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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

“다른 곳도 아닌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국회의원을 상대로 백주대낮에 벌어진 정치테러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폭도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는 자유한국당 집회 참석자들을 강력히 규탄하며 이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촉구한다.”

지난 16일 국회에서 벌어진 이른바 태극기 부대의 폭력 사태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 대변인이 한 말이다. 폭력은 백번 천번 비난 받아 마땅하다. 국회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이런 폭력 사태는 없어야 한다. 그래서 폭력의 재발은 더더욱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폭력 사태의 원인을 잘 알아야 한다.

우리가 절차를 지킨다고 할 때, 그 진정한 의미는 해당 절차를 규정한 법의 입법취지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절차를 지킨 것은 분명한데, 법 혹은 규칙을 만든 취지와는 정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요사이 우리 정치판에서 자주 목도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의는, 민주주의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 의사 결정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금과옥조는 소수의 의견이라도 이를 국가 운영에 충실히 반영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라는 이름으로 소수를 무시하거나 제외시키면 이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충실한 행위라고 볼 수 없다.

최근에 더불어민주당과 범여권이라고 불리는 4당이 자기들끼리 합의한 대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행위가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교섭단체들 간의 협의를 통해서만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법적 조항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법적 차원의 문제는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런 행위는 내년 나라 살림 규모를 결정하는 데 있어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이상을 제외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총선에서 한국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수가 전체 유권자 중 최소 3분의 1이상은 되기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면 모르겠지만, 대의민주주의를 존중한다면서 이런 식으로 유권자 상당수를 제외시켰다는 것은 결코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에 충실한 행위라고 할 수 없다. 이렇듯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는 패스트 트랙 정국에서도 이미 나타난 바 있다. 당시 반대할 것 같은 위원을 사임시키고 찬성할 것 같은 위원을 보임시키는 행위는, 법적 절차적인 하자는 없지만,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한 행위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라는 것은 다수의 뜻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다. 선거라는 것이 찬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찬성만을 위한 선거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심대한 훼손을 가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규칙만 잘 지켰다고 “자부”하는 행위가 반복되면, 결국 민주주의에 적합한 정치행위는 사라지고, 오직 진영 간의 투쟁만 남게 된다.

이번 폭력 사태의 배경에는 이런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즉, 특정 진영의 열혈 지지자들의 경우,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도에 전혀 반영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들은 제도 정치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버리고 거리로 나가거나, 폭력적 방식의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되기까지, 제1야당의 잘못도 있다. 여당과 범여권이라 불리는 정당들이 자신들을 소외시키려 한다고 해도, 그럴수록 국회 내에서 핍박받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특히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피해자에 대한 강한 동정심을 갖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제1야당은 이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오히려 지지층의 외연 확대를 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도 한국당은 장외 투쟁에 몰입하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여당이 현 상황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함은 당연하지만, 이런 상황을 보면 한국당 역시 부분적인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선거법과 개정과 공수처 법안처리에 또 다시 4+1이 등장해서 자기들끼리 법안 처리를 강행한다면, 그리고 한국당은 또 다시 거리로 나간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치는 회복 불가능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만은 피하자.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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