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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수출규제는 ‘모노즈쿠리’ 위기 반영…기술전쟁 시작이다”
日 경제산업성 진단
對韓 수출규제로 위기감 팽배
보호무역주의로 ‘경쟁력’ 약화
중기 인력난 기술전수 어려워
한국기업과의 경쟁 압박감도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일본이 경제보복 조치로 ‘한국 때리기’를 결정한 본질에는 국가경쟁력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듯 일본은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에 ‘기술 충격’(Technology Shock)을 줄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고 봅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하태정 부원장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내놓은 진단이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일본의 경제보복 이면에는 정치적 측면외에도 헤게모니 선점을 위한 ‘기술 전쟁’의 표출이라는 견해가 많다.

특유의 ‘모노즈쿠리(もの造り:물건을 만들다)’로 대변되는 소재기술 분야의 경쟁력으로 세계적인 수출 대국으로 올라섰던 일본이 이를 추격하는 대한민국을 뿌리치기 위한 조치라는 의미다. 사다리를 걷어차서, 자신들이 먼저 갔던 수출 대국의 길을 한국이 따라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다. ‘아시아의 첨단 국가는 일본뿐이어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속내가 반영돼 있다.

그 기저에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올해 일본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30위다. 전년보다 다섯 계단이나 떨어졌다. 반면 올해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28위로 일본을 앞질렀다.

두려움은 지난 6월 일본 경제산업성이 내놓은 400여쪽에 달하는 ‘2019년 모노즈쿠리 백서’에도 잘 담겨있다.

백서는 그간 일본 경제를 지탱해온 부품·소재 산업의 약화와 이로 인한 제조업 분야 모노즈쿠리 경쟁력의 약화를 꼼꼼하게 짚고 있다. 다양한 조사 결과와 데이터로 ‘절대 강자’이던 일본의 제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 원인을 각 산업별로 분석했다. 그 깊이도 눈에 띈다.

“일본 기업은 중국·미국·독일 기업에 비해 새로운 제품 기획력과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다. 제품 생산 간소화·자동화 부문은 여전히 열위에 있다”는 주요 산업의 진단부터 부품 분야 중소기업들의 디지털화 실패, 2000년대 초반 단카이 세대(1947~49년생)의 급작스런 은퇴로 인한 전문인력 부족과 젊은 산업기술 인재 확보의 실패 등까지 짚었다.

하지만 진짜 눈여겨 봐야 하는 부분은 그들이 다시 모노즈쿠리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미래산업을 육성하자’, ‘OO원을 무슨 산업에 투자한다’는 식이 아니라 미래형 모노즈쿠리로 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백서는 논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과 사물인터넷(IoT)을 결합한 제조 등 생산 방식의 디지털화가 필요하다”는 큰 전제하에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소재·부품 분야 일본 기업들이 가진 빅데이터를 활용해 4차산업 분야 시대에 잠재적으로 요구되는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하는 서비스 제공형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하자” 등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인공지능(AI), 3D 프린터 등 신성장 산업에서 ‘기술 표준’을 확보하는 전략도 담겼다.

초고령화 사회, 은퇴세대들이 축적한 막대한 민간자금 등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내수국가’로의 전환보다는 모노즈쿠리 업그레이드를 통한 ‘고급형 수출국가’로의 경쟁력은 반드시 유지하겠다는 의지도 곳곳에서 묻어난다.

과거를 돌아봐도 그렇다. IT 버블 붕괴, 리먼 사태 등 경제를 뒤 흔들만한 위기가 있을때마다 일본은 모노즈쿠리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답을 찾아왔다. 1999년도에는 주조, 열처리, 용접, 도장 등 26개 전통 제조업 영역을 모노즈쿠리 기반 기술로 지정했고 이후 2006년에는 중소기업 모노즈쿠리 기반 기술 고도화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서 품목을 확대했다. 그리고는 조용하게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한 발씩 더 벌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수출 규제는 앞으로 벌어질 긴 기술전쟁의 시작일지 모른다. 일본은 다시금 기술격차를 확대하기 위해 여러가지 견제를 이어갈지 모른다.

박천홍 한국기계연구원 원장은 “지금 한국은 기술로만 일본을 이기려 해서는 안되고 도전정신을 가지고 패러다임을 바꿔야만 일본을 압도할 수 있다”면서 “과거에 브라운관 TV가 LCD TV로 바뀌면서 우리나라가 TV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처럼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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