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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먹거리 앞에서는 국적도 없다…격화되는 산업계 내전
-8K TV·전기차 배터리 등 미래사업 놓고 국내업체 간 경쟁 치열
-“기업에는 국적이 없다”…3·4세 총수 시대 맞아 두드러져
-소송전부터 감정적 상호비방전까지…국가산업 경쟁력 악화 우려
-“시장 문제 시장에 맡겨야” vs “협력적 경쟁관계 필요” 엇갈린 시선

[헤럴드경제=유재훈·천예선 기자] 재계에 불퇴전(不退戰)을 방불케하는 유례 없는 기업간 대치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8K TV, 전기차 배터리 등 미래 유망업종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고자 하는 기업 간의 경쟁이 한치의 양보없는 ‘치킨게임’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최근 벌이고 있는 대립 양상은 글로벌 경쟁업체들과의 경쟁보다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기업에는 국적이 없다”는 최근의 상황을 두고 주요 그룹 간에는 서로의 주력 사업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갈등을 최대한 지양해 오던 이른바 재계의 불문율이 3·4세 총수 시대를 맞아 빠르게 희석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전의 영원한 맞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8K TV 화질 전쟁으로 맞붙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LG전자다. LG전자는 이달 초 독일 베를린 국제가전전시회 ‘IFA’에서 삼성 8K TV의 화질은 기준 미달이라고 공개 비판한데 이어 지난 17일에는 국내에서 기술 설명회를 열고 삼성의 QLED 8K TV는 “진정한 Q-LED도, 8K도 아니다. 화면이 안개처럼 뿌옇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8K TV 기술을 놓고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사진은 17일 인천국제공항에 설치된 삼성전자 QLED TV와 LG전자 OLED TV. [연합]

이에 삼성전자는 같은 날 맞불 설명회를 열어 “8K TV는 LG가 주장하는 화질선명도(CM)만으로 판단할 수 없고 LG 8K OLED TV는 8K 콘텐츠가 깨진다”며 반격에 나섰다.

이같은 양사의 갈등은 신기술·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적잖이 발생했다. 2010년대 들어서만 2012년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특허소송, 2014년 세탁기 파손, 2017년 OLED 번인 현상(고정된 화면을 계속 켜놓거나 같은 이미지가 반복될 경우 디스플레이를 끄거나 전환해도 화면에 잔상이 남는 현상) 등 시장 주도권을 놓고 날선 공방을 벌였다.

특히 2012년 OLED 특허소송전에서는 두 회사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식경제부가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전기차 배터리 기술 유출 논란으로 맞붙고 있는 LG전자와 SK이노베이션은 맞소송전을 넘어 경찰의 압수수색까지 이뤄지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정부의 중재 속에 양사 최고경영자가 소송전 발발 이후 5개월만에 대화 테이블에 앉으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입장차만 재확인한 채 소득없이 끝났다. LG화학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제소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결론이 내년 연말에나 나올 것으로 예고되며 양사의 갈등도 장기화 국면으로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기술 유출 소송전이 격화되며 장기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헤럴드]

최근 주요 대기업간 벌어지는 일련의 분쟁의 공통 분모는 향후 폭발적인 시장 확대가 예상되는 미래먹거리 사업으로 모아진다.

실제 세계 8K TV 시장은 올해 21만대 수준에서 4년 뒤인 2023년에는 370만여대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 역시 연평균 25%씩 성장해 오는 2025년에는 1600억달러, 182조원에 달하는 초거대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배터리가 대한민국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를 역전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글로벌 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갖춰야 하는 국내 기업들은 이른바 ‘아군끼리의 전투’로 인한 국가산업 경쟁력 약화와 같은 손실을 신경쓸 여유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시장을 놓고 경쟁업체와 다툼을 벌이는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생리 상 자연스런 일”이라며 “미국 애플과 퀄컴이 30조원대 특허분쟁을 벌인 것은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업종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업체간 분쟁이 시장의 판단에 의해 정리되면 소비자에게 득이 될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과도한 경쟁보다는 협력적, 상호보완적 경쟁관계를 쌓는 것이 각 업체들의 시장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정부 주도로 갈등이 매듭지어지던 모습도 경쟁 환경의 변화에 크게 달라졌다. 자칫 정부의 개입으로 읽혀질 수 있어 주무 부처가 관여하더라도 일정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전문가들도 정부 등 외부 개입에 의해 해결되기 보다는 시장과 법의 잣대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시장의 문제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정부나 공권력 개입에 대한 주장은 맞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igiza7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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