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 살고 있는 한인 후예들의 삶을 소재로 한 독립영화 ‘헤로니모’는 쿠바에 정착해서 살면서 한국어를 할 줄 몰라도 스스로를 ‘코리안’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의 애환을 다루고 있다. 영화를 제작한 전후석 감독은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인동포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한국인들이 생각지 못하는 곳에서도 고국을 그리워하는 한국인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재외동포라고 하면 한국어를 사용하는 커뮤니티에 속한 이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쿠바의 한인들처럼 그곳 사회에 통합되어 한국어를 못하면서 살아가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헤로니모와 같은 재외동포들을 코리안 디아스포라라고 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형성된 사회집단과 그 구성원들의 집단적 경험, 그리고 고국의 문화와의 연대 등을 포함한다. 고향에서의 먼 곳으로 이동한다는 전치사와 씨를 뿌린다는 어원의 결합이다. 특정 사회집단이 고국의 사정으로 인해 이산을 경험하지만, 또한 새로운 곳에서 집단적으로 고국과 문화적 연대를 유지하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현상을 디아스포라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재외동포 사회의 근간도 한인들의 이주와 정착 과정에서 이뤄졌다. 세계적인 경제적 불평등과 제국주의의 침탈 등은 한인들의 하와이로의 이주, 그리고 멕시코와 유카탄 반도로의 이주의 원인이 되었고 현대적 의미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시작이 되었다. 헤로니모의 아버지 임천택도 두 살이던 1905년 인천항에서 유카탄 반도로 출발하는 이민선에 압승한 1031명 중 한명이었다. 멕시코가 어디인지, 그들이 향하는 곳에서의 삶이 어떨지 알 수 없었지만 일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디아스포라가 세대를 넘어가면서 거주국에 정착하는 모습은 전통적으로 알려진 모습과 다를 수 있다. 쿠바에서 태어난 헤로니모는 쿠바혁명에 참가하는 등 쿠바 사회 일원으로 성장하면서도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런데 혁명가로서의 삶을 살았던 헤로니모에게도 세 가지 꿈이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가 쿠바 한인들의 이주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한글학교를 세워 한국의 문화와 역사,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쿠바의 한인회를 살리는 것이었다. 끝내 쿠바 한인회를 설립하지는 못하였지만 꿈을 위한 그의 노력으로 한인들은 커뮤니티를 구축할 수 있었다.

한국의 재외동포들을 민족적 동질성을 지닌 그룹으로만 바라보거나 혈통적 차원에서 동질적인 그룹으로만 바라보면 그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왜 먼 곳으로 이산하게 되었는지, 이산 과정에서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였는지, 또 정착지에서 이들은 어떻게 사회에 통합을 이어가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예를 들면, 재일동포와 탈북이주민처럼 한국의 재외동포들도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이주했으며, 정착지에서 살아가는 방식과 정체성도 다양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재외동포라는 이름으로 민족과 혈통만을 중시하는 접근방식은 적절하지 못하다.

국제이주의 원인이 다양해지고 디아스포라가 소수자의 지위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재외동포 정책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과거 뿌리 뽑힘이라는 비자발성과 집단적 상흔, 모국애가 디아스포라의 중요한 특성이었다면 최근에는 정서적 연대성이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즉 단순 노동이민만으로 그들이 디아스포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는가, 또는 스스로 주류사회에 편입되고 소수자 공동체와 상호작용이 없는 개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할 수 있는가는 앞으로 계속 논쟁이 필요한 질문들이다.

한국의 재외동포 정책이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으려면 국내에 있는 다른 디아스포라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한다. 디아스포라의 존재는 사회발전에 긍정적,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그 디아스포라를 긍정적 유인으로 만드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의 역할에 달려 있다. 한국 사회 안의 디아스포라에 한국 사회는 얼마나 포용적인지 성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