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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김헌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90년대 시장퇴출의 기억을 소환하며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보험업에 대입하면 “보험사가 성공한 이유는 제각각 다를 수 있지만 부실화된 이유는 비슷하다”로 정 반대가 될 듯하다. 내재된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부실화되고 종국에는 시장에서 퇴출된다. 그런 의미에서 급격한 성장은 위험을 단기간에 많이 인수한다는 의미로 무조건 좋은 신호는 아니다. 미국 보험사 파산의 대표적인 원인도 리스크관리가 부재한 급격한 성장이다. 손해율, 자산운용 및 영업에 대한 리스크관리 실패도 부실과 직결되는 위험이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지만 요새 가을은 여행, 축제의 계절이다. 또한 세미나의 계절이다. 지난 두 달간 금융 관련 많은 세미나와 토론회가 있었다. 관련 발표에서 ‘보험산업은 위기’라는 점이 반복되어 강조되었다. 초저금리의 지속와 국제회계기준(IFRS17)의 적용 등이 보험산업에 ‘퍼펙트 스톰’이 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사실 10월에 기준금리가 1.25%로 떨어졌고 나아가 내년에 금리가 ‘제로 퍼센트대’로 유지된다면 이는 보험업에 심각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이 주장이 타당하지만 그 시사점은 이중적이다.

보험산업 전체가 위기라기 보다는 리스크관리에 실패한 보험사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기업에게는 기회가 되면서 시장규율에 의해 시장 구조변화가 진행될 것이다.

초저금리 문제를 논하는 자리에서 일본 생보사의 파산 사례가 종종 언급된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일본의 일곱 개 생보사가 파산하였다. 이 파산은 상품개발 및 자산운용의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발생하였다. 자산가격 폭락과 금리의 급강하가 몰아쳤지만 리스크관리를 제대로 한 일본 생보사들은 파산을 피하고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보험산업 위기를 말하면서 우리나라의 실패 경험을 언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픈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1998년부터 2004년 사이에 무려 20개의 보험사가 퇴출되었다. 15개의 생명보험사, 3개의 손해보험사 그리고 2개의 보증보험사가 퇴출되었다. 6개의 생명보험회사가 있었던 시장에 1987년 시장개방이 되면서 무려 27개 신규 생보사가 진입하였고 생보사들은 무리한 경쟁을 벌였다. ‘일단 팔고보자’는 식의 영업에 몰두하면서 리스크관리와 소비자권익에는 모두 무관심했다.

무더기로 시장에 진입한 생보사들로 산업 전체의 수입보험료는 급격히 증가했지만 지급여력은 점점 더 부족해졌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부실을 극복할 기회는 사라졌다. 퇴출된 생보사들은 90년대 초부터 자본력이 허약하였고 리스크관리가 부재한 것이 원인이었다. 만약 1987년 생명보험시장 개방 시점부터 리스크관리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외환위기로 금리가 폭등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대규모 퇴출은 없었을 것이다.

퇴출한 보험사로 인해서 총 19조4천억원이라는 국민의 세금이 공적자금이라는 이름으로 투여되었다. 하지만 퇴출된 회사의 보험계약자의 계약은 피인수회사로 이전되면서 계약자는 온전히 보호되었다.

그렇다면 초저금리와 같은 통제할 수 없는 요소에 대해서 금융당국은 어떤 정책으로 보험사의 퇴출를 막을 수 있을까. 심판이 경기를 뛸 수 없는 것처럼 당국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다만 기업 스스로 리스크관리를 할 수 있도록 상품개발에서 규제 개입은 최소한으로 자제하고 신시장 진입을 최대한 허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동시에 리스크관리를 등한시하는 기업을 감시해야 하고 그 책임을 엄격히 물어야 시장규율이 작동할 수 있다. 우리는 90년대 가슴 아픈 금융산업 구조조정 기억을 잊지 않아야 한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위험을 방치해서 가래로 막는 실패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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