콩 집값 상승과 함께 인접한 선전(深川) 부동산도 덩달아 춤을 췄다. 본토의 수도인 베이징의 상승률을 눌렀다고 한다. 홍콩을 가고 싶은 사람들과 홍콩에 맞선 도시를 키우고 싶은 중국 정부의 정책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다. 우리 정부가 신도시로 수도권 택지개발을 늘리는 것과 닮았다.

강남에서는 전세가 꿈틀 거린다. 규제로 매매를 막으니 강남에 살고 싶은 이들이 전세로라도 집을 구하려 해서다. 게다가 학군 부활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집값이 오를 수 밖에 없는 경제구조의 특성은 우리가 홍콩과 닮았지만, 홍콩에는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금융관행이 있다. 전세, 그리고 손쉬운 전세대출이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주거 시장 진입 시 차입이 기본으로 깔려있다. 전세가 오르고, 뒤따라 집값이 오르기 쉽다. 집값이 오르면 다시 차입 여력이 확대된다. 이 같은 상승 사이클에 대한 경험은 부동산을 최고의 투자처로 믿는 인식을 낳았다. 불패의 믿음은 수요를 촉발하는 또다른 요인이다.

이른바 모바일 혁신을 이끈 미국을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물경제 분야에서 이렇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은 나라는 많지 않다. 경제 혁신이 부족한 나라일수록 부동산으로의 쏠림은 더 심했다. 특히 중국 자금의 글로벌 부동산 쇼핑은 상당했다. 본토 자금이 홍콩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갈 때 홍콩의 부동산 재벌들이 홍콩 밖 부동산으로 갈아탄 점도 흥미롭다.

실물경제의 개선 없이 자산가격만 오르면 그 결과는 양극화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자산시장의 가격 상승세에 불이 붙으면 임금상승세가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최근 골드만삭스 보고서를 보면 2019년 9월 기준 미국의 상위 1% 개인이 가진 주식은 전체 개인 소유주식의 56%, 에 달한다. 1990년 이 비중은 46%에 불과했다. 상위 1% 보유주식 시가는 현재 21조4000억 달러에 달한다. 반면 하위 10% 개인이 가진 주식은 전체의 12%로 시가는 4조6000억 달러에 불과하다.

쏠림의 경제, 양극화의 심화는 사회불안과 계급간 충돌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우리로 치면 서울과 수도권에 집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집값이 많이 오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 갈등이다. 지난해 중국 정부에 맞선 홍콩 시위의 원인도 집값 상승에서 비롯된 양극화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비약하면 올해 미국에서 오스카상을 휩쓴 영화 ‘기생충’도 ‘양극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세계적으로 ‘양극화’에 대한 공감이 상당한 듯 하다.

정부는 집값 잡겠다면 온갖 대책을 내놓았다. 부동산에 ‘투자’하는 이들을 ‘때려 잡을’ 기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부동산이 투자대상이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데, 없던 법령까지 만들어서 투자로서의 주택구매를 막으려 하고 있다.

물론 투기는 막아야 한다. 자산시장이 가격 안정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간 정부의 투기대책 결과는 별무신통이다. 집값은 그래도 올랐다. 병의 근본 원인을 짚기 보다는 대증요법에 의존하니, 병변이 더 번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잉여주택은 파는 게 더 이익이 되도록, 집 보다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게 더 낫도록 만드는 방법은 아직 나온 게 없다.

팔면 세금 폭탄이지만 보유하면 그래도 값이 더 오를 것이란 믿음, 집보다 나은 투자처는 대한민국에서 아직 없다는 믿음, 이런 것들이 깨뜨려져야 한다. ‘홍콩화’를 부추기는 불균형 인프라, 주택시장에 고착화된 차입구조의 해결책도 긴 호흡으로 모색해야 한다.

근원적 처방이 늦어질수록 양극화와 갈등은 심화될 수 밖에 없다. 효과는 적고 부작용만 클 대책이라면 하지 차라리 말자. 추가대책 소리만 들어도 이젠 자칫 시장경제의 원칙마져 훼손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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