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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 칼럼-이병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 공익형 직불제’가 불러올 농업의 大변혁

‘농업직불금’이란 농업인들의 소득을 일정 수준으로 보전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지불하는 보조금을 말한다. 나라마다 자국 농업보호를 위해 다양한 직불금 제도를 운영 중이며, 우리나라도 쌀, 밭, 친환경농업 등 7개의 직불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발표된 내년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안에는 ‘공익형 직불제’ 개편 예산이 신규로 편성됐다. ‘공익형 직불제’는 말 그대로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보전하기 위한 보조금 제도이다.

과거에는 농업의 목적이 농작물 생산에만 머물렀다면 지금은 환경보호, 생태보존, 전통문화 유지, 지역사회 발전 등 공익적이고 다원적인 가치로 재규정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이러한 농업의 공익적·다원적 가치 보전을 위해 농정예산의 최대 70%를 공익형 직불금으로 편성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농업 생산성 향상, 농산물 가격보전 등을 위한 개별사업 예산의 비중은 낮다. 반면, 우리나라 농정예산은 지금까지 사업예산 중심으로, 직불제는 ‘쌀 생산’ 위주로 편성되어 왔다. 쌀 가격지지를 위한 쌀 직불금의 비중이 전체 직불금의 80% 수준이다. 2016년에는 쌀값 폭락으로 역대 최대인 2조3300억원의 직불금이 집행되기도 했다. ‘쌀 중심’, ‘생산 중심’으로 운영되던 직불제를 공익적·다원적 가치 중심으로 전환하자는 것이 공익형 직불제 개편계획의 요지다.

쌀 직불제는 그동안 쌀 농가의 소득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한계도 뚜렷하다. 경지면적에 비례하는 현행 직불제는 농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우리나라 농가의 45%는 경지면적 0.5ha 미만의 소농들이다. 이들이 수령하는 쌀 직불금은 전체 직불금의 12%에 불과하다. 쌀 소비가 감소하는 최근의 생활패턴과도 괴리가 있다. 소비는 줄어드는데 공급은 줄지 않는다. 과잉공급된 쌀 가격은 또다시 떨어지고, 직불금을 투입해 가격을 보전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우리 농가의 절반 이상이 연간 농축산물 판매금액 500만원 미만이며, 40%는 연간 300만원도 되지 않는다. 쌀 가격지지 정책만으로는 ‘걱정 없이 농사짓는’ 환경이 조성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익형 직불제는 소규모 농가에 일정 규모의 직불금을 주고 그 외에는 경영규모가 작을수록 더 많은 단가를 책정한다. 대신, 농민들은 생태보존, 수자원 보호 등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의무를 수행한다. 기존의 직불제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정부 계획에 따라 공익형 직불제가 국회 논의를 거쳐 내년부터 도입된다면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방향이 바뀌는 대전환점이 될 것이다. 농업정책과 예산의 무게중심이 공익형 직불제로 옮겨간다는 것은 생산성 증대나 경쟁력 향상과 같은 생산주의 농정에서 벗어나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다원적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다기능 농정으로의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쟁력 있는 농작물 생산이라는 ‘결과’에만 매몰되지 않으니 농업과 농촌은 가족농, 중소농, 청년농, 귀농인이 어우러진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비한 신규작목 재배나 다양한 체험·교육 프로그램 구상도 가능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농업·농촌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증가하고 농업·농촌을 찾는 젊은 청년도 늘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지면적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농업이 추구하는 가치는 결코 줄어들 수도 없고 줄어들어서도 안 된다. 국가 차원에서 농업과 농촌,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공익형 직불제 도입은 이러한 ‘사람 중심 농정’의 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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