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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호진 기자의 부동산 터치] ‘로또분양’ 시세차익 누구 몫인가
판교 10년 공공임대· 둔촌 주공 재건축 등 곳곳서 파열음
조합, 건설사, 수분양자, 정부 등 이해당사자 욕망과 공익 충돌
분양가 상한제 이후엔 갈등 더 증폭…합리적 대안 찾아야 할 때

“죽을 수는 있어도 쫓겨날 수는 없다”

성남 분당 판교신도시 원마을 12단지 아파트 벽면 마다 붙어있는 플래카드다. 산운마을 11·12단지, 봇들마을 3단지, 백현마을 8단지에도 이같은 결사항전의 플래카드가 벽면과 아파트 창문을 뒤덮고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10년 공공임대주택 입주민이 LH와 벼랑끝 싸움을 펼치는 건 분양전환가 때문이다. 판교에서만 11월까지 2600여가구가 전환을 앞두고 있다. 이들 주민이 지금 집에서 계속 살려면 LH와의 당초 계약내용 대로 감정평가액으로 책정된 분양가를 내야한다. 원마을 전용면적 101㎡ 의 감정가는 8억7000만원(3.3㎡당 2200만~2400만원). 시세 보다는 20~30% 싸지만 10년 전 분양가 보다는 두 배 이상 높은 가격이다.

주민들은 민간택지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겠다는 마당에 서민의 공공 임대아파트에 시세 감정평가액을 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LH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 분양가의 절반을 10년 동안 저금리로 나눠 낼 수 있도록 금융지원을 하기로 했지만 주민들은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라며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판교 10년 공공임대아파트에 벽면에 붙어있는 플래카드. 분영전환가를 시세 감정평가액 대신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해 책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판교 10년임대 주민들과 LH의 갈등구도를 단순화하면 시세차익을 누가 더 갖느냐로 수렴된다. LH는 판교는 집값이 급등한 특수 사례로 전국적으로 보면 LH가 원가 이하로 공급하는 주택도 많다는 항변이다. 차익을 개인에게 돌리기 보다는 정부가 회수해 주거복지 사업에 환원하는 게 맞다는 논리다. 대학교수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을 거치며 주거복지에 천착해온 LH 변창흠 사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3기 신도시와 같은 공공택지에 시세의 60% 수준으로 분양가를 책정해 공급한 뒤 집주인이 매각할 때 시세차익을 입주자와 공기업이 절반씩 나누는 ‘이익 공유형 주택’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변 사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3억원대에 분양받은 주택이 12억원으로 뛰었다”며 “시세차익의 일부를 공기업이 회수할 장치를 마련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시세차익을 더 많이 갖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는 민간택지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둔촌주공, 반포주공1단지, 잠실주공5단지 등 서울의 42개 재건축·재개발 조합은 지난 9일 서울 광화문에서 분양가 상한제 소급 적용 저지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단군이래 최대 정비사업으로 불리는 둔촌주공 단지에는 “개발이익 강탈해서 로또분양 웬말이냐” 같은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있다. 이 곳 주민들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일반분양가가 조합원 분양가 보다 낮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난다”며 “우리는 녹물 나오는 아파트를 수십년 참아가며 오늘에 이르렀는데 수분양자가 무임승차하며 막대한 차익늘 누리는게 정의인가”라며 항변한다. 신반포 3차·경남아파트 재건축(래미안 원베일리) 조합은 시뮬레이션 결과 일반분양가가 조합원 분양가 보다 3억원 가까이 싼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안그래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으로 수익이 쪼그라들고 있는데 비조합원의 봉 노릇까지 할 수는 없다며 분노를 표출한다.

둔촌 주공 등 42개의 재개발·재건축 조합원들은 지난 9일 서울 광화문에 모여 분양가상한제 저지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보수진영의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론과는 달리 지난 7월 페이스북을 통해 “강남 30평짜리 아파트가 몇 십 억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되면 건설사들이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높게 책정하는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시세차익을 건설업자들이 가져가는 것 보다는 차라리 개인들이 차지하는 게 낫다는 말도 덧붙였다.

건설사업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한 중견건설사 대표는 “건설사들이 얻는 수익은 세금을 통해 국가 재정으로 흡수되고 고용과 투자로 나라경제를 살찌우지만 개인이 누리는 차익은 집안에 갇히는 거 아니냐”고 주장했다.

분양가 상한제를 앞두고 청약 광풍이 불고 있는 요즘엔 무주택 ‘흙수저’들도 할 말이 많다. 당첨만 되면 막대한 차익이 챙기는 서울 강남 요지의 아파트 분양이 정부의 대출규제로 현금부자들만의 잔치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오는 24일 청약을 받는 삼성동 래미안 라클래시(상아2차 재건축)의 전용면적 84㎡ 분양가는 16억원대. 지난해 3월 입주한 인근 센트럴아이파크가 21억~23억원선임이어서 7억원의 차익이 가능하다. 그러나 9억원 이상 아파트 대출불가 규제에 현금 부자들만 진입할 수 있다. 지금 서울 ·수도권의 웬만한 곳은 당첨자 청약가점이 70점대에 육박한다. 4인 가구(부양가족 3명)가 무주택기간 15년, 청약통장가입기간 15년을 모두 채워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 흙수저들은 오랜기간 집 없는 설움을 견디며 이런 점수를 쌓아온 만큼 자신들도 시세차익을 누릴만 하지 않느냐며 대출규제가 누구를 위한 거냐며 울분을 토한다.

분양가 상한제 시행 논란에 가려져 있지만 정부의 가격 통제에 따른 시세 차익을 누구 몫으로 해야 할 지는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다. 합리적 대안을 찾지 못한다면 갈등양상이 증폭돼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 조합, 건설사, 청약당첨자, 정부 등 각 주체들의 욕망과 이해, 공익이 충돌하는 사안이어서다. 채권입찰제, 전매 제한 등으로는 이런 현안들을 풀어내기엔 쉽지 않다. 우리 사회의 집단지성으로 사고와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문호진 선임기자/mh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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