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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영향권 '잿빛도시' 기타큐슈, 외교로 미세먼지 걷어냈다
[글로벌 재앙 미세먼지 국부보고서: <2> 일본 하]
지난 17일 일본 기타큐슈시청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시내 전경. 1960년대 일본의 고속 성장을 뒷받침한 '4대 공업도시' 답게 제철소 등 공장의 수십개 굴뚝에서 흰색 수증기가 뿜어나오고 있었다. [최준선 기자/human@heraldcorp.com]

[기타큐슈(일본)=최준선 기자] 1960년대 일본의 급속 경제성장을 뒷받침 한 기타큐슈(北九州) 시. 지난 17일 찾은 기타큐슈시청 전망대에서는 흰색 연기를 내뿜고 있는 수십 개 굴뚝이 눈에 들어왔다. 기타큐슈는 일본 서쪽 규슈 지방에 자리해, 중국과 가장 가까운 일본 도시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미세먼지와 관련해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만한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야외로 나와 휴대용 측정기로 확인한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단 15㎍/㎥. 한국 예보 기준으로는 '좋음' 수준인데, 기타큐슈시의 연평균 농도는 이보다도 낮다. 기타큐슈시에서 태어나 약 20년 간 거주했다는 일반 시민 와키사키(23) 씨는 "중국에서 넘어온 미세먼지 때문에 휴교령이 내려지기도 했지만, 그것도 수년 전 일"이라며 "주변에서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거나 중국 탓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라고 전했다.

▶"중국? 탓하기 보다는 지원…2015년 이후 주의보 발령 전무"

[기타큐슈시]

기타큐슈시가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의 핵심은 중국과의 협력이었다. 기타큐슈는 중국 등 국외 미세먼지가 일본으로 유입되는 초입이다. 물론 이점을 중앙 정부와 시, 학계 모두 알고 있었고, 중국을 탓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과 갈등 상황을 조성하기보다는, 기술 수출과 전문가 파견 등 중국 현지의 대기 오염을 개선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 결국 일본 사회에 도움이 되는 보다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구체적으로 기타큐슈시는 지난 2014년 중국의 상하이(上海), 톈진(天津), 다이렌(大連) 등 6개 도시와 상호 협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기타큐슈의 대기 환경 전문가를 중국에 파견하는 한편, 일본 내에서는 중국 전문가를 초청해 연수와 공동 연구를 추진하는 것이 골자다.

사실 이같은 움직임은 시(市) 차원을 넘어서 국가 간 협정이 토대가 됐다. 일본은 무려 26년 전인 1994년 중국과 환경보호협정을 체결했고, 나아가 1996년에는 105억엔에 달하는 무상원조기금을 지원하며 중국에 '중일 우호 환경보호센터'를 설립했다. 한국과 중국이 공동 환경기술 실증지원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한 2015년보다 10년 이상 빨랐다. 기타큐슈시의 도시 간 협력 프로젝트도 이같은 플랫폼 내에서 진행된 것인데, 기타큐슈시는 유일하게 2개 이상 도시와 협력을 맺고 있어 중일 협력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타큐슈시 환경국의 아리마 타카노리 환경국제전략과장은 "일본에서는 정부 출연 기관인 글로벌환경전략연구소(IGES), 중국에서는 우호환경보호센터가 중심이 되어 국가 차원의 도시 간 협력 플랫폼를 운영하고 있다"며 "기타큐슈시와의 협력 외에도 다양한 영향이 있었겠지만, 중국 6개 도시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2014년 이후 4년 간 평균 30%가량 줄어드는 효과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특히 6개 협력 도시 중 기타큐슈시와 가까운 상하이와 다이렌의 경우 지난 2017년 미세먼지와 관련한 자국 환경기준(연평균 35㎍/㎥ 이하)를 충족시키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기타큐슈시

중국의 미세먼지 저감 노력은 기타큐슈 지역 대기환경 개선으로 직결됐다. 기타큐슈시의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2014년 18.2㎍/㎥에 달했지만, 2018년에는 일본 환경기준(15㎍/㎥)보다 낮은 14.0㎍/㎥까지 감소했다. 미세먼지 주의보 또한 지난 2015년 이후로는 발령된 사례가 단 한 차례에 그친다. 기타큐슈시의 도시 간 협력 프로젝트는 2014년부터 5개년간 추진하는 것으로 계획돼 있었지만, 긍정적 성과를 거뒀다는 양국의 판단에 따라 3년 더 기한을 연장한 상태다.

