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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채의 퇴진]산업화·고도성장의 동반자…계륵이 되어가는 공채
1957년 삼성이 시작한 공채…여성사원 공채도 삼성이 최초
‘현대판 등용문’ 신뢰 얻었지만 변화 흐름에 퇴로 속으로
현대차 올해부터 정기공채 폐지, “수시공채로 직무 적합한 인재 등용”
[헤럴드DB]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제2의 수능, 취업 과거제, 삼성 고시…’

‘직장인’ 이름표를 달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만 했던 관문인 대기업 정기 공개채용 제도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적게는 수십, 수백명에서 많게는 수천명까지 매년 ‘새로운 피’를 한꺼번에 대량 수혈하면서 인력을 운용하던 대기업들의 수요가 빠르게 다양해지고 정교화되면서 생긴 변화다.

이에 현대판 등용문이자 신분상승의 통로로 여겨지던 공채는 점차 ‘축소 혹은 폐지’의 길을 걷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 취업포털의 설문조사에서도 대기업 10곳 중 3곳이 공채 축소 혹은 폐지 계획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같은 추세는 눈에 띄게 가속화될 전망이다.

최근까지 공채 제도는 ‘공정성’과 ‘기회의 평등’을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고른 신뢰를 얻어 왔다.

서구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공개채용 형식이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 직후였던 1957년 삼성에서다.

당시 삼성물산공사는 민간기업 최초로 신입사원 공채를 도입했다. 27명을 최종 합격시킨 첫 공채에는 20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려 엄청난 경쟁률을 기록했다. 또 한 번 전기를 맞은 것은 최초로 대졸 여성신입사원 공채를 도입한 1993년이었다.

공채 제도의 뼈대가 되는 필기시험의 표본을 만든 것도 삼성이다. 삼성은 1995년 삼성직무능력검사(SSAT)를 도입했다. 단편적 암기 위주의 필기시험 대신 지원자의 잠재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는 목표로 2년여간의 연구 끝에 탄생한 시험이다.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세계 최고 수준의 채용 도구를 만들라”고 지시한 일화로도 전해지고 있다. SSAT는 지난 2015년 GSAT로 이름을 바꾼 뒤 계속해서 시행되고 있다.

삼성이 SSAT를 도입한 후 현대차 인적성검사(HMAT), SK종합적성검사(SKCT), LG 인·적성검사, 롯데 조직·직무적합도검사(L-TAB), 포스코 인·적성검사(PAT) 등 다른 기업들의 평가 시험도 잇따라 개발되면서 취업준비생들에게 ‘제2의 수능’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최근 기업들의 시선은 수시 채용 등 유연한 채용제도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한꺼번에 뽑아 여러 직무에 배치시켜 교육을 진행하던 공채 대신, 수시 채용과 채용형 인턴제도 등으로 처음부터 직무에 최적화된 직원을 뽑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한 시도에 나서는 추세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2월 주요 대기업 중에서는 최초로 정기 공채 폐지 카드를 꺼내들었다. 매년 8000여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하던 공채를 폐지하고 상시 수시채용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현대차는 정기공채를 ‘과거 산업 성장기에 유효했던 방식’으로 규정하고 “기존 대규모 공채방식으로는 빠르게 변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적합한 융복합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결정 배경을 밝힌 바 있다.

현대차는 인재채용팀이 도맡아 오던 채용을 직무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현업 부서로 넘기고, 각 부서가 원하는 인재를 뽑을 수 있도록 제도를 재정비했다. 채용 홈페이지에는 20여개 직무에 대한 채용공고가 개별적으로 올라와 있어 지원자들에게도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SK그룹도 최근 2~3년 내 수시 채용으로 전환하는 안을 포함해 다양한 방식의 채용제도 개혁안을 고심하고 있다. LG그룹도 지난 2000년부터 대규모 그룹 공채 대신 계열사별로 채용을 진행하는 등 변화를 주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제조업으로 성장하던 시기 대기업 직원들의 직무는 사실 크게 다양하거나 세밀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일하는 방식과 범위 자체에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채용 방식은 이같은 변화를 반영하고 있고 글로벌 경영 환경 변화에도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처방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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