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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최원춘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전략본부 본부장] 극일(克日)을 위한 알라딘 램프를 찾아서

일본이 한국의 반도체 3대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한지 약 2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간담회가 열렸다. 소재 국산화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들이 쏟아졌다. 연구자로서 반가운 이야기다. 하지만 연구비 증액이 양국 간의 정치?경제문제까지 해결하는 알라딘의 램프는 아닐 것이다.

소재기술은 화학산업을 배경으로 발전한다. 독일과 미국, 일본이 그랬다. 그들은 기초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화학산업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달랐다. 1970년대 에너지 산업 투자과정에서 수입된 화학공정을 개선하고 운전기술을 개발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단기적 이익 측면에서 생산 공정 규모와 응용분야를 확대해왔다. 이는 화학산업 성장의 주된 수단이 됐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이 탄생했고, 반도체와 TV, 스마트폰 등 첨단 전자제품 강국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이러한 성장 DNA를 갖고 있는 대기업이 최종제품 가격의 1000분의 1도 안 되는 핵심 공정소재를 국내 중소?중견기업 소재로 쉽게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소재 전문 인재양성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그런데 이 말을 대기업에서 들은 경우는 거의 없다. 대기업은 소재기술 인력이 필요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다. 이는 우수인재들이 대기업을 선호하는 탓이다. 예산을 많이 투입해도 정작 우수인재들은 소재를 생산하는 중소?중견기업보다 반도체와 TV, 스마트폰 등 최종제품을 만드는 대기업에 간다. 화학소재 전문 글로벌 중견기업을 하루 빨리 육성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통해 중견기업은 대기업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분업적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수인력들도 화학소재 중견기업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꽤 오래 전 인상 깊게 들었던 세미나가 있다. 한 일본 전문가의 다소 도발적인 내용의 세미나였다. ‘한국 소재산업 왜 어려운가?’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그는 스토리를 넘어 히스토리가 있는 연구실을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자로서 당시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부출연연구소와 대학은 IT와 NT 등 매력적인 단어로 포장된 각종 아젠다형 연구과제 수주를 위해 경쟁적으로 계획서를 제출한다. 이유는 인건비 확보와 실험실 운영을 위해서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인건비나 실험실 운영비가 부족해 연구를 중단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모두는 아니지만, 적어도 주력 산업의 공정소재 상용화를 위해선 히스토리가 있는 연구실을 만들어야 한다.

이와함께 소재기술 상용화를 위해선 실험실과 공장(Lab-to-Factory)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의 논문과 특허, 기술료 중심의 평가로는 실험실 수준에서 연구가 종료되기 쉽다. 앞으로는 실험실의 우수성과를 상용화로 이어줄 수 있도록 평가방식부터 개선돼야 한다. 또한 엔지니어링 공학기술이 제각각 흩어진 소재 관련 요소기술들을 생산과 경제성 차원에서 평가 후 피드백해주고, 최종적으로 이들을 연계해 패키지화하는 공정연구도 꼭 강조돼야 한다. 이는 R&D 투자의 문제가 아니라 R&D 시스템의 문제이다. 한 번에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알라딘의 램프는 현실 세계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눈앞에 닥친 현안에 집중하면서 먼 길을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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