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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安고집 vs 孫고집 대충돌…안철수·손학규 결별 하나
돌아온 안철수, 비대위 전환 요구에 손학규 거절
옛주인 “집 비워달라”에 현주인 “무슨 소리” 꼴
둘다 자존심 센 인물, 화학적 결합에는 회의적
둘간의 향후 행보, 개인 캐릭터에서 찾기도 해
‘고독한 결단’ 즐기는 이들…향후 그림은 그속에

바른미래당 안철수(오른쪽) 전 대표와 손학규 대표가 27일 국회에서 만나 언론공개 행사를 마친 뒤 비공개 양자회동을 위해 방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

충분히 예상됐던 그림이었다. 1년4개월만에 나타난 집의 전 주인은 현 주인에게 집에서 비켜주라고 했고, 현 주인은 이제와서 무슨 말이냐며 못나가겠다고 버텼다. 전 주인은 “내가 돌아오면 비켜주기로 하지 않았느냐”는 뜻으로 옛 자리를 요구했고, 현 주인은 “그동안 내가 집 수리 등 신경쓴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이제와서 나가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눈치챘겠지만 전 주인은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전 대표)이고, 현 주인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다.

지난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한뒤 9월 독일로 떠났던 안 전 의원은 지난 19일 귀국한 바 있다. 그는 귀국에 앞서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으로)돌아가서 어떻게 정치를 바꾸어야 할지 상의 드리겠다”며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한때 ‘안철수 신드롬’의 주인공으로, 유력 대선주자까지 부상했던 안 전 의원의 귀국에 그의 친정인 바른미래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여야 정치권은 초미의 관심을 보였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안 전 의원이 태풍의 눈으로 부상할지 지켜보자는 흐름이 강한 것이다.

이런 안 전 의원의 첫번째 정치적 행보는 ‘옛 주인’으로서의 권리 행사였다. 안 전 의원은 바른미래당의 창당 주역이다. 그는 손학규 대표에게 바른미래당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자신에게 비대위원장을 맡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런 제의를 28일 손 대표는 일언지하에 거부한 것이다.

손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제가 안 전 의원에게 기대했던 것은 당의 미래에 대해 같이 걱정하고 힘을 합칠 방안을 깊이 있게 논의하자는 것이었는데, 그런 것 없이 곧바로 저의 퇴진을 뜻하는 비대위 구성을 요구하고, 위원장을 자기가 맡겠다는 것이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전 주인이랍시고 정중히 제안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아예 쫓아내겠다는 뜻이 강했다는 불만의 뉘앙스가 손 대표의 멘트에 녹아 있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의원이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젊은 법조인과의 대화 ‘무너진 사법정의를 논하다’ 간담회를 마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

안 전 의원의 정치권 복귀와 관련해 정가에선 그가 바른미래당에 둥지를 다시 틀고 당을 복원하는 데 힘쓸 것이라는 시각과 어차피 손 대표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이므로 신당을 창당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시각이 갈렸었다. 전자는 대안신당 소속 박지원 전 대표와 같은 시선이다. 그는 앞서 한 라디오방송에서 “안 전 의원이 손 대표를 만나서 비대위원장을 맡겠다고 손 대표의 퇴진을 요구한 것을 봐서는 바른미래당에 일단 둥지를 틀고 당명 변경 등 리모델링에 나설 것 같다”고 했다. 후자의 의견도 적지 않다. 손 대표는 그동안 안 전 의원이 돌아오면 대표직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뜻을 밝혔었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었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 물러나겠다는 등의 배수진을 쳐온 손 대표가 여전히 대표직을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봤을때 안 전 의원이 돌아온다고 해도 순순히 바통을 넘기지 않을 것으로 봤다”고 했다. 당의 다른 관계자는 “안 전 의원이 돌아오자마자 손 대표를 윽박지르는 모양새를 취했는데, 손 대표로서도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분명한 것은 둘의 정치 지향점이 현재로선 다른 것 같다”고 했다.

손 대표가 안 전 의원의 제안을 거절함으로써 안 전 의원의 고민은 커지게 됐다. 손 대표가 옆으로 비켜주면 당을 재건하고 이를 통해 총선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려던 시나리오가 틀어진 것이다. 일각에선 안 전 의원이 신당을 창당해 독자적인 길을 모색할 가능성도 크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권은희 의원을 제외한 안철수계 의원들은 대부분 비례대표로, 이들이 탈당할 경우 의원직을 잃게 되고 정치적인 힘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신당 창당은 안 전 의원으로선 대단한 모험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안 전 의원이 신당 창당의 메시지로 손 대표를 당분간 압박하며 그의 거취를 종용할 것으로 보인다. “내 사람들 다 데리고 나갈 수 있으니 잘 생각하라”는 통첩을 한동안 날릴 것이라는 것이다. 둘 간의 정치 행보가 평행선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이런 시각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정치권 인사들은 일찌감치 손 대표와 안 전 의원과의 ‘화학적 결합’ 여부에 회의적인 시각이 강했다. 둘의 성격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한마디로 둘다 너무 자존심이 강한 스타일이라, 쉽게 정치적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주류였던 것이다.

