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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첼리스트 송영훈, “한 편의 음악회는 관객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일”
클래식 계의 귀공자…연주자, DJ, 해설자 ‘다채로운 행보’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클래식 계의 ‘귀공자’, 혹은 ‘꽃미남’,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 선 선구자’…. 첼리스트 송영훈(46)을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그는 ‘신선한’ 시도와 ‘다양한’ 역할을 해온 음악가로 꼽힌다. 라디오DJ(‘송영훈의 가정음악’)로 청취자와 만나며 클래식 음악의 문턱을 낮췄고, 국내 최초의 ‘클래식 꽃미남 밴드’ 격인 MIK 앙상블을 시작하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수년간 이끌어온 그는 새로운 클래식 문화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 때는 ‘귀공자’, ‘꽃미남’이라는 수식어가 너무나 싫었을 때도 있었어요. 20대엔 그런 말들이 제 안의 오기를 불러일으켰죠. 거기에 맞는 실력을 길러야겠다는 오기였어요.”

[스톰프 뮤직 제공]

첼로를 처음 잡았던 것은 다섯 살. 첼리스트로의 삶을 산 지 40년이라는 시간의 길이가 쌓였다.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다채로운 활동을 해온 것은 ‘첼리스트’로의 삶과 본질을 지키기 위한 행보였다. 최근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첼리스트 송영훈을 만나 그의 음악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클래식 음악계도 위축됐지만, 송영훈은 여전히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2월 중에도 두 개의 연주 일정이 예정돼 있다. 오는 15일 열리는 색다른 콘셉트의 해설 음악회(‘2020 엘 토요 콘서트’)는 송영훈이 직접 주제를 정하고, 프로그램을 세심히 구성했다.

“음악회를 하면서 프로그램을 짜는 일은 즐거우면서도 괴롭기도 해요. 음악회를 한다는 것은 관객에게 어떤 선물을 줄까 고민하는 것과 같아요. 고심 끝에 선물을 고르는 것은 한 곡 한 곡을 선정하는 일이에요. 그런 다음 리본까지 묶어 포장해 내놓는 것이 그날의 음악회죠.”

관객들에게 건네는 송영훈의 선물은 ‘러시아 음악’이다. ‘아티스트가 사랑한 거장’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엘 토요 콘서트’의 첫 주자인 그가 러시아 음악을 주제로 선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음악을 공부하며 첼리스트의 길을 걷게 한 스승님이 계세요. 요요마, 린 헤럴과 같은 소위 세계적인 꼬마 예비 스타들을 가르치신 채닝 로빈스 선생님이에요. 제가 그분의 마지막 제자예요. 암 투병으로 돌아가셨죠. 굉장히 무서운 선생님이셨는데, 저한텐 화를 안 내셨어요.”

[스톰프 뮤직 제공]

첼로보다 농구를 더 사랑했던 열네 살 소년에게 ‘호랑이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가르친 곡은 러시아 거장들의 음악이었다. “선생님의 휠체어를 끌고 센트럴 파크를 산책하곤 했어요. 어느 날엔 ‘죽기 전에 너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곡이 있는데 하나가 쇼스타코비치의 소나타고, 다른 하나가 라흐마니노프 소나타’라고 말씀하셨어요.” 그의 유학시절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 일화이기도 하다. 그날의 기억들은 첼리스트로 한 길을 가는 송영훈의 행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송영훈이 정식으로 발매한 첫 클래식 앨범도 러시아 음악이었다.

“사실 러시아 음악은 우리나라 정서와도 잘 맞아요. 한이 많은 우리 민족은 슬픈 음악이 많았어요. 발라드나 트로트의 정서도 비슷하죠. 러시아 음악도 그래요. 냉전시대 속에서 작곡가들은 모두 서구 세계로 떠났어요. 자유를 억압받으니 그 곳에서 영혼까지 끌어올려 음악으로 표출했죠. 슬픈 곡을 즐길 정도로 좋아하는 민족은 그리 많지 않아요. 추운 나라인 러시아의 음악에는 고독함이 있고, 쓸쓸함 속에서도 애잔한 향수를 불러와요. 러시아와 한민족은 그런 정서를 소중히 여긴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그렇다고 이번 음악회를 슬픈 곡으로만 구성한 것은 아니다. 글라주노프가 쓴 밝은 곡도 포함됐다. 송영훈이 첼로 인생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음악이다.

“악보를 보면서 연습해보니 제게도 선물이 된 곡이었어요. 안해 본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도전이었는데, 한 사람의 청중으로서 듣다 보니 굉장히 위안이 되더라고요. 러시아에도 차이코프스키나 라흐마니노프 외에도 좋은 연주곡이 많아요. 관객이 잘 모르는 것을 소개하는 것도 음악가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러시아 작곡가들의 언어를 존중하면서도 틀에서 벗어난 연주를 해보려고요.”

40년 가까이 연주를 해온 지금, 송영훈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첼로 인생’을 살고 있다. 아직도 연주를 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한 가지씩 배운다”고 한다. “첼리스트의 길을 걸어가라. 너의 재능을 썩히지 말고 모든 사람과 나눠야 한다”는 스승의 유훈은 송영훈의 첼로 인생을 이끄는 이정표였다. 어느 시절엔 ‘책임감’으로 해왔던 음악이었지만, 이제는 ‘기쁨’이 되고 있다.

“요즘엔 첼로가 점점 더 좋아져요. 5년 전 아들이 태어난 후부터 연주가 더 깊어지고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들어요. 모든 훌륭한 곡에는 사람이 있어요. 인생의 희노애락을 통해 음악이 나오는 거겠죠. 우리는 많은 감정을 느끼면서 살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아요.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 그 자체로 굉장한 행복을 느껴요. 제가 가진 재주를 떠나서, 음악을 할 수 있는 것 자체로 기쁘고 행복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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