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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년생 김지영’ 겉으로 문제 없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

-이 시대, 필요한 영화다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원작으로 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오는 23일 개봉된다. 누적판매 100만부를 돌파하며 젠더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부터 논란이 나왔다. 개봉전 부터 평점 테러와 함께 N차 관람을 독려하는 식으로 찬반이 나눠졌다.

영화는 소설보다는 밝게 풀었다. 원작의 결말이 비관적이고 씁쓸하다면 영화의 결말은 조금 긍정적으로 각색됐다. 이 영화는 자신의 말을 잃어버린 여자(김지영)가 자기 말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다른 사람의 말을 빌어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지영의 성장기다.

이에 대해 김도영 감독은 “조 작가님이 소설보다 한걸음 나아간 이야기라 선물을 받은 것 같다는 문자를 받고 안도했다”고 말했다. 밝은 결말을 택한 데 대해서는 “지영 엄마보다는 지영이가, 지영보다는 지영 딸(아영)이 좀 더 괜찮은 세상에서 살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82년생 주부 지영(정유미)은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 동료이자 엄마로 살아간다. 평범한 30대 여성의 삶이다. 남편 대현(공유)도 아내의 육아와 집일을 안쓰러워하며 적어도 도와주려는 마인드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지영은 때론 어딘가 갇힌 듯 답답하다. 언제부턴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다른 사람의 말투로 말한다. 시어머니를 친정엄마 목소리로 “사부인!”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하지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 사실 알고보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엄청난 스트레스가 있다. 지영은 곳곳에서 가부장적인 분위기, 남아선호사상에 의한 성차별의 피해를 받고 있다. 명절에 시댁에 가면, 혼자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사람은 따로 있다.

주위의 시선은 또 어떤가.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놀이터 벤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지영이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직장인들끼리 모여 커피를 마시며 “상팔자가 따로 없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커피 마시고 싶다”고 한다.

‘경단녀’ 지영이 재취업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좌절감보다 오히려 일상에서 느껴지는 이런 무시와 차별의 시선이 더 무섭다. 지영에 대한 가해자들은 가족이고, 주위에서 늘상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지영 앞에서는 ‘슈퍼맘’이라고 해놓고 해결책은 없다. 조금만 더 거리가 떨어지거나 댓글에서는 지영 같은 여성을 ‘맘충’(개념 없는 엄마)이라고 비아냥된다. 그렇게 해서 영화는 왜 지영만 희생을 감내햐야 하는지, 사람들이 무슨 권리로 남(지영)에게 상처를 주는지에 대해 간접적으로 묻는다.

김 감독은 “어떤 인물도 특별히 나쁘거나, 좋을 필요가 없다. 화목한 가정에도 안좋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개인 캐릭터로 상처받기보다는 그 풍경을 짚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유미와 공유는 평범함과 일상, 현실감이 느껴지는 연기를 했으며, 특히 딸 지영의 상황을 애틋하게 여기는 지영 친정엄마인 미숙을 맡은 김미경의 연기를 보면 뭔가 찡해진다. 영화는 시종 답답하지만, 마지막 김지영이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장면에서 약간은 시원해진다. 공유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 신이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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