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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의 전쟁’ 접속하셨죠”…신형 ‘성매매 공갈형’ 피싱 기승
보이스피싱 A-Z ①성매매 기록의 덫
최근 유행하는 보이스피싱 신유형
성매매 데이터베이스 갖고 접근
대놓고 돈 요구…“알면서도 당해”
보이스피싱 현금인출책 A(38) 씨가 지난 7월 11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건물 현금인출기에서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입금한 돈을 빼내는 모습. [강서경찰서 제공]

보이스피싱 사건은 이제 더이상 새롭지 않아 뉴스거리조차 안되는, 흔한 범죄가 돼버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이순간도 누군가는 보이스피싱범에게 돈을 건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예전처럼 어눌한 말투로 국가기관을 사칭하며 돈을 뜯어내지 않는다. 이미 당신의 성별, 이름, 나이, 직업 등을 모두 알고 접근한다. 심지어 당신의 약점까지도 알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의 다양한 신종 수법과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매주 연재한다. 〈편집자 주〉

“김재환 씨 맞죠? 저희는 제일흥신소인데요. ‘밤의 전쟁’에 지난 6월에 접속하셨죠?”

“…네?”

피해자가 머뭇거리는 순간 게임은 끝나버린다. 김재환(23·가명) 씨가 “왜요?”라고 되물은 순간 아마 상대방은 사악하게 웃었을 것이다. 이미 그가 던져놓은 덫에 걸렸기 때문이다. 밤의 전쟁은 알만한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성매매계의 포털사이트다. 김 씨가 이곳에 접속한 기록을 이들은 갖고 있었다. 당황한 피해자가 “접속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보이스피싱범은 곧바로 돈을 요구한다.

“당장 500만원 보내세요. 안 그러면 당신이 밤의전쟁 이용하며 통화한 녹취록을 가족들에게 모두 뿌릴 겁니다.”

김 씨는 부정하고 무시하고 싶었지만 사이트에 접속한 날짜가 정확했다. ‘성매매를 한 것이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알려진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취업준비생인 그에게 500만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급한 마음에 친구에게 돈을 빌린 뒤 두차례에 걸쳐 이를 보이스피싱범에게 보냈다. 이는 올해 7월 15일 오후 6시30분께 실제 일어난 일이다.

김 씨는 다음날인 7월 16일 오후 친구와 함께 서울 강서경찰서를 찾았다. 경찰은 통신자료제공 요청을 통해 전화번호 명의자를 찾았다. 전화번호는 미얀마 외국인 노동자 명의의 대포폰이었다. 경찰은 계좌 영장을 받아 김 씨가 입금한 계좌 내역을 추적에 나섰다. 통장을 열어보니 100~500만원이 들어왔다 빠지는 것이 수차례 보였다. 김 씨와 같은 피해자들이 보낸 돈이었다.

경찰이 가장 많이 인출된 지점을 분석해보니 보라매, 대림, 구로 3개 지역이 나왔다. 경찰은 이 지역 현금인출기 인근 CCTV를 입수해 용의자의 인상착의와 동선을 파악했다. 그리고 용의자가 나타날만한 곳에서 잠복수사를 시작했다. 2주만인 7월 29일 16시 35분께 피의자 A(38) 씨를 발견해 긴급체포했다.

A 씨는 지난 6월 한국에 온 중국 조선족이었다. 지난해 6월부터 카드 7개를 갖고 돌아다니며 피해자 돈을 뽑아 중국으로 송금하는 ‘현금인출책’ 노릇을 하고 있었다. 보통 그는 현금을 뽑아서 6% 정도를 떼고 중국으로 보냈다. 경찰은 그를 공갈 및 전자거래금융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주목할 점은 A 씨에게 사기가 아니라 ‘공갈’ 혐의가 적용됐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속이는 줄도 모르고 당하는 것이 사기라면, 공갈은 상대방의 협박 때문에 알고도 피해를 입는다. 이번 보이스피싱은 그래서 기존 유형과 다르다. 경찰은 이를 ‘공갈형’ 보이스피싱으로 분류한다.

이들이 정말 성매매 사이트 접속 여부를 알고 전화를 돌렸을까. 전문가들은 대부분 ‘그렇다’고 답한다. 이들은 해킹 등을 통해 성매매 접속 데이터베이스를 갖고서 날짜와 업소명을 콕 집어 말한다. 경찰은 공갈형 보이스피싱이 ‘가성비가 좋다’고 말한다. 특별한 고급기술이나 설명없이 그저 단 몇마디 만으로 돈을 뜯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은 ‘사회공학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살아 움직인다. 수법은 사회 문화에 따라 진화한다. 공갈형 사기는 지난해 등장한 ‘유흥 탐정’으로 인해 불안해진 남성들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유흥탐정은 애인이나 배우자의 과거 유흥주점 왕래나 성매매 등의 경험을 알려주는 사이트다. 보이스피싱범들은 피해자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보이스피싱범이 전화를 걸었을 때 “너희들이 어떻게 내가 성매매 한 것을 알아?”하고 무시했을 남성들이 이제는 ‘내 성매매 기록이 유통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쉽게 협박에 넘어갈 것을 이들은 꿰뚫고 있던 것이다.

이런 전화를 받았을 경우 순간 몹시 당황스럽더라도 “아닌데요?”라고 잡아떼야 한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그냥 전화를 끊는 것이다. 정말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름을 되물으며 확인하지 않는다. 강서서 지능팀 김태천 경위는 “이들에게 응대를 하는 순간 무조건 끌려가게 되고 당하게 돼 있다”며 “혹시라도 송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수사기관에 상담이라도 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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