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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선비들의 멋과 전통건축이 어우러진 '가을의 서원' 을 거닐다
지난 7월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서원 9곳 등재
한국관광공사 도산서원 소수서원 돈암서원 등 가을관광지로 추천
정여창의 위패를 모신 함양 남계서원 전경./사진제공=함양군청

[헤럴드경제=김성진 기자] 가을산과 山寺는 봄날의 꽃밭이나 여름날 계곡처럼 잘 어울린다. 깊은 산중은 아니지만 고즈넉한 마을 뒤 산자락에 고고하게 버티고 선 선비들의 도량, 서원(書院) 역시 가을날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국립인 향교와 달리 사립교육기관이었던 서원은 관직에서 물러난 선비, 일찌감치 후학양성에 뜻을 둔 학자들이 제자들을 모아 유학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전통 유교의 법도와 함께 학문을 가르치던 서원들은 그 고장의 정신적인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한국의 서원 중 9곳이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대부분 아름다운 산길을 지나 이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가을정취도 느끼고 선조들의 발자취를 가늠할 수 있는 서원들은 조용한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시 소수서원 ▲경상남도 함양군 남계서원 ▲경상북도 경주시 옥산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서원 ▲전라남도 장성군 필암서원 ▲대구광역시 달성군 도동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병산서원 ▲전라북도 정읍시 무성서원 ▲충청남도 논산시 돈암서원 등 총 9곳이다.

남계서원에는 양정재, 보인재와 풍영루 사이에 연못이 있다

▶‘동방5현’ 정여창의 숨결이 서린 함양 남계서원

덕유산과 지리산 줄기를 품은 함양은 산천이 아름다우면서도 선비의 고장으로도 통한다. 예부터 ‘좌 안동 우 함양’이라 하는데, 안동에 퇴계 이황이 있다면 함양에는 일두 정여창이 있다. 정여창의 위패를 모신 남계서원은 소수서원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이며, 조선시대 서원 건축의 본보기를 제시한 곳으로 평가 받는다. 동방5현으로 불리는 정여창의 숨결이 서려 있는 남계서원은 유생이 휴식을 취하던 풍영루와 사당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고, 기숙사인 양정재와 보인재 앞에 있는 연지가 이색적이다.

정여창의 고향이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잘 알려진 개평한옥문화체험휴양마을에는 함양 일두고택을 비롯해 100년 넘은 전통 한옥 60여 채가 남아 있다. 고운 최치원이 조성한 ‘천년의 숲’ 함양상림(천연기념물 154호)도 일품이다.

▶이언적이 학문과 사색의 즐거움을 찾던 곳, 경주 옥산서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고 배향(配享)하는 곳이다. 회재는 이곳에서 학문과 사색의 즐거움을 찾았다. 역락문을 지나 무변루, 구인당, 민구재와 암수재까지 작은 문고리 하나 무심히 지나칠 수 없을 만큼 회재의 학문적 열정이 스며들었다. 서원 앞 계곡에는 책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듯 넓고 평평한 너럭바위가 절경이다. 회재가 이름을 붙인 5개 바위 가운데 세심대(洗心臺)에는 퇴계 이황이 새긴 글씨가 남아 있다.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라’는 뜻에서 그가 이 곳을 얼마나 아꼈는지 짐작할 만하다.

회재가 살았던 경주 독락당은 건축학적으로 높이 평가 받는다. 자연과 하나 된 공간 배치와 구조가 멋스러워 잠시 머물러도 힐링이 된다. 회재가 태어난 서백당이 있는 경주 양동마을의 명품 고택들도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퇴계 이황이 꿈꾼 유교적 이상향, 안동 도산서원

퇴계 이황의 제자들은 스승이 돌아가시고 딜레마에 빠졌다. 스승을 모실 사당과 서원을 지어야 하는데 스승이 세운 도산서당을 허물 수도 없고, 다른 곳에 터를 잡자니 스승이 ‘도산십이곡’을 지어 부를 만큼 아낀 곳을 외면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도산서당 뒤쪽에 서원 건물을 지어 서당과 서원이 어우러지게 했다.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역락서재 등 앞쪽 건물은 퇴계의 작품이요, 전교당과 동·서광명실, 장판각, 상덕사 등은 제자들이 지었다. 퇴계가 꿈꾼 유교적인 이상향인 도산서원은 이렇듯 스승과 제자가 시대를 달리하며 완성한 의미있는 공간이다. 퇴계를 존경한 정조는 어명으로 ‘도산별과’를 실시했는데, 이는 조선시대에서 한양이 아닌 곳에서 과거를 치른 유일한 경우다. 시사단은 팔도에서 모여든 선비 7000여 명이 치른 도산별과를 기념한 곳이다.