▶회색에서 녹색으로 변한 도시…30년 전 무형 유산도 한 몫

기타큐슈시가 이처럼 대기환경 개선에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타큐슈에는 1960년대 '잿빛 도시'를 20년 만에 '녹색 도시'로 바꿔낸 성공 경험이 축적돼 있다.

기타큐슈는 1901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근대 용광로를 갖춘 국영 야하타제철소가 개업한 곳이다. 1960년대 일본의 고속 성장을 뒷받침한 일본 내 4대 공업도시로도 꼽힌다. 그러나 1965년에는 일본 최대의 강하 매진량(입자상 대기오염 물질 중 중력과 비로 인해 지표면으로 강하하는 입자의 양)을 기록했고, 1969년에는 일본 최초 스모그 경보가 발령됐으며, 공업지대 근처 폐쇄성 수역인 도카이만은 대장균조차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로 불렸다.

변화의 계기를 만든 것은 시민이었다. 피부병이나 천식 등 질환을 겪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만보던 기타큐슈시 도바타지구의 부인회가 1965년 이후 행동에 나선 것이다. 부인회는 주변 대학 교수, 학생과 함께 오염 실태 조사를 시작했고, '맑은 하늘을 원해요'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도 제작했다. 시민들의 목소리에 정부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기타큐슈시는 중앙 정부의 환경청조차 설치되기 전인 1971년에 공해대책국을 만들었고, 같은해 기타큐슈 공해 방지 조례도 만들어 기업의 환경 오염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기타큐슈의 시민이기도 했던 기업 임직원 또한 시와 공해 방지 협정을 체결하는 등 적극 응했고, 환경 오염 해결에 투입되는 비용의 예산의 30% 상당을 부담했다.

기타큐슈 시내(위쪽) 와 도카이만의 1960년대(왼쪽) 및 1980년대(오른쪽) 풍경. [기타큐슈시]

결국 기타큐슈시는 약 20년이 지난 1980년대 들어서 푸른 하늘을 되찾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85년 발간한 환경백서에서 기타큐슈시를 '잿빛도시에서 녹색도시로 변모한 도시'로 소개했고, 1990년에는 유엔환경계획(UNEP)으로부터 '글로벌500상(償)'을 받았으며, 1992년에는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UNCED)에서 '유엔지방자치단체상'을 수상했다.

기타큐슈시 환경국의 소노 준이치 환경산업추진과장은 "20년 만에 푸른 바다와 하늘을 되찾는 과정에서 공해 극복과 관련한 여러 기술력, 행정 노하우, 지식 인프라가 축적됐다"며 "기타큐슈시에서 일어난 실수가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일어나지 않도록 국제 협력에 적극 나서는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재활용으로 탄소 저감까지"…세계로 수출되는 기타큐슈式 프로젝트

기타큐슈시 에코타운에 입주한 형광등 재활용 업체 'J·RE-LIGHTS'의 공장 입구. '한정된 자원을 소중히 다루고 싶다. 순환형 사회 형성을 위해 노력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최준선 기자/human@heraldcorp.com]

기타큐슈 시내에서 차로 약 20분을 달려 도착한 에코타운(Eco-town). 여의도 7배 면적에 달하는 이곳 에코타운에서는 26개 기업이 입주해 27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재활용 대상은 건설혼합폐기물, 비철금속, 자동차, OA(복사기, 프린터, PC 등) 등 다양하다. 에코타운은 실제 공장이 자리한 산업단지 뿐만 아니라 다수 대학과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연구 구역까지 포함하는데, 여기서는 60가지 실증 연구가 추진 중이다. 모두 '쓰레기를 하나도 배출하지 않는다'는 개념의 '제로 에미션(emission)을 위한 노력들이다.

에코타운은 기타큐슈시가 1980년대 대기오염을 해결하면서 쌓은 기술력과 인프라를 활용해 성공시킨 또 하나의 환경 개선 프로젝트다. 기타큐슈 에코타운은 1997년 건립됐는데, 페트병 등 용기포장과 관련한 리사이클법 시행이 계기가 됐다. 법 시행 이후로는 기업이나 소비자에게 재활용과 관련한 비용 측면의 책임이 부과됐고, 이로써 지방자치단체로서가 폐기물을 적극 수거할 유인이 생겼기 때문이다. 1997년 이후 현재까지 일본 전역에서 조성된 에코타운은 총 26곳. 공업도시로서 재활용 사업의 원재료인 폐기물을 많이 배출하는 기타큐슈는 그중에서도 집적 효과를 가장 크게 누렸다.

