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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바로보기-최인한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 政經一體 일본 재벌기업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얼라이언스 회장의 ‘도주극’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1월 9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곤은 자신에 대한 기소와 재판이 르노와 닛산의 경영 통합을 막기 위한 당국과 일본인 경영진들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올가미에 걸릴만한 장소(일본)에 가지 않는 게 몸을 지키는 일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책임”이라며 일본사법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의 폭로에 대한 외국 언론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일본 준법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함께 곤의 윤리적 책임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1999년 닛산자동차는 부채가 2조1000억엔까지 불어나 파산 위기에 몰리자 프랑스 르노와 자본제휴를 맺는다. 다음해 사장으로 취임한 곤은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1년 만에 회사를 살려냈다. 그 결과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고 훈장까지 받은 곤은 왜 해외로 달아났을까.

그가 회삿돈을 횡령한 건지, 일본인 경영진이 당국과 결탁해 닛산을 지키려고 했는지의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도쿄지검의 기습적인 체포와 기소, 장기 구속 등 일련의 상황을 통해 일본에서 ‘국가’와 ‘대기업’ 관계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닛산자동차의 원점인 ‘日本産業’의 성장 역사를 추적해보면, 재벌기업을 해외에 넘겨주지 않기 위한 ‘음모’라는 곤의 주장도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1920년에 창립된 닛산그룹의 주력 ‘日本産業’은 광산에서 출발해 기계, 금속업으로 확장했다. 제조업 부문에선 미쓰비시(三菱), 미쓰이(三井) 등 선발 재벌을 능가하는 규모로 커졌다. 정부 요청으로 1938년 만주로 본사를 이전한 후 ‘滿州重工業開發’ 로 사명을 바꾸고 일본제국의 만주 진출을 지원했다.

‘부자의 대명사’로 널리 쓰이는 ‘재벌(財閥’)의 원조가 바로 일본이다. 재벌은 국가의 정책 지원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등장한 재벌은 당시 “부호의 가족, 동족의 폐쇄적인 소유, 지배 아래 성립된 다목적 사업체”로 정의됐다.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야스다 등이 4대 재벌로 불린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덩치를 불린 닛산은 신흥재벌로 분류된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연합군의 재벌 해체 결정에 따라 ‘닛산자동차’만 남아 닛산그룹의 명맥을 잇는다. 제조업에 뿌리를 둔 닛산은 소비자들 사이에선 업계 1위 도요타자동차보다 ‘기술력’이 앞선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

닛산의 탄생과 성장, 위기와 부활 과정에서 국가가 많은 역할을 했다. 시장경제를 내세우는 일본이지만, 정부와 기업의 역학 관계는 서방국과 크게 다르다. 노사분규가 거의 없고, 기업과 정부 간 협력도 긴밀하다. 그래서 일본경제 시스템을 ‘국가 자본주의’로 평가하는 학자들도 많다.

카를로스 곤의 ‘도주극’은 ‘정경일체(政經一體)’ 일본사회의 실체를 보여준다.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2000년 이후 일본에서 진행된 ‘외자 유입형’ 기업의 한계와 ‘토종 純일본기업’의 반격으로 보는 분석도 있다. 곤의 도주극 결말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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