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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소대가리도 웃었을 ‘무관중’ 남북 평양 축구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아시아지역 남북 평양 예선전 전후 사정을 지켜보면서 떠오른 구절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남북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은 0-0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애초부터 경기 내적인 부분보다 외부 요인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던 남북 평양 예선전 결과 남북이 승점 1점씩을 챙겼다는 경기 내용보다는 남북한의 먼 간극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아픔이 더 커진 듯 싶다.

출발은 지난 7월17일 조 추첨이었다. 남북은 레바논, 투르크메니스탄, 스리랑카와 함께 같은 조에 편성되면서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축구 경기 이상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물론 우려도 있었다. 북한이 지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최종예선 때 국제 규정에 따른 애국가 연주와 태극기 게양, 대한민국 호칭 등을 꺼려 평양 홈경기를 포기하고 제3국인 중국 상하이로 무대를 옮긴 전례가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이 같은 우려는 북한이 보름여 뒤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해소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우여곡절은 계속됐다. 북한은 경기를 일주일여 앞두고 선수단 초청장은 발급했지만 기자단과 중계진 수용 여부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유지했다. 정부 당국과 민간 차원에서 추진한 응원단 파견을 놓고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한국은 당국 차원은 물론 축구협회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채널을 활용해 다각도로 접촉을 취했지만 1990년 10월 통일축구 이후 29년만의 남북 평양 축구의 남측 응원, 취재, 중계 없는 ‘3무(無) 축구’를 막지 못했다.

더욱 황당한 일은 경기 당일 벌어졌다. 북한이 자국 응원단까지 김일성경기장에 입장시키지 않는 ‘무관중 경기’라는 기이한 행보를 펼친 것이었다. 북한은 경기 전날까지만 해도 예상 관중을 4만명으로 알려왔지만 정작 경기 당일엔 단 한명도 입장시키지 않았다. 남측 응원, 취재, 중계 없는 ‘3무 축구’가 무관중, 무득점, 무승부라는 또다른 ‘3무 축구’로 이어진 셈이다.

북한이 축구대표팀 경기를 관중 없는 홈경기로 치른 것은 지난 2005년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 이후 14년만이다. 북한은 당시 이란과 최종예선 때 주심의 패널티킥 판정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한 선수가 퇴장당하자 병과 의자 등을 경기장에 내던지는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이후 일본과 최종예선 홈경기를 제3국인 태국 방콕에서 치르도록 하는 징계를 받았다. 이 같은 사례가 보여주듯이 축구에서 무관중 경기는 징계 수단으로 활용된다. 북한이 남북 평양 예선전에 무관중으로 나선 것은 핵·탄도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마당에 축구에서마저 ‘셀프제재’를 자초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당장 전세기편으로 평양을 직접 찾아 경기를 지켜본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경기 뒤 “이런 역사적인 경기에 경기장이 꽉 찰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관중이 하나도 없어서 실망스럽다”면서 “경기 중계, 비자 문제, 외국 기자들의 접근 등과 관련된 여러 사안에 대해 놀랐다”며 북한에 문제 제기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응원, 취재, 중계를 사실상 거부한 마당에 4만 관중의 일방적 응원으로 한국 선수들이 받을 압박을 고려한 배려라고 보기는 힘들다. 한국의 FIFA 랭킹이 37위로 113위인 북한을 압도하고 전력적으로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자기 팀이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고육지책을 선택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남북 평양 예선전에서 보여준 행보는 국제사회 눈높이에서 볼 때 정상국가에 미치지 못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강조해온 “조선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구호에도 배치된다. 오히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비난하면서 쏟아낸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는 막말이 적합하다.

그렇다고 한반도평화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판티노 회장은 북한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하면서도 “한 순간에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하다”며 “축구가 북한과 전세계 여타 국가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확실한 노력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인판티노 회장의 말이 적용 가능한 무대는 축구 뿐만이 아니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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