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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요계 음원 사재기·조작 몸살…실시간 차트 폐지만이 답이다?
가요계 건강한 생태계 만들기 노력 한창
업자 ‘사재기’·팬덤 ‘스밍 총공’…차트 교란
차트가 성공 척도 되다보니 기획사도 집착
톱100 보여주는 음원 플랫폼 대중취향 왜곡
주간·월간차트·큐레이션 서비스 강화해야

이름 없는 가수가 ‘차트인’에 성공했다. 2017년 10월 발표된 닐로의 ‘지나오다’. 난데없이 6개월이 지난 2018년 4월, 음원 플랫폼 멜론에선 트와이스까지 제치고 실시간 차트 1위에 올랐다. 작은 기획사, 무명의 가수가 일군 ‘역주행’ 신화이자, 의혹의 시작이었다. 강력한 팬덤이 제기한 ‘음원 사재기’ 의혹이었다. 닐로에겐 무명가수의 반란이 아닌 ‘기계픽(pick)’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기계픽’은 불법 프로그램, 공기계 등의 힘으로 차트 순위를 조작한 노래를 일컫는 신조어다. ‘기계픽’ 후폭풍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음원 사재기와 차트 조작 논란으로 한숨이 깊은 가요계는 이를 털어내고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한창이다.

윤동환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부회장은 “음원 사재기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모도 적발하긴 어려워도 불법을 저지른 이들을 가려내기 위해 증거 자료를 수집하고 제보를 받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수사기관에 협조를 요청해 수사에 들어가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시간 차트’는 성공의 지표이자 생존 요건=근본적 해결책의 하나로 거론되는 음원 플랫폼의 실시간 차트 폐지론은 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관계자들에게 공감대를 얻고 있다.

국내 음원 플랫폼이 전시하는 ‘음원 차트’는 마트의 매대와 같다. 소비자들의 손이 닿기 쉽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된 상품이 더 많은 선택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 대다수의 음원 플랫폼은 PC와 모바일의 메인 화면에 ‘실시간 차트’를 노출해 사용자들의 관심을 유도한다.

가요계 관계자 A 씨는 “사용자에게 노출이 잘 될수록 음원을 클릭하는 확률이 높아진다”며 “실시간 차트에 진입해야만 가수의 이름과 노래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실시간 차트 톱100은 성공의 지표이자, 생존의 요건이 됐다.

음원 플랫폼이 차트를 제공하는 데는 확연한 이유가 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실시간 차트는 음원 플랫폼의 가장 큰 권력이자 수익을 내는 수단”이라고 꼬집었고, 윤동환 부회장도 “음원 플랫폼이 최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플랫폼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최대 점유율의 음원 사이트 멜론의 경우 지난 2009년부터 음원 차트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사용자들의 이용량을 통해 음악 트렌드 정보를 제공한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5분 단위로 시시각각 바뀌며 그래프까지 보여주는 음원 순위는 각양각색의 부작용을 낳았다. 소위 ‘업자’들은 사재기를 하고, 팬덤은 ‘스밍 총공’(스트리밍 총공세)를 하는 것이다. 공기계 수백 대로 스트리밍을 해서 차트를 조작하거나, 팬들의 ‘밤샘 열정’으로 스트리밍을 돌려 순위를 올리는 방법도 확인되고 있다.

▶“실시간 차트만 집중…톱100만 보여주는 음원 플랫폼”=업계에선 실시간 차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실시간 차트에만 집중하게 하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윤 부회장은 “빠른 변화에 대응해 소비자들이 반응하게 한다지만, 이는 다양성은 무시한 채 실시간으로 바뀌는 톱100의 곡만 소비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차트 중심의 음악 듣기 방식으로는 일반적인 대중의 선호도를 판단할 수 없고, 왜곡된 차트로 대중의 진짜 취향을 해칠 수 있다”고 일갈했다.

김작가 평론가도 “지금의 실시간 차트는 대중이 실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못하면서, 음악 선택권을 줄이고 있다”며 “음원 사재기나 스트리밍 총공세 등으로 차트가 교란되며 모든 사용자와 창작자가 피해를 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트가 성공의 척도가 되다 보니 가요기획사 관계자들도 차트에 집착하게 된다. 심지어 음원 차트 ‘트렌드’라는 것도 생겨났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노래가 너무 길면 안 된다, 술이나 이별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 제목이 눈에 들어와야 하고 어려운 말을 쓰면 안된다’는 요건이 차트 트렌드로 자리잡아 앨범 제작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기획사 사이에서도 차트에 대한 신뢰도는 점차 떨어지고 있다. 이 관계자는 “장르상의 이유로 차트인이 되지 않는 곡들 중 숨은 명곡이 많고, 좋은 성적을 거두는 곡이 양질의 콘텐츠라고 말할 수도 없다”며 “차트에 오르면 기분은 좋지만, 절대적인 척도로 삼진 않는다. 1위를 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도전이나 의미있는 시도를 하는 것이 더 건강한 방식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시간 차트 폐지론은 커지고 있지만, 칼을 쥐고 있는 곳은 ‘음원 플랫폼’이다. 윤 부회장은 “더 좋은 음악시장을 만들기 위해 플랫폼의 입장에서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시간 차트는 폐지하되 주간·월간 차트를 제공하고, 큐레이션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김작가 평론가는 “실시간 차트의 비중을 낮추고 큐레이션을 강화하다 보면 장기적으로는 남들이 듣고 싶은 음악이 아닌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고 봤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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