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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의 덫에 걸린 한국 경제]국회 벽을 못 넘고 잠자고 있는 규제완화 법안 산적
-민감 이슈에 대한 여야 입장차 커 논의 진척 어려워
-“현 경제상황에 대한 정치권의 안이한 인식” 지적도

[헤럴드경제=유재훈·이태형 기자] “20대 국회 들어와서 국회가 제대로 열려본 적이 있습니까? 솔직히 제 기억에 별로 없습니다. 더군다나 올해들어서는 더더욱 나빠졌습니다.”

이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근 전국 상의 회장단회의에 앞서 기자들과의 차담회 도중 던진 화두다. 규제 완화 전도사로 불리는 박 회장은 요즘 우리 경제는 버려지고 잊힌 자식이라 절망하며 국회의 입법 기능 마비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 등 대외 변수와 주력 산업의 부진과 경기 하락 등 내적 변수 모두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의 입법 기능 마비는 한국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원성이 곳곳에서 나온다. 제도적 개선의 출발점인 국회의 입법활동은 하세월이다.

재계에 따르면 조속입법이 시급한 법안이 상임위별로 기획재정위원회 5건, 보건복지위원회 4건, 환경노동위원회 4건 등 총 22건이 국회에 건의된 상태다.

이들 법안 중에서 일부 법안은 개인정보보호, 원격의료, 탄력근로제 등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 국회 논의가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

개인정보 이용에 대한 규제완화를 담은 데이터규제완화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보호법)은 여야 의원들이 각계 의견을 수렴해 지난해 11월 발의 됐지만 국회 계류중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 온라인산업단체와 그 회원사들은 지난달 26일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국회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와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국회에 계류 중인 데이터 3법의 통과가 지연될 경우 EU의 적정성 평가 승인 지연, 글로벌 경쟁력 상실 등 국가 경제력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국회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이어 소위 ‘의료산업 선진화’와 관련해서는 장애인 등에 한해 원격의료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유전자 치료 연구를 위한 질병과 치료법의 허용요건을 완화는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각각 장기간 국회 계류중이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자 국내에서는 시행이 불가능한 원격의료가 해외를 통한 방법으로 규제를 우회하는 사례 마저 늘고 있다. 해외 유명 병원들과 연계해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원격의료를 제공하거나 국내에서는 불가능한 원격의료를 해외 환자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편법이 이뤄지고 있다.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셈이다.

국내 대형병원 관계자는 “원격의료 규제 장벽으로 정작 국내 환자는 혜택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해외환자들이 원격으로 혜택을 받는 역차별이 벌어지고 있다”며 "국내 환자의 편의와 진료선진화를 위해 국회 차원의 제도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52시간 근로제 도입과 함께 조속한 개선이 필요한 탄력근로제 또한 여야의 첨예한 대립 속에 개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300인 이상 기업부터 우선 적용하고 있는 주당 52시간 근로시간제는 내년부터 50인 이상 기업으로, 2021년 7월부터는 5인 이상으로 점차 확대된다.

이에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 2월 탄력근로시간제 개선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이후로 선택근로시간제(일정기간 동안 총 근로시간 내에서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근무시간 조절), 재량근로시간제(기자, 연구직 등 업무 특성상 근무시간을 사용자가 뚜렷이 구분할 수 없을 때 노사가 서로 합의해 일정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보는 제도) 등 개선 법안이 발의됐지만 논의에 진척이 없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내년부터 50인 이상 중소기업에 주 52시간제가 확대 적용되는데 최저임금 인상 때처럼 시행 후 보완하면 큰 피해와 혼란이 우려된다”며 “변화된 산업환경을 고려해 제도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적극 검토해 줄 것을 국회에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대관 업무를 맡고 있는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법제플랫폼을 정비하는 일이 시급하다”면서 “그러나 기업지원법안 중 올해 통과된 것은 12건에 그쳤다. 정당별 입장이 있겠지만 이것이 민생과 경제에 우선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상호 산업혁신팀장은 “(규제완화 입법이 지연되는 이유에 대해) 정치권에서 현재 경제상황을 바라보는 인식이 안이하다”며 “일부 수출품목이나 경제지표가 나쁘지 않아 정치권은 총체적인 위기국면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고 인식하고 아직 다급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특히 올해 국감이 끝나고 내년에 있을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 정치권의 관심은 더 멀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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