실제로 안 전 의원이나 손 대표는 지명도 높은 정치인이지만 자기 주장이 강하고 중요한 순간에 스스로 ‘고독한 결단’을 내리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정치인에게 소신이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지만, 지나친 자기확신과 고집으로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생략한채 큰 사안을 독자결정하곤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둘다 그런 점에선 공통점이 있다. 강한 것에 강하게 부딪치면, 누구 하나는 부러지는 법. 이런 둘의 성격 상 이번의 안 전 의원의 제안과 손 대표의 일언지하 거절은 예고된 일이었다는 것이다.

안철수 캠프에서 정치력을 키워온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5년 8월에 쓴 책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에서 안 전 의원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정치에 나설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일단 후보로 나와 수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으면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적어도 지지자들에게 묻는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유력 대선주자까지 떠올랐었던 안 전 의원이 결정적인 정치적 순간에 나홀로의 고독한 결단을 내렸고, 이에 주변 사람들이 실망과 함께 상처를 입었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일각에선 그래서 민주당과의 전격 통합 선언(2014년 3월2일), 자신이 창업자였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2015년 12월13일)과 같은 굵직한 사안에 대해 주변과 충분히 상의않고 결단을 내린 안 전 의원에 대한 실망감이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반감시켜온 요소가 됐다고도 말한다.

안철수 전 대표의 비상대책위 체제 전환 요구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힌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관계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

안 전 의원의 민주주의적 사고 결핍을 지적하는 대표적인 이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다. 그는 한때 ‘안철수 멘토’로 불렸다. 그는 안 전 의원의 측근이었으나 민주당과의 전격 통합을 선언할때 그것에 대한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그때 안 전 의원을 향해 “효율성을 중시하는 최고경영자(CEO) 출신들의 리더십은 종종 민주주의의 ‘과정’을 낭비로 보는 문제를 드러내곤 한다”고 한 바 있다. 주변과의 상의, 집단지성의 도출을 생략한채 자기 소신을 중시한 나머지 독불장군 행보를 보이곤 한다는 뜻이다. 윤 전 장관이 앞서 안 전 의원의 정계 복귀 결정에 대해 “마라톤은 혼자 뛰는 것이고, 민주 정치는 협업”이라고 꼬집은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이역만리 외국에서 마라톤을 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웠다는 안 전 의원에 대해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은 것이다. 안 전 의원의 측근들과의 소통과 협업 능력, 의견 조율과 청취 능력에 대해 여전히 회의감을 표한 것이다.

손 대표 역시 최소한 이런 점에선 안 전 의원과 유사한 행보를 보여왔다. 한나라당 대표적인 경제통으로 꼽혔던 나성린 전 의원이 지난 2011년에 쓴 ‘대한민국을 부탁해’란 책에는 ‘정치인 손학규’에 대한 평가가 있다. 요약 내용은 이렇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6·3세대로 한일협정 반대운동부터 시작해 박정희 독재시설 민주화운동을 하고 감옥에 가서 고초를 겪은 사람이기 때문에 스토리는 충분하다. 인간적인 매력과 카리스마가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존심이 강하다.” 정치적으로 유망하고 능력이 있는데 너무 센 자존심이 최대 약점으로 보인다는 지적이다.

이는 나 전 의원만의 시각은 아니다. ‘정치인 손학규’를 좀 안다하는 사람들은 손 대표가 소신과 명분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가끔 정치적인 실익을 놓치고, 이에 주변사람들에게 많은 실망감을 준다고 얘기들 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함께 한나라당 잠룡 ‘빅3’로 불리던 지난 2007년 3월 한나라당을 탈당할때도, 앞선 민심대장정때도, 이후 과감한 ‘시베리아행 변신’을 할때도 측근들과 충분히 상의하기 보다는 ‘고독한 결단’으로 진행했다는 얘기가 많았었다. 대한민국 기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으로 꼽혀왔던 손 대표가 정점에 오른 정치인으로서 한계를 보였던 것은 이런 점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뒤따르곤 한다.

결국 안철수연구소라는 상징성으로 ‘성공한 기업인’ 이미지가 자산인 안 전 의원과 민주화운동 이력에다가 합리적 사고로 중도층에 흡입력이 있다는 손 대표의 둘다 이런 ‘쇠고집’ 면모를 들여다보면 현재의 바른미래당 모습, 얼마뒤 총선에서의 역할 및 역학구도는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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