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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대근의 현장에서] 재건축 주민 “못살겠다” vs 서울시 “안된다” 무한 도돌이표 언제까지

“내진설계도 안 된 30년 아파트에서 신축 아파트나 받을 수 있는 구조안정성 점수 82점이 매겨졌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서울시가 국민 안전을 담보로 도박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40대 주민)

“여기는 그냥 오래된 아파트가 아닙니다. 지하에 노후된 변압기 부품이 단종되고, 너무 오래돼 폭발 위험까지 있어서 매일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만에 하나 안전사고라도 나면 주민들은 모든 책임이 서울시에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 60대 주민)

올림픽선수촌아파트와 노원구 월계동 월계시영(미성·미륭·삼호3차) 등 소위 ‘재건축 잠룡’이라고 불리는 서울 초기 재건축 아파트 단지들이 각각 정밀안전진단과 예비안전진단에서 최근 잇따라 불가 판정을 받으며 해당 주민과 시의 갈등이 재점화하고 있다. 이들 단지들은 시와 구청을 상대로 감사원 청구와 행정소송 등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해 3월부터 강화된 정부의 정밀안전진단 기준이 발목을 잡았다. 안전진단은 주거 환경, 구조 안전성, 건축 마감 및 설비 노후도, 비용 분석 등 4가지 항목을 가중 평가하는 방식이다. 국토교통부는 새로운 기준안에서 주거 환경의 가중치를 40%에서 15%로 낮추고, 구조 안전성 가중치는 20%에서 50%로 높였다. 사실상 건물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가 없다면 재건축을 허가하지 않는 구조다.

구로구 오류동 동부그린아파트는 위 두 곳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지난해 10월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 ‘조건부 재건축 가능’ 판정인 D등급을 받았지만 최근 공공기관이 직접 수행한 2차 정밀안전진단에서 C등급으로 다시 바뀌었다. 안전진단 결과는 A부터 E등급까지 매겨지는데, 이 중 D 또는 E등급을 받아야 재건축을 할 수 있다.

동부그린까지 탈락하면서 작년 3월 이후 서울에서 최종 안전진단 관문을 통과한 아파트는 서초구 방배동 삼호아파트 단 한 곳만 남게 됐다. 올림픽선수촌 주민들은 정밀안전진단을 위해 3억원을 모금했고, 동부그린은 각각 4000만원을 모금했지만 특별한 변수가 없는 이상 이 돈은 결국 매몰비용이 될 위기에 놓였다.

또다른 잠룡으로 꼽히는 마포구 성산동 성산시영과 양천구 목동 목동신시가지 6·9·13단지 등은 현재 1차 정밀안전진단을 진행 중이다. 1차 안전진단을 통과한다고 해도 2차 통과 여부는 여전히 장담할 수 없다.

재건축 아파트를 둘러싼 논란은 비단 이들 초기 단지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해도 조합 측은 사업시행인가 및 관리처분계획인가 단계에서 건축설계와 공공임대 등 시의 요구사항을 놓고 마라톤 협상을 벌여야 한다. 어렵게 당국의 인·허가 모두 과정을 통과해도 마지막 단계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와 소위 ‘규제 끝판왕’으로 불리는 곧 시행될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라는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 지하에 위치한 낡은 변압시설의 모습. 들어선 지 50년 가까이 돼 수명이 다하고 안전사고 위험이 높다는 주민들의 불만이 많다. [양대근 기자]

1971년 12월 완공돼 서울에서도 가장 오래된 재건축 단지인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지난 2008년 재건축추진위원회가 설립됐으나 언제 정비사업이 본 궤도에 오를 지 여전히 기약 없는 상황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수돗물 녹물은 일상이고, 폭발과 붕괴 위험으로 생명권까지 위협받고 있다”며 호소한다.

이처럼 해당 주민들의 불편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시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지난 1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개발·재건축 중심의 주택공급은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집값 상승을 부채질해 집 없는 서민의 박탈감만 커지게 하고 있다”며 기존 입장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

반면 이날 국감에서는 서울 내 재개발·재건축 정비구역 3곳 중 1곳이 박 시장 임기 동안 지정해제됐다는 야당 측의 지적도 나왔다. 뉴타운 출구전략 등 시의 잇단 재건축 규제로 인해 신축 아파트 공급을 막고 주택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부와 서울시가 부동산을 경제 정책보다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당장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주민들의 호소는 또다시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는 것 같아 씁쓸하다.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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