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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일한의 住土피아] 업자, 건설업자, 토건족

“나는 건설업자의 별장을 가고, 어울릴 정도로 대충 살지 않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최근 측근에 했다고 보도돼 화제가 된 말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스폰서인 윤중천 씨로부터 접대를 받았다는 모 신문의 의혹 보도를 부인하면서다. 윤 씨는 중소 규모 건설업체 공동대표로 알려져 있다.

며칠 전 몇몇 ‘건설업자’와 만나 술안주로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잡담을 나누다 이 말을 화제에 올렸다. 갑자기 분위기가 더 격앙됐다. “우리와 어울리면 대충 사는 건가요?”, “중동에서 뺑이치고,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업자’라네요.”

이들은 윤 총장이 ‘범죄자들과 어울릴 정도로 대충 살지 않았다’라거나, ‘나는 누구한테 뇌물을 받을 정도로 대충 살지 않았다’고 하지 않고, 굳이 ‘건설업자’를 들먹인 건 건설기업에 대한 편견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업자는 사전적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건설업자는 건설업을 하는 사람이다. 건설업자를 건설업자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 불러야 할까? 건설업자란 호칭을 왜 편견이라고 느끼는 걸까?

일단 업자는 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된다.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거나, 기업에서 리서치 업무를 하는 특정 영역의 전문가가 있다고 하자. 그런 사람들을 한 방에 보내는 말이 있다. “그냥 업자일 뿐이다!” 음식 관련 방송에 많이 출연하는 한 유명 요리 전문가가 있다. 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도 업자였다. “업자를 왜 이리 방송에 많이 출연 시키나요!”

업자는 사적 이익을 부각하는 표현이다. 나름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업자란 말 하나로 통째로 부정된다.

업자 앞에 ‘건설’이 붙으면 뉘앙스는 더 나빠진다. 정경유착이나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특혜를 받아온 집단이란 이미지가 생긴다. 무수한 영화와 드라마, 소설 등에서 건설업자는 재개발을 한다며 서민들을 주거지에서 내쫓고, 비자금을 조성에 권력에 뒷돈을 대며,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사악한 집단으로 묘사된다.

최근 개봉한 ‘롱리브더킹:목포영웅’만 해도 재래시장을 테마파크로 개발하려는 세력을 악당으로 그렸다. 건설업자와 정치인은 개발이익을 나눠가지려 살인교사까지 서슴지 않는다.

건설업자와 한 통속으로 사적 이득을 챙기는 국회의원, 관료를 묶어 ‘토건족’이라 칭한다. 일본에서 1980년대 거품경제를 일으켜 붕괴시킨 주범을 지칭하던 표현을 수입한 것이다. 시민단체 등에선 지금도 정부가 지역 개발 계획을 확정하면 으레 토건족을 위한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건설산업에 대한 나쁜 인식이 형성된 데 건설업체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걸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비자금 세탁에 건설이 활용되고, 부실공사와 안전사고, 뇌물 수수와 입찰 담합 등 부정부패나 비리 사건이 잊힐 만하게 터진 것도 사실이다.

물론 억울한 측면도 있다. 규제에 민감한 건설업체는 태생적으로 개발 계획이나 규제를 정하는 정치인이나 관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항변이 설득력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임대업, 부동산 중개업자 등 사실상 건설과 별개의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문제까지 모두 ‘건설업자’로 통칭해 나쁜 놈 취급을 당한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욕을 먹는 꼴이다.

국토교통부는 내달 1일부터 건설산업기본법과 국가계약법 등 모든 건설, 부동산, 계약법령에서 건설업자를 ‘건설사업자’로 바꾸기로 했다.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해 공포된 개정 건설산업기본법의 후속조치다. 건설업자라는 표현이 건설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비하하는 용어라는 건설업계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법이 바뀌었다고 건설업자란 표현이 건설사업자로 바로 바뀌진 않을 것이다. 건설사업자라고 불린다고 건설업에 대한 이미지가 금방 달라질 리도 없다. 정부는 용어만 바꿀 게 아니라, 건설업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규제해야 한다. 그만큼 투명성을 요구해야 한다. 정치인은 무리한 지역 개발 공약을 자제해야 한다. 그게 토건족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일본에서도 토건족은 천문학적인 세금을 도로, 공항, 댐 등에 쓰자고 하면서 지방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삼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일한 기자/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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