기타큐슈시 에코타운 전경. 1997년 설립된 자원 순환형 산업단지 에코타운은 '쓰레기를 하나도 배출하지 않는다'는 개념의 '제로에미션'을 궁극적 목표로 설립됐다. [기타큐슈시]

재활용 산업 단지로서 태동한 에코타운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효과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기타큐슈시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기준 기타큐슈 에코타운의 이산화탄소 저감효과는 약 43만3000t으로 추산된다. 제품을 재활용하지 않고 폐기했을 때 발생했을 이산화탄소 배출량(50만3000t)에서 재자원화 과정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량(7만t)을 제외한 규모다. 기타큐슈시 환경국의 소노 준이치 환경산업추진과장은 "2005년에 30만4000t, 2010년에 40만t에 이어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효과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타큐슈 에코타운은 최근 태양광 패널, 재생폴리에스터, 리튬이온배터리 등으로 그 대상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나아가 국내 재활용 산업에서 축적된 기술을 해외로 수출하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이에 기타큐슈시는 오는 2050년까지 2005년에 배출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기타큐슈 내에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아시아 각국의 재활용을 통한 저탄소화 노력을 지원해 그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포부다.

소노 과장은 "기타큐슈시는 지금까지의 국제협력으로 구축한 도시 간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고자 지난 2010년 아시아 저탄소화 센터를 개설했다"며 "현재 15개국에서 164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기타큐슈 수소타운, 풍력으로 가로등 불 밝힌다

기타큐슈시 에코타운 인근 히비키나다 해역상 풍력 발전소 설치 계획 조감도. 해당 지역에는 풍력, 바이오매스 등을 포함해 총 2.3GW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소가 오는 2022년까지 설치될 예정이다. [히비키윈드에너지]

"에코타운이 신재생 에너지를 대규모로 공급하고, 남는 전기는 'CO2 프리(free)' 수소 연료를 만드는 데 쓰일 것입니다. 진정한 수소타운으로 거듭나는 거죠."(기타큐슈시 환경국의 구리하라 켄타로 온난화대책과장)

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자원순환형 산업 단지까지 성공시킨 '환경 도시' 기타큐슈의 다음 과제는 수소도시의 현실화다. 지난 2011년 1월, 기타큐슈시에서는 시가지를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일반 가정과 상업시설, 공공시설에 수소를 공급하는 수소타운 프로젝트가 시행됐다. 2014년까지만 진행되는 시범 사업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커뮤니티 수준에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소를 공급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기타큐슈가 처음이었다. 기타큐슈시는 시범 사업이 종료된 이후 한동안 파이프라인 운영을 중단했지만, 지난 2018년 7월 이후 재가동에 나섰다. 연료전지차, 보온용 연료전지 등 다양한 실증 사업을 추진 중이다.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은 에코타운 근처에 조성될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타운과의 시너지 효과다. 지난 2018년 이후 기타큐슈 에코타운 인근에는 민간 발전사 주도로 대형 재생에너지 타운이 조성되고 있다. 확정되지 않은 계획까지 포함하면 부양식 해상 풍력발전 22만9000KW, 육상 풍력발전 5000KW, 바이오매스 발전 34만5000KW, LNG 발전 168만KW 등 총 2.3GW 규모다. 지난 2018년 한국에 새로 보급된 재생에너지 총량의 4분의3에 달한다.

통상 수소는 석유 정제 과정을 통해 얻는 부생(副生) 수소, 천연가스에 열과 촉매를 더해 얻는 수소, 그리고 물을 전기분해(수전해) 해서 얻는 수소로 구분된다.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부생 수소나 천연가스 개질 수소와 달리, 수전해 수소는 진정한 청정 에너지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아직 효율이 떨어져 실험 단계에 그치고 있다. 만약 태양광, 수력,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이 확대돼 전기가 초과 생산될 경우에는 이를 저장해 수소 생산에 활용함으로써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구리하라 과장은 "신재생에너지 인프라를 적극 확대하고 이를 친환경 수소 에너지 생산에 활용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다른 도시에서도 유사한 시너지를 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규모는 기타큐슈가 가장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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