정조가 쓴 필암서원 경장각 편액

▶예를 다하는 공손한 마음, 장성 필암서원

전남 장성은 호남 지방의 학문과 선비 정신을 잇는 대표적인 고장이다.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문묘에 우리나라 성현 18인도 함께 봉안됐는데, 호남에서는 하서 김인후가 유일하다. 세자 시절 인종의 스승이기도 했던 그는 인종이 승하하자, 고향으로 내려와 명분과 의리를 지키며 여생을 보냈다. 필암서원은 하서의 위패를 모신 우동사와, 유생이 학문을 닦던 청절당, 기숙사인 진덕재와 숭의재 등으로 구성된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살아남은 47곳 중 하나다. 필암서원은 유생들이 늘 사당을 바라보며 공손히 예를 표할 수 있도록 청절당, 진덕재, 숭의재 모두 우동사를 향하도록 배치했다.

편백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축령산을 산책하면 마음까지 맑아진다.

▶조각보처럼 예쁜 기단, 계단에 새긴 꽃송이… 달성 도동서원

퇴계는 김굉필을 두고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며 극찬했다. 동방5현 중 가장 웃어른인 한훤당 김굉필을 기리는 서원 이름이 ‘도동’이 된 이유다.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자리엔 우리나라 5대 서원 가운데 하나인 도동서원이 있다. 서원 앞을 지키고 선 은행나무가 400여 년 세월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은행나무를 지나 수월루로 들어서면 소소하면서도 섬세한 공간이 펼쳐진다. 12각 돌을 조각보처럼 이은 기단은 감탄을 자아낸다.

멀지 않은 한훤당고택은 예쁜 한옥 카페로 이름났다. 전통차와 유기농 커피가 특별하다.

병산서원의 입교당. 자연을 서원 안으로 고스란히 들여놓은 솜씨가 놀랍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안동 병산서원

병산서원은 앞으로 낙동강이 휘돌아 흐르고, 낙동강에 발을 담근 병산이 푸른 절벽을 펼쳐놓는다. 만대루 앞에 서면 그 감동이 그대로 전해진다. 군더더기 없는 7칸 기둥 사이로 강과 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서애 류성룡과 아들 진을 배향한 병산서원은 조선 5대 서원 중 하나다. 서애는 이순신 장군을 발탁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고, 나라를 위해서라면 임금 앞이라도 주저하지 않았다. 후학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해 지금의 자리로 서원을 옮긴 이도 그다.

병산서원은 요즘 배롱나무꽃이 한창이다. 수령 약 400년이 된 배롱나무 6그루를 비롯해 120여 그루가 피어나는 지금이 장관이다. '징비록'을 집필한 옥연정사와 하회마을이 지척이다.

외삼문 대신 건립한 무성서원 현가루

▶최치원 품은 마을 속 서원, 세계로 나아가다… 정읍 무성서원

무성서원은 신라 말 학자인 고운 최치원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생사당(生祠堂) 태산사가 뿌리다. 생사당은 마을을 다스리는 이의 선정을 찬양하기 위해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부터 제를 올리는 사당을 뜻한다. 이후 태산서원으로 불리다가, 1696년 사액을 받으며 ‘무성’이란 이름을 얻었다. 마을에 터를 잡아 소박해 보이지만,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화를 면한 내공 있는 서원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외삼문 역할을 하는 현가루와 강학 공간인 강당, 기숙사인 강수재, 사우 태산사 등이다. 태산사에는 최치원과 정극인 등 7인을 모셨다.

▶논산 돈암서원에서 화(和), 미(美), 예(禮)를 다시 보다

논산 돈암서원은 사계 김장생 사후 3년 되던 1634년 그의 후학들이 세웠다.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학풍을 이어받은 기호학파로, 무엇보다 예를 중시했다. 돈암서원은 본래 지금의 자리에서 약 2㎞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1881년 홍수 피해를 우려해 옮겼다. 서원이 이전하면서 여느 서원과 다른 건축 배치를 보이지만, 서원의 진정성은 동일하다. 창건 당시 강당인 응도당, 도담서원의 역사가 쓰인 원정비, 제향 공간인 숭례사와 내삼문의 꽃담 등 꼭 봐야 할 곳들이 많다.

계백장군유적지에서 백제 시대도 만나보자. 백제군사박물관, 계백장군기념비와 묘, 충혼공원 등이 조성돼 있다.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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