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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제2벤처붐’ 자화자찬 전에 ‘규제 아우성’부터 들어야
-스타트업들 “사업 리스크는 규제” 성토 이어진 포럼
-정부 나서면 새 규제 만들어지는 역설에 투자도 난항
박병종 ㈜콜버스랩 대표가 지난 29일 ‘2019 벤처썸머포럼’에서 규제로 인해 겪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콜버스’는 심야시간대 택시의 승차거부로 귀가길이 막막해진 이들의 발이 된 서비스였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차를 부르면 13인승 밴이 와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을 차례로 태우고 갔다. ‘부르면 오는 버스’로 유명해졌으나 택시업계 반발에 부딪혀 출범 2년만에 서비스가 종료됐다. 국토부는 택시업계가 제공하는 차량만으로 서비스를 진행하라는 중재안을 내놨으나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면서 콜버스는 사업 좌초 위기를 맞았다. 당초 중재안에는 택시업계가 콜버스에 250대의 차량을 공급하기로 했지만 정작 제공된 것은 17대 뿐이었다.

박병종 ㈜콜버스랩 대표는 “차량이 최소 200대는 돼야 수익이 나는 구조였는데,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자금이 2개월을 겨우 버틸 정도까지 말라버렸다”며 기존 사업모델을 포기하고 전세버스 가격비교 서비스를 시작했다. 박 대표는 “국토부 관계자, 택시업계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계약서라도 받아놨어야 했는데, 설마 정부가 거짓말할까 싶어 안이하게 넘어간게 실수였다”고 토로했다.

서영우 풀러스 대표가 지난 28일 ‘2019 벤처썸머포럼’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전남 여수에서 진행된 ‘2019벤처썸머포럼’에서는 규제에 대한 스타트업들의 고충 성토가 이어졌다. 출·퇴근 시간대 카풀 서비스를 내놨던 풀러스 역시 규제로 사업을 접었다. 지난 3월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기구’에서 택시업계와 카카오가 카풀 서비스 시간을 출·퇴근 2시간씩으로 한정하면서 사업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언론사의 온라인 서비스에 소셜댓글 플랫폼을 제공하는 시지온은 2010년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인터넷 실명제를 우회한다는 이유로 위법 판정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시지온은 고객사인 언론사들이 “소셜댓글이 인터넷 실명제도 해결 못한 악성댓글 자정 역할을 하는데, 왜 발목을 잡느냐”며 정부를 설득한 끝에 위법 논란을 벗어날 수 있었다. 김미균 시지온 대표는 “돌이켜보면 그 정도로 위기를 벗어난게 정말 천운이었다”고 전했다.

스타트업들이 만난 사업의 위기는 고객의 냉담한 반응이나 자금 부족이 아닌, 규제였다. 규제의 시작은 기득권 사업자들의 반발에서 시작된다. 결집력이 있는 기득권 사업자들의 반발이 부담스런 정부는 중재에 나서지만, 신규 사업자들에게는 결국 또 다른 규제가 된다. 콜버스가 출범하자 공유버스는 심야시간에만, 강남 지역 3개구에서만, 11인승 이상 승합차와 버스만 운행할 수 있다는 규제가 부랴부랴 만들어졌다. 택시와 승차공유 업체간 갈등을 해결하겠다는 ‘택시-플랫폼 종합 상생방안’에는 제 1유형(혁신형) 택시의 운행 대수를 제한하고, 기여금을 받겠다는 규제가 있다.

정부 중재안이 새 규제 양산으로 끝나는 이유는 실질적으로 ‘네거티브 규제’가 아닌, ‘포지티브 규제’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수차례 법에 금지 조항이 명시된게 아니라면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겠다 밝혔지만, 실제 스타트업들은 법에 해도 된다고 명시된 사업모델이 아닌한 “위법 소지가 있다”는 통보가 날아든다고 전했다. 정부의 중재안은 여전히 “해당 서비스는 특정 조건을 갖췄을 때 할 수 있다”는 형태로 나온다. 허용 조건에 스타트업들의 사업모델을 넣지 않으면 자연히 불법 서비스가 되는 것이다.

2020년 예산안에서 중소벤처기업부는 창업벤처 지원에 지난해 예산의 2배 수준인 1조8000억원을 편성했다. 벤처 성장을 집중 지원해 현재 조짐이 보이는 ‘제2벤처붐’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다.

스타트업들은 예산보다 규제 완화가 더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투자자들도 국내의 ‘제2벤처붐’과 기술력을 눈여겨 보는 만큼, 규제만 풀리면 투자 받을 길은 얼마든지 열린다는 것이다. 투자 등 벤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도 규제다.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를 고심중인 서영우 풀러스 대표는 “투자자들을 설득할 때마다 ‘그래서 규제는 어떻게 됐냐. 규제가 풀리면 투자해주겠다’는 답변만 돌아온다”며 답답해 했다.

이번 포럼에서 기조강연까지 한 서 대표는 “만약 상점들이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팔려면 면허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고,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하나 둘 출범하려는 상황에서 용산전자상가 같은 곳의 상인들이 ‘우리는 다 죽으라는 것이냐’고 들고 일어났다면 어땠을까요? 11번가나 쿠팡 같은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생겼을까요? 결국 국내 업체들이 크지 못하는 와중에 아마존이 한국 시장을 장악하지 않았을까요?”라고 반문했다. 규제에 대한 스타트업들의 아우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와중에 ‘제2벤처붐’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자화자찬을 내놓기는 성급하다.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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